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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로 내딛는 발걸음인 첫 회사에 입사하기 전날, 나름대로 두려움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공을 맞춰 취업했던 곳은 이제 한창 개발이 이루어지는 택지 개발 단지의 현장 사무소였고, 제 자신을 제외한 남자분들만 있다는 것이 걱정의 근원이라면 근원이랄까? 하지만 밤잠 설쳐가며 고민했던 문제는 고민 거리가 아니였다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지나친 강요 회식도 없었고, 그 흔하게 커피 타주는 심부름도 없었고, 그 때 당시 어린 나이였던 여자애의 첫 직장이라는 것을 많이 배려해주신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다정하고 좋았던 분위기의 회사였습니다.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흔히 이뤄질법한 막말이라든가 성적 농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던 완벽하다면 완벽할 직장이였지요. 이 첫 직장의 첫 단추를 잘 끼웠던게 좋은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였는지 여태껏 근 10년 가까이 되는 사회생활 속에서 노골적인 성적 농담을 즐기는 상사나 동료를 전혀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직장 생활이 학교와는 다르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이익 집단인지라, 여성 차별적인 성적 농담이 없다 생각했더니 막말과 차별, 갑질이 난무하더라고요. 경력이 올라갈수록 처세술도 증가하는 것 같았는데, 30대의 결혼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까 또 다른 차별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차별과 막말, 갑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남의 일이라고 너무 무심하게 말을 내뱉는 걸까요? 그냥 농담으로 던진 말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것은 아니였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결국 내가 받은 상처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저 나는 저런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 다짐만 할 뿐이지요.
사회 생활이 참 재미있게도 상처가 치유된다기 보다는 잊혀지는 거고, 상처가 남겨진 자리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기면서 무뎌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은 강해졌다고 착각하는 별 이상한 허세도 마음 속에 담게 되었고요. 그래서 이 책이 조금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랬다.'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그다지 흥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 받는 자잘한 상처들에 조금이나마 현명하고 잘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게 되었나봅니다. 마침 새 직장에서의 3개월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만큼 바쁘고, 치열했고, 차별받았고, 막말과 갑질에 상처받았던 찰나였으니까요.
지은이는 잘 나가는 대기업 '삼성'을 박차고 나와 변호사가 된 특이 케이스의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당한 불합리한 일들을 참고 퇴사했다면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을텐데, 그녀는 삼성과 싸웠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 2의 인생을 찾았습니다. 평범하지 않았을 그녀의 이야기에 약간의 괴리감과 불편함을 느낀 것은 어쩌면 '질투'가 아니였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다가, 그녀의 말 한마디와 경험 한 자락을 읽어보며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았을 불쾌한 경험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꼭 사내 성추행이나 성폭력과 연관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나 우리 모두를 불쾌하게 하는 말들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나?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 사회의 변화를 발 빠르게 따라가고 있지않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낸 강자의 폭력과 싸우고 있으며, 이것들은 쉽사리 바뀌지도 않습니다. 약자들은 늘 눈물짓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며, 사건의 주체가 되는 강자는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누가봐도 가해자가 잘못한 사실임에도 법은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약자는 더 좌절하게되고, 희망의 불씨는 사라지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더더욱 손을 잡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재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음을 저자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적어도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또다른 제 2의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약자들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애초에 사건이 발행하지 않도록 배려와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고요. 사실 이 모든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모두가 잘 갖추고 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말이죠.
앞으로의 사회 생활에 어떤 파도가 불어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또 다른 약자의 입장에서, 내가 불합리한 터치와 갑질과 말들에 유려하게 대처하고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결코 나약해질 필요도 없고, 여자이자 약자라는 입장에서 약자로 불릴 필요도 없으니까요.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의 여자들이 조금은 더 자유롭고,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불합리한 현실에 당당히 맞설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비록 오늘받은 상처에 소심하게 대응하더라도, 내일의 작은 한걸음은 또 다른 미래를 보여줄테니까요. 그리고 그 작은 한걸음에 또 다른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