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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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물로 받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문화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지 못한 탓에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작가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알지 못했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뭔가 청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이 작가의 글이 소박한 목소리로 일상의 주변을 성찰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구질구질하게 뭐 그런 것을 가지고 글을 쓰고 그러느냐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구질구질”할 수도 있는 일상을 빛나는 의미들로 만들었으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청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겸손할수록 더 존귀해진다더니 글은 소박할수록 더 진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갈한 글도 인상적이지만 본문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사진들도 인상적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자동카메라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음미하며 찬찬히 감상–감상이라는 말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하고 있노라면 글과 어우러지는 솜씨가 역시 상당한 내공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이해가 되기보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여자이지만 저는 남자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정신에 비해 저의 정신은 속세의 홍진으로 너무나 더럽혀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받은 그런 느낌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은 느낌에 불과한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오류나 허점을 반영한다고는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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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여행의 길잡이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 돌베개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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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경주를 좋아합니다. 시가지 자체는 어수선하고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시가지를 벗어나면 느껴지는 분위기는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가을 단풍이 한창일 무렵 아침 햇살을 안고 추령고개를 넘어가 보셨는지요? 혹은 5월말 경주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 보셨는지요? 이런 체험을 가진 분이라면 아마도 그 순간 당신이 전생에 경주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석양에 물든 인적 없는 감은사지에서 누군가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런 체험을 가진 분이라면 아마도 그 순간 당신과 그 사람의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비롯된 유구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저는 경주를 여행할 때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서 이 책을 가지고 다니리라는 실용적인 이유에서보다는 다만 이 책이 경주에 대해서 다루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을 단순한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은 제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은 “답사 여행의 길잡이”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외국에서 출판된 유명한 여행 안내서 시리즈에 못지않게 유용한 정보들을 알차게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가치를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만 한정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이 주는 인상은 여행 정보 이상의 것입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인문학의 아취가 느껴집니다. 여타의 여행 안내서라면 분명히 다루지 못했을 학구적인(?) 글들을 읽으며 이 책만이 선사할 수 있는 우아한 교양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에는 경주에 대한 엮은이(들?)의 오랜 애정이 한 줄 한 줄의 문장마다 스며있습니다.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책도 좋기는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던 땀냄새와 우직한 애정과 기나긴 시간의 흔적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집니다. 요즘 나오는 책들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도판이나 현란한 감탄사는 없지만 수수하고 성실할 뿐더러 영민함과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책이라고 해도 이 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과찬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워낙 멋대로 돌아다니는 편이라 제가 경주에 갔을 때 이 책이 제공하는 모범적인 정보들에 의지했던 바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의 실용성에 의지했던 사례를 꼽으라면 좀 엉뚱하게도 원조 황남빵집의 위치를 이 책에서 찾아보고 갔던 경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 비추어 “황남빵집 찾아가서 황남빵 사먹는 법 200% 활용하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황남빵집은 저녁 무렵에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가신다면 차를 타기보다는 걸어가는 편이 당신이 경주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황남빵집이 있는 골목까지 걸어가셔서 주위의 여러 황남빵집 중 어느 집이 과연 원조일지 알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무사히 원조집을 찾아 들어가셨다면 빵집 구경도 하시고 당신의 예상보다는 비쌀 빵값에 불평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황남빵을 한 봉지 사서 나온 다음 석양을 안고 대릉원으로 천천히 걸어 가십시오. 어지간한 건물 보다 큰 무덤들 사이 사이의 잔디밭을 걸어도 좋고 무덤을 등반(?)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신 길이라면 주위를 어슬렁 거리고 있을 동네 건달들이나 교복 치마를 걷어올린 깻잎 머리 소녀들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해서 찍어두면 또한 좋은 기념이 되겠지요? 그리고 무덤 위든 무덤 옆이든 원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황남빵을 한 입 드셔보세요. 천년의 고도위로 달이 뜨고 별도 뜰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삶이 지금의 이 생에만 걸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겨 기억나지 않는 당신의 전생을 더듬어보려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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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 - 상 - 京城, 쇼우와 62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3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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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대체 역사”의 개념은 적어도 우리 문학에서는 신선한 것입니다. 작품의 가치를 결정 짓는 요소에 표현 형식의 신선함이 포함된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대체 역사”라는 신선한 표현 형식을 취했다는 점만으로도 분명 인정 받을 만한 면이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이 소설에 대한 호의도 주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이 소설에 별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단순해서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의 대화에 현실감이 없고 겉 멋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또한 줄거리 속에 주인공과 회사 여직원의 관계를 배치한 것 역시 작가의 의도는 이해가 되나 주제의 구현에 기여를 한다기보다는 왠지 엉뚱하게 튄다는 느낌을 받았고 심하게 말하면 신파극 같은 느낌 조차 주기도 했습니다. 간간히 시도 나오는데 –아마 작가가 지었겠지요- 그 시들도 제가 보기에는 별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 소설에 원한이 많은 듯, 이 소설에서의 “고급스러움”, “가벼운 냉소” , ”진지한 풍자” 마저도 저에게는 왠일인지 설익은 치기의 소산인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대체 역사라는 형식은 신선하고 주제 의식도 그릇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앞에서 많은 분들이 해 주신 격찬에 어울릴 만한 기본적인 자질은 갖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이 소설의 그러한 거시적인 면모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시적인 면모들에 별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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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옥중서신 - 양장본
김대중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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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글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쓴 편지 모음입니다.

당시의 김대중 대통령이 편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박학 다식함도 놀랍습니다만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언제 사형에 처해질 지 모르는 암울한 나날 속에서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종교에 대한 신념입니다. 무기수로 감형된 이후에 쓴 편지도 여전히 좋습니다만, 사형수 김대중으로서 보낸 5개월 간의 편지는 어느 것 하나 가슴에 알알이 박혀오지 않은 편지가 없습니다.

당시의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한 없는 애정과 위선적이지 않은 진지한 신앙은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소박한 것일 수 있나를, 그러나 그 소박한 가치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의지할 수 있는 정도로 의미 있는 것임을 영롱하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정치인 김대중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이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책만이 갖는 이러한 각별한 미덕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은 무상하여 이 글을 쓰는 현재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은 갖은 비리로 법의 심판을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 본인은 쓸쓸한 임기 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책으로 엮인 편지들이 쓰여진 이후 20여년이 지난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김대중 대통령 일가가 이 편지들을 주고 받았던 날들 이후로 걸어가야 했던 영욕의 세월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유현한 것은 세월이 무상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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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 대표시선
유정 옮김 / 창비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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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펼치면 줄줄이 나열되는 이름들이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만 알았지 일본 현대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뒤이어서 들었습니다. 일본 문학의 대중적인 면들을 만끽하신 분들이라면 이번에는 이 시집을 유유히 읽으시면서 일본 문학의 아취를 느껴봄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느낌에 생소한 시도 있지만 아마노 타다시, 쿠로다 사부로, 키요오카 다카유키, 스가와라 가츠미 같은 시인들의 시는 마치 우리 시인의 시인 것처럼 푸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시인 신경림, 곽재구, 박노해, 김용택과 같은 이들이 보여주는 정도의 삶의 애절함과 인간적인 고뇌는 찾아볼 수 없지만 소재에 집착하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소박한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외국시를 번역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언어이고 보니 외국시를 번역한 것이라는 느낌을 별로 받지 않고 부드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깝고도 먼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미덕의 한 가지를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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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百千 2022-01-2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