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른 교회에서 주관한 선교보고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선교사님은 북한에서 6년째 치과의사로 봉사하시면서 선교사역을 하고 계신 분인데, 정말 그 분의 말처럼, 북한은 선교의 문이 이미 열려 있더군요.

"복음이 닫힌 곳은 이 지구상 그 어느 곳도 없다. 제발 북한을 통일 이후에 개척해야할 곳이라고 내버려두지 마라. 북한은 이미 열린 곳이다......"

모든 선교사님이 그러해야겠지만 특히 북한으로 파송될 선교사님은 정말 '뱀같이 지혜로와야'하겠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답니다.

북한 외에, 그리스도인이 됨과 동시에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지역이 또 한 곳 있습니다.
바로 모슬렘 지역입니다. 요즘은 (10월 24일부터 11월 26일까지) 이 모슬렘들의 영적전쟁기인 라마단 기간입니다. 하루종일 금식하면서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하지요. 이에 안타까움을 못이기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특히 이 기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영적인 시험과 고난이 심해지기도 하고 기도 가운데 성령을 받기도 한답니다.
참으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간입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이란 상처와 죽음을 맞아야만 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적이 죽어야만 하지요... 그러나 이 영적전쟁에서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죽어야할 적을 기필코 살려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어 더욱 뼈속이 아려옵니다.

불현듯,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맨발의 5섯살짜리 개구장이 아이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라마단 기간이었지요.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소리에, 신나게 내 옆을 뛰어다니다가 그자리에 멈춰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더군요.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나는 종종 그 아이의 새까만 발이 생각납니다.
신발을 볼 때마다, 내아이의 신발을 살 때마다 나는 그 발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잠시 멈춰, 방 한쪽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내아이의 덧신을 끌어안아 봅니다.   맨발의 그 아이가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는 중에, 그들의 우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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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만큼 귀중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는 나무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데...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죽을 죄를 지은 악독한 사람일지라도, 사람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최대한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려고 애를 씁니다만....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무례하거나 내게 상처를 줄 때는 더욱 그것이 어렵습니다. 사람이란...하면서...사람에 대한 환멸이....사람에 대한 서운함이...그러다가... 나도 사람인데........그러면서 웃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며칠전...한 귀한 사람이, 금요예배가 기다려진다면서 자신이 이렇게 변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간증을 하더군요....내게 조용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하던 그 사람의 눈이 얼마나 곱던지....
이래서 나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이니 규칙이니 예의니 능력이니 하는 것들보다 '사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아름다운 사람이 참 그립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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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이들에게, 가시고기는 지독한 미움을 받게 될게다...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가시고기와 같은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내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아버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 가능함을 거론하기 이전에 아버지란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호칭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이러한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이 아버지가 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말이다. 세상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속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이가 몇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아버지가 될 것이고, 또 몇은 어머니가, 자식이, 남편이, 아내가 되어 대신 죽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렇게 죽어나가고 있을게다. 세상은 이들을 마치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인종으로 취급하는데, 실은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깨우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죽으므로서 완성되는 것이기에...오늘도 나는 너를 위해 죽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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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훑었다. 그러고나니 뼈속 깊이가 묵직해진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무게에 눌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뭘 할 수 있을까?...이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줬다. 좀 가벼워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덜어지지 않은 무게가 남아 내게 뭔가를 재촉한다. 미안할 따름이다. 살아오면서 한번쯤 내곁을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는 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미안하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다. 한동안은 내내 그저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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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깊었다. 그 한가운데에 그의 고뇌가, 늘 격전 뒤의 시체와 함께 벌겋게 떠 있었다. 시체는 썩어서 허물어지고 뜯겨진 채 바다의 깊이 속에 가라앉았고 그의 고뇌만은 엉키고 설켜서 바다를 염(染)했다.

나는 그의 고뇌에 한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고 그저 바다를 향해 섧게 우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철저히 외로웠고 지독히 그리웠을 그에게 나는 이시대의 여전함을 민망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그를 위로할 그 무엇도 없었다. 다만 쓰디쓴 한잔의 글을 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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