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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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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이들에게, 가시고기는 지독한 미움을 받게 될게다...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가시고기와 같은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내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아버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 가능함을 거론하기 이전에 아버지란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호칭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이러한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이 아버지가 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말이다. 세상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속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이가 몇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떤 이는 아버지가 될 것이고, 또 몇은 어머니가, 자식이, 남편이, 아내가 되어 대신 죽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렇게 죽어나가고 있을게다. 세상은 이들을 마치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인종으로 취급하는데, 실은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깨우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죽으므로서 완성되는 것이기에...오늘도 나는 너를 위해 죽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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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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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훑었다. 그러고나니 뼈속 깊이가 묵직해진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무게에 눌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뭘 할 수 있을까?...이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줬다. 좀 가벼워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덜어지지 않은 무게가 남아 내게 뭔가를 재촉한다. 미안할 따름이다. 살아오면서 한번쯤 내곁을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는 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미안하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다. 한동안은 내내 그저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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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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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깊었다. 그 한가운데에 그의 고뇌가, 늘 격전 뒤의 시체와 함께 벌겋게 떠 있었다. 시체는 썩어서 허물어지고 뜯겨진 채 바다의 깊이 속에 가라앉았고 그의 고뇌만은 엉키고 설켜서 바다를 염(染)했다.

나는 그의 고뇌에 한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고 그저 바다를 향해 섧게 우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철저히 외로웠고 지독히 그리웠을 그에게 나는 이시대의 여전함을 민망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그를 위로할 그 무엇도 없었다. 다만 쓰디쓴 한잔의 글을 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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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변화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나로서는...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방 한쪽 구석 모서리끝에 웅크리고 앉아서 소리없이 우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게 5년이 되어간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왜 이제와서 자꾸만 무너져내리는지...내 한계를 확인하는 이 시점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는 바로 지금, 나는 그저 웅크리고 울 뿐이다.

몽골에서, 사랑스런 첫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난 아기와 함께 예배실에서 쫓겨나야했다. 아무도 우리를 쫓아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우리에게로 모이던 시선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다. 우리는 매주 닫혀진 예배실 문 밖에서 서성거렸다.
육아의 책임은 부모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니 오히려 육아문제는 아빠 개인의 문제인양 모든 것을 다 하는 이이도 주일날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늘 어떠한 형태로든지 예배를 돕는 일이 주어졌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서는 예배실을 뛰어다닌다는 이유로 우리는 몽골의 영하30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눈 속에 발을 묻으며 동동거려야 했다. 허름하고 조그만 몽골의 천막교회엔 사랑스런 내 아이가 뛰어다닐 곳이 없었다.

그러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캐나다의 한적한 시골교회에서 사랑스런 둘째아기를 안고 예배실 구석에 있는 골방에서 서성거린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겨우 목사님의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하는 모습만 조그만 유리창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매주 나는 예배실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골방으로 직행한다. 어쩌다 드물게 사랑스런 아기가 잠이 들게 되면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골방을 빠져나와 예배실 의자에 앉는 데 성공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왜그렇게도 큰지 심장이 잠시만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예배실 의자에 앉아서 나는 계속 운다. 뭐가 그렇게도 감격스럽고 벅차고 흥분되는 것인지, 나는 그저 예배실 왼쪽끝의 어둑한 곳에 내 자리로 비워져 있는 이 의자가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 교회는 그리 크지 않은 한인교회다. 모임이 거의 없다. 성경공부도 없고 조모임도 없다. 다들 타국에서 매주마다 동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다행히 금요기도회와 한 달에 한 번 하는 구역예배가 있는데, 방학동안(6,7,8월)은 없었기 때문에 9월이 되어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참석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곤히 자는 사랑스런 두 아이들 때문에 금요기도회는 이이랑 교대해서 격주로 참석하고 구역예배는 둘 다 한 아이씩 책임지느라 성도들의 교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기도회나 성도들의 교제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참 많이 다르다. 금요기도회는 마치 성경공부처럼, 찬양 한두곡이 끝나면 목사님과 성경연구를 하고 옆에 앉은 성도와 짝을 지어 짧게 기도하고 마친다. 주어진 시간은 8시 30분부터 10시까지다. 모두 1시간 30분 안에 다 마치고 교회 건물을 잠궈야 하기 때문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몇 번씩 신호를 놓친다. 운전대를 잡고서 앞차 너머로 멀리 보이는 투명한 별을 멍하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통곡하지 못한 채 응어리로 남아있는 기도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다 교통 사고를 내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거의 초신자이거나 한국에서 교회를 거의 나가지 않던 교인들이다. 이곳에 와서 동포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모임이 한인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출석한다. 그러니 성도들의 교제도 여느 넌크리스챤의 모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사 전에 기도를 하는 것 외엔...

결국,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성령충만을 위해 기대를 가질 수 없다.
내 영성의 한계를 확인하는 이 시점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외롭고 그립다.
동역자로서 이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기도 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이가 매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와 성경공부, 찬양, 금요기도회, 특강, 깊이 있는 성도들의 교제 등을 대신할 수는 결코 없다.

난 참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마르다의 그 수고의 기쁨을 잘 모른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밑에서 말씀을 들으며 행복해 했던 것만 알 뿐이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를 모두 칭찬하셨지만, 난 자꾸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매주 골방에서 아기를 안고서, 왜 빨리 자라주지 않느냐고 숨막혀하는 내가 너무나 나쁜 사람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쁜 사람은 소리내어 울 수도 없다.
얼굴을 들고 울 수도 없다.
편한 자세로 누워서 울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방 한쪽 구석 모서리끝에 웅크리고 앉아서 소리없이 운다.

-2003년 10월 14일 일기에서-


지난 일주일간 내 바닥난 영성과 말씀의 허기짐을 채우기위해 1초도 쉬지않고 버둥거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 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을 구분했다. 그 결과, 내 소중한 동역자들로부터의 격려와 기도로 하나님은 내게 지혜를 주셨다.

이번주부터 이곳에서 Q.T.를 다시 시작했다.
119편....말씀에 대한 나의 목마름이며 나의 고백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시도 놓치지 않고 내게 개입하셨고 인도하셨다.

말씀에 대한 나의 목마름이 계속되는 한,
또다시 내가 바닥에 웅크리게 될지라도, 목마름을 느낀다면, 죽을 듯한 허기를 느낄 수 있다면, 난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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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동안 급하게 준비하느라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겐) 귀한 시간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1박 수련회를 하고자 했던 취지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지는......교사와 학생들, 교사와 교사들, 전도사님과 학생들, 전도사님과 교사들 간에 더 깊은 신뢰와 하나됨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함께 해야할 몇 명의 교사가 참석하지 못했고, 전도사님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다른 방향을 잡아야 했다.

다른 방향은.....아이들 안에 내재돼 있는 크리스챤적인 우정과 기독교 문화(놀이, 음악 등)를 소개하는 것, 그리고 교회에서의 교사적 본분을 자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적 제약(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약 3시간)때문에 완벽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면 뭐가 (적어도 내게) 귀한 것이었는가.....
1. 교회에서 찬양과 기도로 한해의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놀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찬양을 하거나 기도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 약속들을 취소하고 교회에서 찬양과 기도로 한해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나님께 아뢸 수 있었다는 것이다.
2. 재미있고 신나게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서로를 보며 율동을 하는 것에서, 서로의 어색한 동작과 각 개인의 기발한 창의력에 웃지않을 수 없었다. 적극적인 친구들의 큰 동작에 용기를 얻어 수줍게 손을 움직이던 몇몇의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찬양하는 내내 우리 모두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3. 자기 주변의 친구들에 대해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있어서 친구란, 현재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생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 친구들이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 보면서 크리스챤으로서의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 과연 나는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슨 일을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작'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누가 협조해 줄 것인가, 누가 좋아할 것인가, 시간이 있는가, 돈이 있는가, 장소가 있는가.....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결정하고 시작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 모두는 자의든 타의든 기도하게 될 것이
고 그러면 결국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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