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성공법칙
캐리 브루서드 지음, 박은주 옮김 / 김영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동화와 현실




  이번달 들어 동화와 관련된 책을 두권 읽었다.

  하나는 루비레드 라는 책이였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신데렐라 성공법칙인데. 아쉽게도 동화와 관련되어 흥미를 끌었던 두권의 책 모두가 내 기대엔 못 미쳤고, 그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캐리 브루서드, 그녀가 동화와 현실을 엮어 독자들에게 또 현재 직업 여성들에게 성공이란 강한, 유혹적인 메시지를 어필하는데는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화적 요소가 짙게 깔린 현실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

  루비레드의 ‘기적의 알약’ 편을 보면 세상에 다신 없을 만병통치약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물과 설탕으로 만든 말 그대로 사탕과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설탕약을 먹고 큰 돈을 지불했으며 정말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에 관련된 서적이 주는 환상이나 효력은 어쩌면 기적의 알약이라 믿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이 약 한 알이면 모든 것이 바뀌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충족 시켜줄 자극적인 ‘기적을 향한 알약’ 말이다.

  설사 그것이 사탕과자라 할지라도 고된 현실의 도피처로 삼을 무엇을 원하는 직장인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달콤하고 즐거운 처방전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일상과 반복된 업무, 편치않은 근무환경 속에서 지치고 병든 직장인들이 원하는 처방전이 조제되는 것이다.


  말단 직원에서 대기업의 총수, CEO가 되었다는 능력있는 여사장이 말한다. 으레 그래왔듯이 다를 것 없는 내용으로.

  처세술에 능한 캐리 브루서드, 그녀가 열 개의 동화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직원들과 비교한 대목은 흥미롭고 구미가 당겼다.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서에는 흥미가 도통 없는 내 흥미를 끌만큼 그녀의 시도는 참신하다 볼 수 있지만, 과연 이 책이 현실적인 문제의 대안이나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가, 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기적의 알약은 마음의 병을 씻어낼 수는 있어도, 그것인 현실적인 문제의 답이나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결국은 동화는 동화일 수 밖에 없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스러운 엔딩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가.

  처세술이나 자기계발 서적은 성공을 향한 지름길의 발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견이여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고, 멘토라는 ‘요정’에 의존해야 한다 말하는 캐리 브루서드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외면하려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입지를 굳혀가는 여성들에게 ‘요정’의 중요성을 매번 챕터마다 강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신데렐라 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정’ 멘토를 위한 자기 계발서 인가했다.





  캐리 브루서드는 자신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현대 여성 직장인들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으나,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상황들과 비교했을때 그녀의 경험담이 똑같은 상황 속 유일한 답안지가 되어줄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현재 우리 나라 여성들만해도 사회적인 높은 직위를 얻기까지 피고름나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몇몇 여성 CEO를 보며 막연하게 나도 그녀들처럼 성공했으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캐리 브루서드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 모르겠다. 신데렐라, 일명 재투성이 소녀의 일대 성공기는 미운오리새끼 마냥 대반전을 거듭한 인생 역전의 성공대로라 할 수 있으나 과연, 굳이 동화와 함께 자신의 의사를 피력해야만 했던 것일까.

  보면서 내가 이해한 동화의 내용과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동화의 내용이 다소 어울리지 않은 그림같다고 느껴졌다.

  

  큰 그림,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몫이고 누군가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누군가 조언을 해주고 충고를 해주어 나 자신을 찾고, 자신을 재발견하여 그림을 다듬어 나갈 수는 있어도 그들의 충고와 조언대로 그림을 그린다 하여, 내 얼굴이 동경하는 사람의 자화상이 될 수 없음을 알려줄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쉽고 간결하게, 또 여타 다른 처세술 서적과의 비교를 거부하며 참신한 아이디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할지라도 그 내용이 별반 다를게 없다면 이미 그것은 식상한 여성 CEO의 성공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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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잔 하실까요? - 여섯 가지 음료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톰 스탠디지 지음, 차재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과거로부터의 여행

  혹은 생존 전쟁.



  가장 쉽게 접하고 우리의 몸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수분, 물, 그 음료에 대한 역사. 역사 한 잔, 이 책은 딱 한 잔에 선사시대때부터 이어온 생존의 필사적인 행위인 ‘마심’의 모든 역사를 들이킬 수 있다. 나는 숨도 내쉴새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느라 바빴다.

  코끝을 톡쏘는 특유의 알콜향과 달짝하게 입안을 적시는 와인, 씁쓰름한 커피, 목울대를 타오르게 하는 증류수, 아메리칸 아이콘 아니 심볼이라 할 수 있는 코카콜라, 소다수에 관한 역사까지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책으로 우리가 꼭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인 것 같다. 역사의 뼈대를 되짚어본다는 것 만큼 매력적인 일이 또 어디있겠는가.


  하루, 몇 시간동안 마실 물이 없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갈증이 일만큼 우리에게 물은 선사시대때부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생존의 한 방법이었다.

  과거로부터의 여행이면서 생존 전쟁이라 할 만큼. 물에 대한 역사, 그 음료에 대한 역사는 멋들어진 장관 만큼 범상치가 않으며 멋진 인류의 역사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내가 떠오릴 수 있었던 것은 매슬로의 5단계 욕구였다. 인간은 다섯 가지의 욕구를 가지며, 이들은 단계적인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경영학은 말하고 있다. 그 다섯가지의 단계적인 욕구가 떠오른 것은 맥주로부터 시작된 음료의 역사 역시 우리들의 생존과 그 본능의 욕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배고픔보다는 갈증을 참아내기가 훨씬 더 고통스럽다. 라는 글귀로 시작된 만큼 이 글귀가 물의 역사, 그것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표제라 할 수 있다.

  수만년전 작은 무리를 이루어 수렵생활을 하던 그들이 신선한 음료를 확보하기 위해 강이나 샘물, 호수 근처에 모여 살게된 이후부터 인류의 의해, 인류에 의한 음료의 진보적인 혁신, 발명, 아니 물의 발견은 가히 놀랍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인간의 욕구인 생리적인 욕구와 그 욕구가 충족된 후에 나타나는 안전의 욕구는 당연한 것이었고 나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가 떠올리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고대 석기시대의 생활양식을 버리고 농사 기술을 채택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 아니었으며 정착된 생활을 하며 하나의 부락에서 도시를 형성하게 된 그들에게 물은 생존 전쟁이었다. 서울의 도심지로 인구가 몰리듯 인구의 증가로 인해 오염되고 변질 되어진 주변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생리적인 욕구의 해결 뿐만이 아니라 안전한 ‘물’의 확보였던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물을 대체할 수 있는 음료의 발견 또한 안전한 물의 확보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우연히 발견된 맥주나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와인, 설탕 찌꺼기로 만들어낸 럼, 브랜디등 그리고 커피와 홍차에 이르기까지 이 모寬?가열되어진 물이 아닌가.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넘치고 TV를 봐도, 어디를 가도, 물 씀씀이가 헤픈 우리에게 또 나에게. 이 책은 물에 대한 소중함과 물의 존귀함을 일깨워줄 수 있었다. 늘 들이마시는 공기의 필요성과 그 소중함을 잊듯이 내게 물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

  어쨌거나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자 인류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를 채우려했고, 더 나아가 존경과 인정의 욕구를 채우고자 했다. 커피를 마시는 대신 토론의 장을 열 수 있었던 커피하우스가 그 증거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우습지 않은가. 남성에게만 공개 되었던 커피 하우스가 오늘날 와서는 여성들의 토론의 장이 되었다는 것이.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새로운 역사의 발견과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지식의 습득은 언제나 이리도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 욕구처럼 물의 역사는 단계적으로 진보되어 갔으며 인류 역시 그에 국한되지 않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발효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된 맥주, 그리고 와인, 또 노예 무역의 필수품이었던 브랜디와 럼. 미국의 독립을 이루어낸 위스키, 근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누렸던 커피와 과학, 경제적 혁명의 진원지 런던의 커피 하우스. 그리고 차 문화. 유력한 문명국가였던 중국의 아편 소비로 인한 멸망. 세계사의 한 과정에서 일어난 차의 영향력. 미국의 아이콘인 코카콜라까지. 유쾌하고도 즐거운 지인들과의 술자리 마냥 읽는내내 즐거운 설레임이 가슴 가득 퍼졌다.

  이 여섯가지의 음료를 통해 세계사, 인류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몹시 놀라웠으며 그 행보의 역사 내면에 깔린 것이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을 갈망하는 이들의 발견이었음 또한 놀라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 마시던 음료, 갈증을 없애기 위해 마시던 물, 술자리에서 주고 받던 술. 그 일상 속에 일어난 작은 소요는 소용돌이 치듯 나를 과거로 이끌었고 그들의 생존에 관한 필사적인 역사는 우리가, 옛 고인들이 밟아온 흔적들의 한 귀퉁이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 역사의 한 잔, 한모금 한모금은 혈관을 타고 심장을 통해 머리 속으로 전해져 뿌듯한 감정이 가슴 곳곳을 가득 채웠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우리 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료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랄까. 또 꽤 호흡이 빠르게 진행되어진 부분으로 말미암아 보충적인 설명을 요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가볍게 마시고 여운을 즐기기에는 충분할 것이라 사료된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이 목구멍의 갈증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세계사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만한 음료를 원한다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그 안에 녹아있는 달달하고 쌉싸름한 음료를 들이키는 순간, 어쩌면 주변에 공룡이 추위에 온 몸을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만큼 이 책 한 잔으로 역사의 뼈대까지는 아니어도 가지가지 뻗어있는 줄기에 맺힌 과실들의 풍부한 과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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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양지바른 그늘



  우선 서평을 쓰기 앞서,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 내게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부여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말그대로 생각을 나열한다는 것이지 잘못된 정보를 입력시키기 위한 작업이 아님은 분명하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그것을 나눌 준비가 되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서평은 부적절한 글이라 사료된다.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내가 접한 그대로의 ‘앰 아이 블루’에 대해 말해보자면 정말 Blue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이나 심각한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추 티엔 원의 ‘이반의 초상’ 이라든지 이경화의 ‘나’를 읽는 편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청소년 문학의 한계점이란 바로 그런데 있는 것일까.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감정적이며 적당히 머무른다. 그렇다고 대다수의 청소년 문학이 다 적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아를 형성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유년 시절에 혼곤한 트라우마를 가질 필요는 없다해도 적어도 그것에 대한 생각이 올곧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서는 선천적인 이반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 역시 큰 어려움 없이 그들을 받아 들인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의 픽션임을 감안한다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적당할 것인가. 성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경각심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떤식으로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썩 좋지도 썩 나쁘지도 않았다. 모호함이 아니라 별다른 기억을 심어주지 못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장에 꽂아두면 언젠가는 잊게 될.

 

  동성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개성과 자긍심, 감동이 가득한 단편들이란 말이 무색하다. 무엇이 어떻게 어떤식으로 편견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는 말인가.
  자, 이제부터 모여보세요. 말한 사람이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것 같은 당황감이 가독성을 떨어뜨렸고, 주제의식을 흐리는 몇몇 단편들 때문에 글의 흐름이 매번 막히는 기분이었다. 청소년기에 접한 이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계기와 터닝포인트를 줄지는 알 수 없다. 손안에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소설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편견없는 시선으로 풀어나가고자하는 취지는 좋았으나 ‘적당함’ 주변을 웃도는 이야기는 현실감이 없다.
  ‘앰 아이 블루’에는 일률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 속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가볍게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어쩌면 비현실적이다, 라는 느낌을 더욱 부각시키는지도 모른다. 천륜을 져버리고 힘든 선택을 해야했던 그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결함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크로스 섹슈얼로 ‘왕의 남자’와 ‘이준기’가 예쁜남자 신드롬과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대세는 ‘동성애’를 받아들인다는 시각을 던져준다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반짝’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처럼 언제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위주의 가십으로 떠돌 뿐, 가슴으로 받아들인적이 없는데 그것이 각인되어 새겨지리라는 기대는 어리석은 것이다.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음지로 내몰려 손가락질 받는 그들의 기구한 삶과 인생, 그것을 하나의 이슈로 떠올려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비슷함을 사랑한다. 사랑을 하면 닮아가고, 닮았기에 사랑한다. 닮아가기 위한 절대적 요소는 ‘배려’이며 ‘이해’이다. 그렇기에 그 익숙함을 사랑하고 그것이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반인륜적 삶이라 일컫어 죄인의 낙인을 찍고 그들을 음지로 내모는 것이 옳지 않다, 느끼면서도 그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던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은 아닐테니 말이다. 나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가 주는 생소한 감각은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다해서 그들이 선택한 삶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손가락질 하고 비난할 당위성은 없다는 것이다. 


  음지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사회적인 멸시과 편견 가득한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용납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성정체성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것은 명명백백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그렇게 고립되어 세상 속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양지바른 곳에 사는 식물들은 음지에 가서는 살 수 없다. 또 음지에서 자라난 식물들 역시 양지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팽배하게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삶이 있다. 그것이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괜찮아. 오빠. 오빠가 남들하고 다른 거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나도 그래. 나도 다른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거 좋아해보려고 했거든. 그러면 애들이 날 좋아할 것 같아서. 근데 아무리 해봐도 유치한 파티에 가는 거랑 쇼 프로그램 보는 건 너무 싫어.”

  라고 마이클의 여동생, 이란 단편 속 베키가 마이클을 향해 말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중립을 지킨다. 지나치게 애정을 쏟지도 그렇다고 무관심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삶속으로 함께 뛰어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싶다.

 

  이 서평의 제목이 양지바른 그늘인 이유는 양지바른 그늘이 갖는 말의 어폐에 있다. 말그대로 양지바른 곳은 햇빛이 잘드는 창가처럼 명당 자리이다. 세상에 양지바른 그늘이란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양지바른 곳이라 할지라도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는 것 같다.
  공존되어 살아가나 상반된 삶은. 빛과 어둠의 뚜렷하고도 선명한 경계처럼 반쪽으로 나뉘어있다. 세상이 반쪽이 나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쉽고 편한 길이 있음에도 어렵고 힘든 길로 접어든 그들의 용기와 선택에 기꺼이 박수를 쳐줄 수는 없다해도, 그 용기와 그 삶과, 그 선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앰 아이 블루에서 느끼고 싶었던 것은 책표지만큼이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푸름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루 24시간 동안, 세상 속 다른 ‘이’반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파랗게 물들어 세상 속에 드러나면 어떨까? 싶은 재기발랄한 상상은 상상으로만 그쳤을 따름이라 그 역시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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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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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상상 속의 생존 본능

                                              



 

  나는 사실 좀비물에는 취미가 없다. 특히 하드고어나 스플래터식 좀비물은 사양한다. 비위가 상하고 기분도 불쾌해진다. 데드 캠프같은 인육을 즐기는 영화도 싫어하고 데드얼라이브 같은 살점이 튀기고 피와 고름등 끔찍한 영상물을 보면 토기마저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는 전설이다.' 를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된 까닭은 하드고어, 좀비, 스플래터 무비를 즐겨함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흡혈귀 소설이란 문구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전설이다.'가 하드고어 좀비물은 아니다. 그저 읽고 싶었다. 그토록 유명한 스티븐 킹의 소설도 읽어본 적도 없고 공포물보다는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내게 '흡혈귀'라는 소재는 내 호기심을 적당히 자극했고 (나에만큼은) 미스테리하고 신비한 현상인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브람 스토커의 흡혈귀 영화는 본 적이 있어도 글로 접하는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나 그 공포를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사실 책장을 덮은 후, (아직 단편들은 보지 않았으니 순전히 '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감상이 되겠다.) 가슴이 오그라드는 공포보다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로버트 네빌이 고립과 최후에 남겨진 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내 상상력 속안의 공포는 극대화 되어 터질 듯이 맥박쳤기 때문이었다. 마치 공포가 피와 살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흐르는 핏줄기마다 서늘한 기운이 어렸고 목덜미가 스산했다. 그 이유는 나의 상상력 때문이었다. 상상력이 불어넣는 공포보다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극한의 상황. 그러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져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체념하게 되는 '네빌'과 나는 닮아 있었다.

  사실 이 '나는 전설이다.'는 공포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나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무섭거나 끔찍함을 선사해주지는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공포소설 이랄까. 그러나 나는 은연중에 너무 끔찍할 것 같다, 느끼며 지레 겁부터 먹고 있었기에 더욱 스산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치밀하게 모든 내용을 상상해보며 책을 읽기도 전부터 극 주인공이 되어 최고의 정점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 대한 몰입도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나 자신이 로버트 네빌이 되든가 아니면 내가 흡혈귀가 되는 수 밖에 없다.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고립과 고립, 대립과 대립, 공격과 공격만이 있을 뿐이다. 선택의 몫은 글을 읽는 독자(물론 나또한)도 극중 주인공인 '네빌'도 아니다. 신세계 속의 구성원들이다. 모든 것을 감시하고 네빌의 행동을 찾아내는 검은 옷을 입은 그 구성원들은, 돌연변이된 '신세계'였다. 박테리아 덩어리들이었을까? 돌연변이된.

 

 

                 

 

 

 

  맹목적인 공포를 세뇌당한 듯 책장을 덮은 뒤에 현실과 조우하며 깨달은 것은 네빌을 괴롭혔던 '편견' 그 자체였는지 아니면, 네빌이 느꼈을 최후의 인간으로서의 '고립감'인지. 그도 아니라면 생존 본능을 두고 벌어지는 '살인'에 관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자신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의 상상력 조차 없어서?' 내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어쩌면 '상상력'이지 않았을까.

  나를 제외한 모든 것, 미생물 조차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언제 살점을 뜯기고 사지가 쥐뜯겨 피를 빨리고 그들의 추악한 욕망에 잡아먹힌다 생각하면 그 도망치는 순간마저도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가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도망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이 싫다. 생명이든 무엇이든 '나' 를 두고 쫓기는 상황만큼이나 최악인 것은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파괴하고 점철해 나를 극한 공포로 몰아넣는 그 감정이야말로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나라면 과연 자살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체념을 터득하여 빛한줄기 없는 삶을 단조롭게 영위할 것인가. 최후의 인간으로서의 고립감은 네빌과 나의 색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네빌이면서 네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전설'이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전설'이지 않았던가 싶다.


  끝까지 '루스' 그녀를 불신하다 결국에는 그 온기에 무너져버린 남자를 보며 나역시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싶다. 자문하고 의심하며 불신하였지만 종국의 그 언저리마다 그저 믿고 싶은 감정들이 매달려 있었던 듯도 하였다.


  한바탕 달리기를 하듯 심박이 뛰어대는 소설이었다. '홀로'된 '고립감'으로 진정한 공포라 시사한 '나는 전설이다.'는 기대와 상상의 크기엔 절반도 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끌어모은 리처드 매드슨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본다. 가슴을 찔러대는 소름끼치는 감각만이 공포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결코 맞지 않을 것이다. 용의주도하며 세밀하게 묘사된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죽음과 생명의 굵직한 경계가 아니라 오로지 괴롭도록 처절한 고립감일 뿐이니 말이다.


  치밀한 상상력 속 잔인하도록 끈덕진 생존 본능에 대한 공포는 물거품처럼 허무하다. 그러나 여운이 길게 남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설이다.

  제목 그대로, 그는 전설인 것이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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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레드 - 삶의 숨은 진실을 찾는 15편의 심리동화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영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RUBY RED}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읽지 않아 그녀의 전공법을 잘 알지는 못한다. 심리를 다룬 동화라는 말에 책을 구매했고, 무엇보다 책 표지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중세유럽의 문양과 붉은 색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치 가죽위에 문양을 찍어낸 것처럼 고풍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금장양식이 달린 가죽책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표지가 마음에 들어 구입하게 된 것이었다.
  두꺼운 책에 희열을 느끼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책을 사게 된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순전히 책 두께로만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양장도 아니고 205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 책에 8000원이란 돈을 부어 살만한 것인가, 초반에는 그런 생각때문에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였다. 삶의 숨은 진실을 찾는 15편의 심리동화라는 말에 혹해서 산것은 아닌가도 싶었고,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심리적인 상술이 아닐까 싶을만큼 나는 얇은 책이 싫다. 어쨌든 책 외양에 대한 것을 넘어 이제 내용으로 넘어가야겠다.

  어릴적부터 수많은 동화를 읽었고, 안데르센을 넘어 우리 나라의 전래 동화, 우리 나라에 내려오는 설화적인 동화까지 모두 읽었다. 그런면에서 나는 어릴적에 나름대로의 애독자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덜 읽는듯 하니;
  어쨌든 읽어본 동화도 있었고 또 새롭게 접하는 동화도 있었다. 로렌 슬레이터 작가가 시점을 바꿔 적어 그리 느끼는 것일수도 있다.
  루비레드, 이 책의 제목이면서 백설 공주 이야기의 제목이기도한 루비레드.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백설공주일 것이다. 그런데도 한동안은 왜 이 책의 제목이 루비레드였나, 에서 헤매였다.
  동화는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고양이 소녀 리뷰를 적었을때, 생각이 자란 후에나 완전히 갖게 될 수 있다고 적었듯이.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이다. 이 루비레드도 그렇다. 난해하고 어렵다.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어 읽다보면 그 여러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움 마저 생겨났다.
  루비레드 안에 들어있는 감정들은 고요하면서도 격렬하고 또 강렬하다. 그 의지가 뚜렷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백설공주 이야기 에서는 점차적으로 아름다워지는 딸과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을 잃는 여인의 감정이 붉은 과실처럼 흘러넘쳤고, 변신에서는 초록빛깔의 유리병과 하늘 너머 하늘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무채색인 감정이 하늘 곳곳에 물감처럼 퍼져있지 않았던가 싶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꽤 있지만, 그중 기적의 알약이 내겐 하나의 코메디같이 느껴졌다. 설탕으로 만들어낸 약이 만병통치약이 된다라. 마음의 근심은 원래 넘쳐나는 법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또한.
  이 루비레드에서 느낀 점은 사람들의 천진하고도 순수한 욕심이다. 추악한 욕심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서술했다는 점에서 나는 약간의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동화로만 볼 수 없는 심리극을 접한 기분. 간결했지만 강렬했고 무언가 여운이 남는다. 얇은 책이라 처음에는 투정만 부렸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진부한 표현들과 진부한 내용들. 모두가 알고 있기에 더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또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과 내용들.
  나쁘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내 여자 친구의 팔처럼 책임을 회피한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왜일까. 까마귀의 슬픔의 돌을 삼켜버린 것처럼 누군가의 감정을 온전하게 짊어진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도 오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의미에서 읽고 이 책을 사서 내 책장에 넣어두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나 또 썩 좋은 일도 아닌 듯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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