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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 -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
하지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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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이자 신문과 방송 심지어 SNS까지 아우르며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는 하지현 교수님의 열세번째 책이다. "우리 사회의 '지금, 여기'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힘을 북돋는 법을 소개한다.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을 즐겨봤고 지금도 좋아한다는 저자는 예능을 통한 치유 효과를 말한다. 흔히 '바보상자'로 일컫는 텔레비전이지만 생각없이 보고 웃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로서, 지친 삶을 달랠 해법을 예능에서 발견,  그것을 '예능력'으로 명명한다. 


예능이 우리 삶에 주는 활력, 곧 예능력은 우리가 무시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무한도전>과 <런닝맨>을 보고 깔깔 웃어놓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괜히 쓸데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강박에 자책하는 당신, 그럴 필요 없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적극적인 충전을 위한 긍정적 퇴행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낭비한 것 같겠지만, 실은 예능을 통해 휴식하며 다음 날의 도약을 위한 몸과 마음의 최적화 과정을 밟은 셈이다. 예능에 정화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5개의 챕터로 구분된 책은 건강한 정신과 몸이 공존할 방법을 알려준다. 1부 나를 단단하게 지키는 힘, 2부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힘, 3부 삶을 놀이로 만드는 힘, 4부 삶을 감동으로 채우는 힘, 5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힘이 그것이다.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허세라도 부리라며 장근석 이야기가 등장하고,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 개콘 달인 김병만과 류담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독설의 의미 설명을 위해 김구라가 나오고 스토리텔링을 위해 허각이 나온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능의 인물과 상황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학문적으로 입증된 이론으로 받쳐준다. 친숙한 TV프로그램 이야기가 곁들여져서인지 매우 쉽고 재밌게 읽힌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식상하게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워낙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 예시로 등장해 어지간한 필부들도 눈치 챌만한 '예능력'이 한 챕터를 차지하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기대한 독자로선 시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삶과 밀접한 TV프로그램에서 찾아낸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삶의 지혜가 실질적으로 더욱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내가 심리학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회성으로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넓은 식견과 무수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진리가 책에 농축되어 있다고는 하나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인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말해주는 심리학 책은 작심삼일은 커녕 작심3시간도 힘들었다. "책으로 배웠어요"의 한계랄까. 그러나 TV프로그램 하나에 숨쉬고 있는 값진 가치들을 전문가가 건져올려 먹기쉽게 조리해 준비한 이 상찬은 TV를 볼 때마다, 재밌는 경험을 할 때마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웃을 때마다 쉽게 떠올리며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마음다스리기' 또한 놀이로 만드는 것. 그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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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가지 질문도구의 비판적 사고력 연습
M. 닐 브라운, 스튜어트 M. 킬리 지음, 이명순 옮김 / 돈키호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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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최고.

왜 28년간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논리는 빠져있었을까.

아마도 끈기없이, 싫은건 내팽겨쳤던 나쁜 버릇 때문이었겠지.

대학 졸업하고 고생하면서 그 버릇 완전히 버리긴 했는데 그 동안 구멍난 부분 메우느라 이리저리 헤매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찾은 이 책은 정말. 나에겐 한줄기 빛이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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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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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공격 이후 부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자원입대와 헌혈 대신 더 많이 소비할 것을 호소했다. 수천만 미국인들은 조기를 내걸고 조국을 위해 뭔가 하길 바랐지만, 몇 달 후 있었던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지역 봉사 활동에 매진하라고 제안했다. 

1960년대 미국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혼돈의 시대였다. 2차 대전 후 평화를 찾았지만 내부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부재했고 빈민의 숫자는 늘어갔다. 당시 대통령이던 케네디의 선택은 ‘뉴 프런티어’였고 ‘평화봉사단’이 그 가치를 실천했다. ‘평화봉사단’의 대상은 빈곤에 허덕이는 민족들이었지만, 봉사단 창설은 케네디가 미국인들이 국가와 세계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간파한 결과였다. 국가는 난관에 직면했을 때 더 이상 국민들에게 그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저자는 시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재정과 군사 행정을 담당하며 중추적 역할을 했던 시민들은 이제 서비스를 받는 고객으로 탈바꿈했다. 행정력과 강제력 추출 능력을 제공하고 법적 권리, 연금, 투표권을 포함한 다양한 보상을 받던 시민들의 참여가 약화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 없이도 군대를 모으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60년 이상 투표율이 하락했다. 유권자 대중은 주변화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어떠한 음모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 시민의 쇠퇴와 몰락의 책임을 물을 만한 특별히 반민주적이고 전면적인 공격을 찾기는 어렵다. 과거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정치적 탈동원화의 이면에는 대개 좋은 의도, 민주적인 목적들도 있었다. 많은 경우 시민권의 쇠락은 정부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또한 정부와 경제가 더욱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든 실천들도 시민권이 작동할 공간을 축소시켰다. 시민에 대한 정부의 의존이 약해졌다는 것이, 정부가 시민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정부는 새로운 조건에서 시민을 대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시민의 충성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으로 시작되었던 정치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중이 필요 없게 된 새로운 시대의 정치는 어떠한가. 투표가 존재하는 한 정치의 권위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다. 과거 정치 엘리트들이 경쟁적으로 유권자들을 동원하면서, 투표율은 그 뒤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1980년대에 이르면 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들의 80퍼센트 정도가 대통령 선거 투표에 참여했고, 의회 중간선거 투표율도 70퍼센트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에고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조차 유권자(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 유권자 기준)의 절반 정도만이 간신히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한때 자기편이 되어 달라며 도움을 요청받았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게 됐다.


오늘날에는 19세기 방식과는 달리, 어떤 정당도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는 수천만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미국인들을 동원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광고는 이미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 의사를 가진 중산층 미국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상정한다. 정교한 여론조사 기법은 후보자들이, 선거에 이미 관심을 가진 한정된 유권자 층을 대상으로 그들의 구미에 맞는 정치 광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 자격이 있는 6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 엄청난 규모의 잠재적 유권자 층에 대해 정당들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정치적으로 무력한 이들을 활성화해 정치적 균형 상태에 변화를 기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의 유권자 층을 지키며 그들을 만족시키는 데 더욱 주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주류 자유주의의 경향은 ‘탈물질주의’다. 이것은 특수 이익의 지저분한 난투극을 초월한 양, 허공에 붕 뜬 채로 삶의 질을 강화하는 데 시선을 둔다. 이때 많은 경우 경제적인 사안은 고려되지 않는다. 고래와 야생동물 보호에 찬성하고 동성애자 배척에는 반대한다. 나름의 고상한 명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풍족한 사람들의 명분이다. 한때 공장노동자, 빈곤층, 저학력 계층을 대변했던 민주당이 이제는 중상층의 교외 ‘사커맘’의 옹호자로 거듭나고 가난한 다수의 미국인들을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버리는 복지 개혁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정당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정치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이 선조인 제퍼슨주의자들과는 달리, 약자들을 풀뿌리 정치 운동에 참여시켜 그들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통치자들로 하여금 우리를 시민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는 근본적으로 시민들 간의 약화된 유대와 정치 엘리트들과의 유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은 과녁이 너무 흩어져 있어 정확히 겨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서투른 제도적 보완 정도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실 제도적 처방에 대한 선호 자체가 시민들을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한다. 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공적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개입 없이 공공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식의 기계적 해결책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 편리함은 시민권의 본질적 특성을 은폐한다. 개인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들은 서로에게 자신을 설명하거나 자신의 필요를 정당화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집단 동원의 경험은 시민들이 공익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이해를 형성하도록 만든다. 


대중의 시대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치적 통치의 대상에 불과했던 존재들이 공적 영역에서 정치 행위자가 되고 완전한 시민으로 진화해갔다. 공적 영역은 그들을 하나의 대중으로 만들었다. 역사에서 이런 발전이 시작된 지점이 있었듯이 끝도 있을 것임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지금 눈앞에 있다. 어쩌면 대중이 조용히 정치에서 은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이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려면 집단 동원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여전히 자신의 ‘고객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탈동원화의 과정은 중단될 수도 있다. 


개인민주주의는 그 체제를 내재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모순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마비에서 대중이 부활할 희망을 찾는 것이 그리 행복한 전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중은 무력해지고 홀로 작동하는 정부가 공익에 기여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을 마치며 남긴 그의 우려는 ‘머지않아 미국 정치에서 가장 절박하고도 걱정스러운 문제는 “알게 뭐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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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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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리스였을까. 200여 곳의 폴리스가 허구한 날 전쟁을 벌이다가, 서로 빼앗을 것이 떨어지면 바다로 나아가 해적질이나 일삼던 땅에 새로운 문명이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명의 조건이 비옥한 대지와 넘치는 인구와 풍요 같은 것이라면 그리스는 정확히 그 반대다.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구경하기 어렵고, 허기와 갈증으로 갈라지는 땅, 전체 강수의 90퍼센트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쏟아지는 저주받은 땅,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해류와 폭풍이 수시로 변덕 부리는 바다만이 남은 땅에서 찬란한 서구 문명이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p.314)


이 책은 그리스 신화나 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 여행기다. 그리스는 여행지보다는 신화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제목만 얼핏 보면 박경철 원장이 예의 그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친절하게 신화를 들려줄 것 같지만, 책 속엔 '날 것 그대로의 그리스'가 담겨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전까지만 해도 안철수 전 교수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고, 라디오 방송, 트위터 등으로 왕성하게 사회에 에너지를 불어넣던 그의 소식을 한동안 알 수 없어 궁금했더랬다. '안철수 후보의 최측근'으로 정치계에 입문할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은 빗나갔다. 숱한 러브콜과 의심어린 시선들에 시달렸던 것일까. 박 원장은 20대의 자신에게 불씨를 지피고 지금까지 정신적 멘토가 되어 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흔적을 좇아 그리스로 홀연히 떠났다.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긴 여행의 기록입니다."(p.6)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모두 열 권의 책으로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숨결을 따라 그리스와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까지 전체를 횡단하며 기록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책은 그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그리스에서도 문명의 발상지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라 할 수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여행기다. 익히 알려진 코린토스, 미케네, 올림피아, 스파르타 등 고대 그리스 문명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싹튼 땅이 바로 펠로폰네소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비롯해 총 세권이 펠로폰네소스이며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 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 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젊은 시절부터 정신적 멘토가 되어준 이를 향한 최고의 헌정이 아닌가 싶다.


▲ 아폴로 신전에서 저자 박경철. 출처 = 박경철 트위터                                             ⓒ 박경철


책은 재미있다. 기행문 답게 묘사가 생생하다. 보고 듣고 만진 것에 대해 자세하다. 비유가 매우 많이 등장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그 표현들이 참으로 적절해서 공감의 폭이 한층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책은 여행 가이드 역할도 충실히 할 것 같다. 저자의 오랜 그리스 사랑에서 비롯된 그리스에 대한 풍부한 이해는 그리스를 어떻게 맛보고 즐겨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예컨대 '버스보다는 렌터카를 빌려 메가라를 지나 해안을 따라가는 옛길을 이용하라'든지 '어지간히 예민한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발견하기 힘든 아크로코린토스 성채의 안내 등은 딱딱한 여행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혹은 '그리스는 마을 공동체가 발달한 곳이라 관광지건 유적지건 기차역이건 식당들이 최선을 다하는 특징'이 있다며 3쪽 가까이를 그리스 음식 문화로 이야기를 풀고, 코린토스 항구 앞에서 시니스의 스산한 전설이나 아시아 전역의 상인들이 모여들었던 과거를 상상하는 등 공간과 그리스에 대한 애정어린 그의 시선은 따라가기만 해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륙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코린도스가 성경의 고린도전서의 '그 고린도'였다는 것이나 헬레나가 트로이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며 세기의 스캔들을 만들었지만 스파르타에선 여전히 칭송받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겐 다행이었다. 지극히 상식같은 이 이야기들을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무지한 내게 고대 그리스는 이미지로 존재했다. 조각적 정보가 많지만 그 개연성이 불분명했고, 문명의 발상지라는 피상적 실체만 머릿속에 있을 뿐 자세히 아는 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단편적 정보들은 기행의 형식을 띠고 친절하게 그리스를 톺아주는 글을 통해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듯 조직되었다. 기행의 글에서 앎을 즐길 수 있었다. 


보통 그리스에 관한 책은 신화가 많고 대부분 신들을 가운데에 놓고 신들의 관계도나 신화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도 저자가 밝혔듯 공간을 줌인하여 면밀하게 관찰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실로 색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공간이 담고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에는 구체적인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p.17) 연대기의 틀을 고수한다면 왕조나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한 주류의 이야기에 머물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명멸했던 그 모든 문명이 그들 주류들의 몫이라 잘못 전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명이란 지배 계급만이 아니라 허리 휘도록 무거운 돌덩이를 등짐지어 나르며 그 위대한 문명의 탑을 쌓아 올린 이름 모를 민초를 빼놓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법. 문명의 정통성이 바로 민초들에게 있기 때문이다.(p.18) 박 원장이 그간의 활동에서 보여줬던 평범한 이들에 대한 애정은 여기서도 드러나는 듯 하다. 본인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의사라는 본업에 증권전문가, 방송인, 거기에다 작가라는 직함까지 전 분야를 섭렵하는 전문가면서 힘든 청춘을 위로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 측면에서 반대편의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박경철 원장이 나는 좋았다. 그의 글을 따라가보면, 진정성을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가 책에는 또 있었으니 예상하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공간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고있을 때 카잔차키스의 말들이 바람처럼 실려온다. 그리스에서 나고 자라 깊은 통찰을 보여준 그와 그리스를 사랑한 이방인간의 교감은 진실되게 이뤄진다. 여행 중 작가가 경험했던 그리스인들과의 즐거운 추억이나 독특한 경험, 또는 스파르타엔 과연 전사들만 있었는지,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신을 섬기는 그리스인들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은 무엇인지 책을 통해 확인해 보라. 신화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그리스가 성큼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미났던 부분은 신을 섬기면서, 신을 신처럼 여기지 않았던 그리스 인들의 패기다. 인간과 신의 알력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제가 괜히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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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5-11-1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과제 준비를 하다가 검색을 통해 유입했는데,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와 책을 알아갑니다.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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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는 미국의 과학 잡지 지의 창립자 애덤 블라이가 기획한 학자들의 대담집이다. 노암 촘스키, 에드워드 윌슨 등 학계의 거장들이 참여했고 주제 또한 모두 22가지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2개의 주제는 거의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만나 각자의 프리즘으로 바라본 세상과 ‘협공’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진행된다.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주제의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재미가 기대했던 것보다 매우 쏠쏠하다. 기획자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학문 간의 경계를 이제는 허물어야 한다며 새로운 패러다임 수용을 주장하는데, 시야를 넓히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접하기에 좋고, 원하는 주제만 30분 발췌독이 가능한 짤막한 대담으로 이뤄져있어서 부담이 없지만, 꼭꼭 씹어서 읽어도 소화할 거리가 많다. 5년 전에 기획된 책인만큼 이 책이 전하고자하는 ‘통섭’이라는 키워드의 새로움이 우리에겐 이미 익숙할 수 있으나 새로운 차원의 접근과 다양한 층위를 넘나들며 이야기들은 새로운 지점의 새로운 물음을 계속해서 던진다. 철학, 사회학, 혹은 정치나 문학 등 관심의 영역이 다소 한정적이었던 독서가라면 이 책이 흥미로운 확장의 기회를 만들어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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