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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자신의 피붙이는 모두 땅에 묻고 혼자 남아 밭을 가는 한 노인이 있다. 그 노인의 이름은 복귀(福貴)이다. 젊어서 방탕했던 그는 부농이었던 서씨 가문을 노름으로 몰락시킨다. 어머니 약을 사러 현에 나갔다가 국민당에 잡혀서 대포를 끌고 전장을 다닌다. 2년을 굶주림에 시달리다 해방군의 포로가 되어 귀향한다. (배고픈 자에 만두를 주고, 집에 가고자 하는 자에게 여비를 주는 것이 복귀에게 다가온 해방이다.)
복귀는 대약진운동과 59년 대기근, 문혁을 겪으며 사랑했던 가족(유경,봉하,가진,이희,고근)을 모두 잃는다. 아이러니한 죽음이 꽤 있다. 1.복귀의 아버지는 대변을 보다가 죽고 2.그의 아들 유경은 헌혈을 하다 피가 다 뽑혀 죽고 3.그의 손자 고근은 삶은 콩을 너무 먹어 배불러 죽는다. 복귀의 부유함을 강탈한 용이는 농지개혁 때 처형 당하고 전우였던 현성의 長인 춘생은 문혁때 죽는다. 그는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들의 죽음을 보고 삶을 달관해 버린 자신을 느낀다. 이 책의 원제는 活着이다.
사는 일에 짝 붙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서두에 써 두었다. 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은 독자라면 1부에서 촌의 정경을 묘사하면서 강인한 섹스의 이미지를 사정없이 뿌려두었는데 소설 전편을 뚫어 그런 야한 장면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옥의 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로 기억에 별로 없지만 '인생'의 장예모가 공리를 가진역에 캐스팅하면서 감독은 복귀보다는 妻인 가진의 시각에서 작품을 해석했다.
난 '두여자 이야기'류의 이야기 (남편덕에 고생하는 여자이야기)로 착각했다. 소설은 전혀 다르게 한 남자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복귀는 집을 날린 후에는 삶에 긍정적인 촌부가 되었다. (복귀가 현대 중국의 상징일 수도 있다) 단지 슬프다고 하기에는 뭔가가 허전하다. 비장미(悲壯美)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주먹을 꽉 쥐고 내일은 또 다른 날이라고 다짐하는 그런. 아주 오래간만에 아주 괜찮은 소설을 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