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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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고 생각하는 작가 지망생 윌리는 생의 끝에 닿아 자신을 알아 주었던 어린 시절 스완슨 선생을 찾기로 한다. 본즈라는 잡종견을 부탁하려는 이유다. 이 거추장스런 개가 주인공이다. 소설의 백페이지 쯤에서 윌리는 죽어 버리고 그 후로 본즈의 관념 안에서만 등장한다. 이 개는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영어를 알아 듣고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 개의 눈을 통해 본 인간들의 세상사가 글의 힌트이다.

소설은 노곤한 삶의 이야기다. 고독과 상실, 그리고 우정의 이야기를 한다. 윌리가 죽은 후 사람들은 본즈를 절대 혼자 놔 두지 않았던 윌리와 다르다. 칼이라고 불렀던 헨리 초우, 스파키라고 불렀던 폴리. 그들은 본즈를 인간의 충직한 하인 혹은 자신들이 외로울 때 찾는 장난감으로 생각했다. 본즈는 그들의 동반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과 그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려 했던 윌리를 찾아 팀벅투로 가기로 한다. 본즈는 이제 '스파르카투스'가 되었다. 윌리와 본즈는 계속 뭔가를 찾아 헤매지만 그들의 종착지는 팀벅투이다. 그 곳은 최선이 통하지 않았던 좌절의 삶을 끝까지 버텨내게 했던 유토피아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행위이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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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사회의 성공전략 키워드
다사카 히로시 지음, 금대연 옮김 / 학민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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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프로페셔널이 되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적 프로페셔널이란 체득지식 (다른 말로 암묵지, 지혜, 심층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로, 다른 사람으로 대체 할 수 없는 개성을 가진 근로자를 말한다. 지적 프로페셔널의 궁극적인 모습은 예술가이다. 자신의 인생을 가장 아름다운 예술로 꾸미는 자다. 지식 근로자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새로운 개념으로 지식 프로페셔널이란 개념을 창출하였다. 그들은 검색력 (자기), 경청력 (상대방), 반성력(피드백) 을 방법지로 하여 성장한다.

자기 투자에 있어 문제되는 것은 무엇을, 어디에, 성과측정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해답을 들어보라. 무엇을?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자신의 업무에, 성과측정은 ? 자신의 성장에 있다. 종합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업무에 투자하고 그 성과는 자신의 성장으로 측정하는 것이 자기계발이라는 말이다. 일본 특유의 충의 관념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일을 사서라도 하라'고 한다. 뛰어난 인재에게 일과 기회가 집중된다는 이유이다. 물론 과로사 걱정은 안 한다.

새로운 시대의 직업전략은 두 가지다. 파도타기와 수확체증의 법칙. '파도타기'는 등산처럼 고정된 환경을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바뀌는 환경아래에서 그 흐름을 읽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은 지수함수와 같이 기울기가 증가하는 함수이다. 저자는 네 가지를 수확 (Return)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지식, 관계, 브랜드, 성장이 그 네 가지 보수이다. 이 눈에 안 보이는 보수를 측정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새시대의 직업전략이다. 연봉이 적더라도 지식이나 관계, 자신의 브랜드, 자아 성장에 도움이 되면 그 직업을 선택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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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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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댐과 핵은 전 세계의 문제임과 동시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은 지배의 도구인 댐과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유를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에 순응하지 말고 각자의 논리로 무장하여 제대로 된 눈으로 읽어 보자는 것이다. 현대 인도정치에 대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미국 중심의 '자본 사기'에 더 이상 놀아 나지 말라. 소설가답게 글이 재미있고 선동적이다.

댐이 홍수와 가뭄을 막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댐은 지금보다 더 큰 손실을 가져온다. 증명되지 않은 정부의 주장을 거부하면 누구라도 입증할 수 있다. 댐은 핵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문제인데 그 주인공은 정치가, 관료, 댐 건설업자의 철의 삼각이다. 외국 자본은 댐 건설을 위한 돈을 빌려 주고 댐 건설에 필요한 장비를 팔아 다시 회수한다. 그래서 댐은 국제 자본의 조작이다. 이는 누가 물을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댐은 스테로이드 약물을 투여한 운동선수에 불과하며 시장과 연결되는 작물만 경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권력은 빼앗은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의하여 강화 된다.

핵 보유는 멸망으로 가는 첩경이다. 전쟁 억지력으로서 핵은 위험한 농담에 불과하다. 시장에 나온 핵은 소설가 조차도 핵을 살 수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를 보라. 세상은 정상인만 사는 게 아니다. 미친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더해 억지력이란 공포라는 전제가 필요한데 지금 이 시대사람들은 핵에 너무나 무지하다. 그래서 그 '공포'가 제대로 작동 하지 않는다. 인도가 핵을 보유하는 문제를 보자. 그들은 핵을 민족문제로 생각하는데 '중국'과 '파키스탄'과의 분쟁이 핵보유로 해결 되는가? 핵을 보유한 지금이 더 위험하다. 서구의 위선을 폭로해보겠다고? 서구의 그런 위선은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핵폭탄은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다. 포기하자.이 책이 순진한 여성적 시각에 불과한가?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약자의 논리로 무장한 비겁한 자기연민일 뿐인가? 읽어보고 판단해 보라. <희망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믿음을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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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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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저자의 '직접' 경험에 영화라는 '간접' 경험을 버무려 글을 써 내었다. 이것이 소설가가 영화를 보는 방법이다. 킬링 타임으로 좋다. 재미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구미에 맞을 것이다. 쉽고 즐겁고 단순하다. 영화 한 편에 단순한 아포리즘 하나를 제시한다. '엑소시스트'에서 공포는 공감이라는 것, '포르노그래피 트래픽'에서 인생은 오해라는 것, '화양연화'에서 삼십대의 사랑은 절제라는 것, '메멘토'에서 문제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것 등이다. 더빙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는 저자의 모습은 매주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만 보는 당신도 문화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는 말로 해석된다. 전작 '굴비낚시'보다 못하다. 사실이다. 재기발랄이 상당히 죽어버렸다. 안타깝다.

영화를 싫어하는 이상한 소설만 쓰는 소설가가 소년가장이라는 불쌍한 이유로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를 종횡한 그의 글을 친구의 그림과 함께 묶어 책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러니 어디선가 본 듯한 글들이 있을 것이다. 실망하지 마라. 작가는 소년 가장이다. 불우작가 도우기 캠페인에 참가했다고 생각하라. 이 얼마나 호방한 자기긍정인가. 자신있게 자신을 긍정하는 자는 언제나 응원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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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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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당신과 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이야기다. 회귀하거나 도는 이런 고리 같은 게 이야기다. 이것이 저자가 인식하는 세상 혹은 그 은유로서 이야기의 모습이다. 노마드 (유랑인)와 정착인. 그들은 삶의 본질에서 같다. 다름은 피상이다. 결국 이야기란 살아가는 것이며 이 또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 세익스피어가 톰 클랜시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도 그 근저에 자리잡은 동일함이다. 이청준은 자신의 습작세월을 무소작 씨 (아무 일도 하는 게, 한 게 없는 사람)란 인물로 정형화 하여 그의 편력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결국 이야기란 진실을 포장해야 한다는 것, 진실이 없는 거짓 이야기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그런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인문주의자 (혹은 삶의 표류자) 무소작씨가 이야기 속의 꽃씨 할머니가 되는 과정이다. 물론 메타포이다. 꽃씨 할머니는 흔들리는 그의 삶의 뿌리이며 집만 지키기는 그의 유년과 편력의 중년이 합치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상징이 상징다워지고 이야기의 발단이 의미를 획득한다. 재미를 원하는 자 읽지 마시고 우화를 통한 그 상징의 의미를 캐 내는데 관심있는 저자의 팬들은 일독이 가치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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