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 도심 속 다른 집, 다른 삶 짓기
한은화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3월
평점 :
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너무 재미있고, 놀랍고, 부러운 글이었다.
"서울 도심에 같이 한옥을 짓고 사는 연인이 있다?"
어느 부분에서 놀라지 않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도, 막상 내 일이 된다면 이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저자가 글을 너무나도 유쾌하고 유려하게 써놓아서 그렇지 꼼꼼히 뜯어보자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길이었다. 때로는 구청, 때로는 시를 상대로 공문서를 직접 작성해 협상하고, 전혀 모르던 부분인 건축-그것도 규제가 가득한 구도심 구한옥-에 뛰어들어 건축가와 시공사 사이에서 조율해가며 '원하는 바'를 피력했다. 그나마도 대수선도 아니고 지하 공간을 만들어 올리는 재건축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가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싶은 고비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선택한 차선들이 현장에서 벌어진 한 순간의 실수로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당연하다 싶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모든 걸 내 취향에 맞춘 드림 하우스'란 필요한 비용도 비용이지만, 설사 충분한 비용이 있다고 해도 절대 완벽한 구현이 불가능하리라는 깨달음이 밀려온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하는 것 뿐이다.
저자는 웃으면서 풀어가고 있지만, 실생활을 바라보지 못하는 탁상공론과 불합리한 규제들도 눈에 띈다. 저자의 표현 중 "한옥을 문화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문구가 깊게 남았다. 정말 재생을 원한다면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다가가야 한다. 한옥이건 양옥이건 "사람"이 살아갈 "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집의 사진들을 보는 순간, 저자가 한 권 내내 풀어놓은 고생담은 어디론가 씻겨 내려가고 부러움이 가득 찬다. 나도 나를 위해, 내 가치관과 생활을 고려해 설계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원래도 개량 한옥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 나니 욕심이 절로 인다. 이 집은 두 사람의 삶을 최대한 고려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지만 제3자가 보았을 때도 충분히 아름답고 편안해보인다. 나 또한 진정한 나만의 집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이런저런 생각과 감동, 활기까지 불러일으켜준 고맙고 멋진 책이었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고, 생생하고, 아름답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디 아파트만 있는 세상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반세기 넘게 구축되어 온 아파트 중심의 도시가 불편하다면, 모두 똑같이 생긴 공간에서 살며 서로 비교하고 돈으로 평가하는 삶터가 피로하다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처럼 아파트 담장을 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와 다듬어진 길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값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계산법은 너무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개인들의 삶과 취향을 중심에 놓고 선택할 수 있는 집의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면 어떨까. - P11
애가 타서 물어본들, 타인의 취향일 뿐이었다.결국 나와 진택, 우리가 살 집이었다.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흔들리는 마음은 그 중심을 잡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어느 순간 중심을 잡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지하에 옷방을 두고, 1층 안방은 옷장도 화장대도 없는 잠만 자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 P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