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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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Between>과 <A Single Light>를 묶어 <라인 비트윈> 시리즈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독립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다.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화려한 문체와 유머 포인트가 자칫 밋밋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장면들을 실감 나게 살려준다. 다른 작품들도 좀 더 찾아 읽을 생각이다. 


이야기는 주로 22살의 윈터 로스라는 여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패턴 직물을 짜 나가듯 그녀를 중심으로 엮여나가는 씨줄과 날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렵게 만든다. 가볍게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복선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미처 그런 의미인 줄 몰랐던 장면이 다시금 재조명되기도 한다. 


사건은 크게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간다.


먼저 영구동토층에서 사육되던 만갈리차 돼지가 이상 증상을 보인다. 해당 돼지의 샘플을 구해 연구하던 한 대학생의 연구자료와 샘플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7살 때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종교 기반 공동체 엔클라베에 들어간 이후, 그 세계 밖에 모르는 채로 살아왔던 윈터 로스.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사랑하는 언니 재클린과 조카 트룰리를 두고 혼자 외부로 쫓겨나게 된다. 이후에는 엄청난 누명까지 쓰고 마는데... 그녀는 낯설고 두려운 외부 세계에서 누구를 믿을지, 믿는다는 행위를 해도 되는 것인지 두려워하며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 이전에 자신이 믿어왔던, 더는 보이지 않는 기억들과 싸워가면서. 


급성 조기치매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환자들로 인해 일상은 무너지고, 도시는 손쓸 수 없는 공황 상태로 빠져든다. 그나마 초기에 인구밀집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떠난 사람들만이 길 위를 흐르고 있지만 그나마도 연료가 떨어지기 전까지일 뿐이다. '도착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 모든 곳은 '길 위'일 뿐이다. 안전한 장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는가?


충분히 있을 법한 조각들이 맞물리며 벌어지는 거대한 감염의 비극과 참상. 현시대와 맞물리며 주인공의 감정들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특히나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상당히 구조가 잘 짜인 소설이라고 느꼈다. 과거 회상과 현재를 오가는데도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다 읽은 다음 그 의미를 깨달으며 '앗!' 싶었던 장면이 후추 그라인더를 주문하는 의대 교수였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라인 비트윈 - 경계의 선 자>에서는 현실과 괴리된 설정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료와 추위, 음식 등의 문제들이 부각된다. 맞물리는 사건들도 그 하나하나만 떼어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런 조각들이 모여서 어떤 그림이 나올 수 있는가? 저자가 책 속에서 제시하는 의문 역시 "적어도 아직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은 듯 느껴져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서늘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윈터가 맞을 미래의 세상도, 우리가 맞을 미래의 세상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단 한 발만큼이라도 나아간- 현실이기를 바란다. 


통념에 따르면 천국과 지옥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영원과 공간이라는 절대적 차원이.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 간극은 5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단 한걸음.
또는 신념의 전환. - P407

걱정하지 말자.
이건 소설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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