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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필요한 시간 - 빅뱅에서 다중우주로 가는 초광속 · 초밀착 길 안내서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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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과학은 현상의 관찰에서 출발한다. 그를 통해 쌓은 정보들로 가설을 수립하고, 그것이 충분히 개연성 있게 재연될 때 가설과 추측은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잡는다. 그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가설들이 쌓이면 추론을 통해 현상을 특정하고 관측해냄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증명하는 연역적 접근을 하기도 하지만, 자연 과학의 경우 대부분은 현상이 먼저다. 


궤도 저자의 신작 <과학이 필요한 시간>은 이렇게 일상적인 상황이나 현상에서부터 비롯되는 의문을 거대 블랙홀과 시간, 양자의 세계까지 풀어나간다. 무엇보다 그의 재치있는 입담과 유머가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므로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은 내려놓고 신나게 즐겨보시길.


이 책은 다양한 지식과 흥미로운 과학/수학사의 비하인드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무척 유익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내 일상과 어떤 부분에서 접접을 가지는지를 체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단락들을 읽어나가며 추가로 읽어보고 싶은 도서들로 확장 연결되는 부분들도 또 하나의 재미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을 쉽고 재미있게, 직관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저자라 읽는 동안 즐거웠다. 


다만,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블랙홀의 경우는 확인이 필요하다. OGLE-2011-BLG-0462(Sagittarius)은 기존의 A0620-00(Monoceros)보다도 멀어서, 궁수자리의 블랙홀이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부분은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22년 11월 새로운 블랙홀로 1560광년 거리의 뱀주인자리 블랙홀 Gaia BH1(Ophiuchus)이 발견되었으므로 어쨌거나 상황이 바뀌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역시 광속 뿐이다.


마치 본문 중의 문장과도 같은 상황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오직 이 사실만이 절대적이다."


즐겁게 읽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도대체 왜 살아갈까? 누군가 묻는다면, 갑자기 우리 머릿속은 하얗게 바뀌며 반사적으로 사고를 멈춘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 혹은 취미가 무엇인지 정도의 가벼운 질문이라면, 보통 몇 초 만에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질문은 평소에 충분히 대비되어 있지 않아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어쩌면 굉장히 좋은 질문이며,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 도전할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다른 강물들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멀리 볼수록 과거를 보며,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는 훨씬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더 먼 과거를 볼 수 있고, 최초의 별이나 은하를 연구할 수도 있으며 이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죽어가는지, 그리고 외계 생명체 탐사나 생명의 기원도 연구할 수 있다. 수많은 과학자의 기대와 염원을 한 몸으로 받아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아주 희미한 천체들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담아낼 텐데, 이제 공식적인 첫 번째 사진이 공개될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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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워프 시리즈 2
알렉산더 케이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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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케이의 작품은 처음 접했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특정 세대의 대표작들을 잊혀지지 않게 번역해 소개한다는 일은,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의미 깊고 감사한 일이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허블 출판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점은 인간의 '개체성'이 무척 희미하다는 점이다. 그는 뚜렷한 선악 구도가 아닌, 상황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했는데,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인 듯 하다. 세계의 절반 이상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상황, 동력원들과 자원들은 고된 노동을 통해서만 겨우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는 '낯선' 세계관 속에서도 뚜렷한 현실감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인물들이 매우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기질보다는 그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이 충분히 취할 법한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 

이미 붕괴되었음이 확실한 체계의 잔재들을 그러모아 '신체계'를 유지하려는 인더스트리아는 일견 아집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절망을 겪은 이들에게 새로운 대체제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억지스러움 안에서 어떻게든 '일상'의 환상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읽어내는 패치의 시각은 작가의 그것이기도 하다. 일단 '살아남아야' 그 다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들 간의 공감이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아름답지 않았음 또한 사실이다. 나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에 두는 것은 본능적인 영역이지만, 이후 자신의 안위와 발전을 위해 매몰된 시야를 가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현 체제가 영원하리라는 믿음 하에 움직이는 것은 말 그대로 부서져가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행동이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은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모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 흐름을 직시하고 있었다는 점, -설사 방향이 다를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대단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고 자신을 움직이는 흐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흔히 말하는 '깨어있는 자'와 겹쳐 보인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에서 패치가 말하는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조언'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그 조언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내용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조언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론'일 뿐이다. 나침반은 목적지를 가리키지 않는다. 원하는 자와 원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코난이 보여주는 당돌함과 젊은 치기, 패치가 보여주는 연륜과 고집과 현명함, 라나가 상징하는 자연과의 교감과 포용과 생산은 굉장히 익숙한 삼위의 구도다. 또한 한 문명의 파괴와 쓰나미(홍수), 기계 문명의 종말 등은 이제는 익숙할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땅에 살았던,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은 이전에도 분명 일어났던 일이었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이 일이 이전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누구 하나 예외없이 휩쓸리고 있는 거대한 흐름임을 암시한다.

"우리가 만들어 낸 세계는 무척이나 서글픈 세계이며,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위한 책을 쓰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내면의 목소리'에 관해 가장 익숙한 설명은 아마도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아주 작게 속삭이는 그 소리에 조금씩만 귀를 기울이더라도 세상의 균형추는 조금씩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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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구체적인 위협 - 유네스코가 말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달라진 일상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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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인류가 유래없는 기후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누구나 익숙하게 여기는 '기후 위기'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것일까?


각 분야와 입장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기후 변화와 위기는 단순히 지난해보다 조금 더 춥고 더운 날씨, 잦아진 홍수와 가뭄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 인한 질병과 전염병, 닥쳐오는 식량 위기와 멸종, 실업과 돌연사 및 주거지 공동화(空洞化)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실존적 위기였다.


당장 식량 수입이 막힐 경후 자급률이 20% 언저리를 맴도는 한국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마트와 인터넷에 널린 주전부리와 밀키트를 보면 실감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현 상황을 나타내는 수치와 지표들은 '극도로 위험함'을 깜빡거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상황을 희망도 절망도 걷어낸 시선으로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해야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개인이 에너지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는 스마트 그리드 체제와 제로에너지빌딩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고, 또한 사업체들이 생산해내는 물품들을 보다 친환경적인 방향성으로 이끄는 소비자 정치활동 및 유권자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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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김준녕 지음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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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사실적인 디스토피아라니. 

이렇게 다양한 인물 군상과 설득력있는 전개라니.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이하 '막 너머')>은 아주 유쾌한 유머와 함께 시작한다. 전 우주에 현 인류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성체임을 밝혀냈다는,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발칙한 세기의 발견을 남긴 한 학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이다. (어째서 이 부분이 유머가 되는지는 직접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그리고 급작스레 반전된 분위기. 지구 안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이 우주의 끝에서 발견해낸 미지의 '막'을 향해 희망을 쏘아올리기로 결정한다는 것까지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기까지 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읽기가 조금 괴로울 정도인 글을 읽어나가고 있자면 이 작가가 정말 90년대 생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점차 줄어드는 식량과 황폐화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유전자 변형을 감행한 한국. 고효율 고수명의 신인류란 결국 굶어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작은 몸집의 아이들이 되었다. 조지 R. R. 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에 등장하는 개량 인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그들도 <막 너머>에서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같은 결과를 맞았으리라.


피 튀기는 경쟁 끝에 아이들은 우주로 쏘아올려지는데 성공하지만,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한국적인' 상황들에 읽는 내내 굳어진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재미 있다. 이후 세대를 거듭해나가며 막을 향하는 무궁화호의,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고립된 계 안에서의 생태계와 계급문화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는 작품이다.  

지구 생명체들은 277년 전, 자신들만이 전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외계 생명체는 없었다.

‘위대한‘ 아브만미르 박사가 알아낸 사실이었다.

아브만미르가 인간이 아니었던 석사 시절, 그는 늘어만 가는 학자금 대출과 교수들의 갑질 속에서 중국산 컵누들 한 개와 피클 한 종지로 연명하고 있었다.

공무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홀로 우주에 보낼까? 그것도 달이나 화성이 아니라 광년 거리에 달하는 우주의 끝으로 말이다. 한번 나서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자식을 보낸다니. 아이를 미워하거나, 굶주림에 지쳐 입 하나라도 줄이려는 부모가 아니고서는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에 아이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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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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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활동들이 '돌봄'이다. 그것을 스스로는 행할 수 없는, 혹은 행하기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이들에게 그것을 제공할 때 우리는 모두 돌봄 노동자가 된다.      


근 일주일을 잡고 있었는데도 도저히 마음에 드는 리뷰가 나오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 이 책을 읽는 것과 기록하는 것, 양쪽 모두에서 내가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단순하다. 충분한 거리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그룹인 '다른몸들'은 신체장애, 정서장애, 돌봄 노동, 교육, 보건의료, 인구와 출산, 국제적 이동과 경제, 기후와 탈성장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돌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개개인인 저자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과 경험에 기반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으므로, 이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목소리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독신, 여성, 보건의료 종사자, 돌봄 노동의 수요자이자 제공자.

여러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리고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HOW TO'를 말하고자 하면 당장 내가 포기하고 지불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한 개인으로서, 이 책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문 중 한 저자의 표현이 그야말로 아프게 내리 꽂혔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현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논의하기 시작하면 공기가 좀 달라진다"

        

또 다른 주저함은 표현 방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가 자신의 불편을 호소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 요구가 형평성과 상황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지 못하면, 전체적인 상황은 자칫 비극으로 치닫기 쉽다. 그 상황에서 혜택을 받고 있던 이들이 이것을 자신에게 '손해'를 요구한다고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깊은 관찰과 대화가 필요한데, 이미 사회 곳곳에서 문제로 불거져 나온 이슈들은 특정 단어의 사용으로 인해 채 그 속 깊은 이야기를 저하기도 전에 스팸되어 버린다. 


테이블에 마주 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비난도, 힘든 현실에 대한 불만도 아닌 '고통의 실존'을 양자가 함께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나갈 것인가에 관한 것은 그다음 단계의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내가 읽기 괴롭고 껄끄러웠던 만큼, 슬쩍 못 본 채 외면하고 싶었던 만큼 그것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의 현실이 무겁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해답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하나의 시선으로써 바라보고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 책이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사회를 향한 비난이나 공격이 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나는, '고통과 문제'는 한 사회가 성장해나가는 지점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고통이 되는 지점', 그것을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그 사회가 새롭게 내디딘 발전의 한 걸음이라고 믿는다. 식당에서,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상처들을 희화화해 웃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삶. 그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자신과 주변의 일임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감수성이 생기는 시점. 그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더 넓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는 '나' 자신에게도 더 나은 선택지들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나' 역시 그런 대우를 받을 것이므로. 


 


"재난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문제를 확장 혹은 가시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그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현실이 아쉽고 답답했다. 물론 제기된 주제들은 모두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돌봄에 대해 좀 더 입체적 논의를 하지 않고는, 우리가 직면한 돌봄 문제를 제대로 풀기 어렵다. 돌봄의 다층적 현실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돌봄 위기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가속되자 급한 대로 "여성의 돌봄 걱정을 덜어주자"라며 급격히 시행한 것이 지금의 사회적 돌봄 제도이다. 더 좋은 돌봄을 위해 가족, 직장, 지역 등 사회 전반의 정책을 함께 바꿔나가려는 고민과 시도는 없이 그저 여성이 떠맡던 돌봄의 일부를 다른 여성에게 외주화하고 국가가 그 비용을 충당하는 가장 손쉬운 카드를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서비스 제공과 고용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김으로써 사회적 돌봄을 시장화하기도 했다. 이때, 민간사업자들은 인건비와 급식비를 아껴 수익을 남긴다. 부족한 지원과 부당한 대우로 요약되는 가족 돌봄의 문제와 소규모 사업장에 흔히 나타나는 나쁜 노동조건이 사회적 돌봄 일자리로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오랫동안 집 안에 갇혀 여성에게 짊어지워졌던 돌봄이 갑자기 임금노동이 되면서 그 노동자는 엄마, 아내, 딸의 역할을 일정 시간 대행하는 사람, 그래서 ‘가족처럼‘ 일하도록 얼마든지 요구받고 감시당하고 통제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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