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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8월
평점 :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활동들이 '돌봄'이다. 그것을 스스로는 행할 수 없는, 혹은 행하기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이들에게 그것을 제공할 때 우리는 모두 돌봄 노동자가 된다.
근 일주일을 잡고 있었는데도 도저히 마음에 드는 리뷰가 나오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 이 책을 읽는 것과 기록하는 것, 양쪽 모두에서 내가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단순하다. 충분한 거리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그룹인 '다른몸들'은 신체장애, 정서장애, 돌봄 노동, 교육, 보건의료, 인구와 출산, 국제적 이동과 경제, 기후와 탈성장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돌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개개인인 저자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과 경험에 기반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으므로, 이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목소리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독신, 여성, 보건의료 종사자, 돌봄 노동의 수요자이자 제공자.
여러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리고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HOW TO'를 말하고자 하면 당장 내가 포기하고 지불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한 개인으로서, 이 책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문 중 한 저자의 표현이 그야말로 아프게 내리 꽂혔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현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논의하기 시작하면 공기가 좀 달라진다"
또 다른 주저함은 표현 방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가 자신의 불편을 호소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 요구가 형평성과 상황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지 못하면, 전체적인 상황은 자칫 비극으로 치닫기 쉽다. 그 상황에서 혜택을 받고 있던 이들이 이것을 자신에게 '손해'를 요구한다고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깊은 관찰과 대화가 필요한데, 이미 사회 곳곳에서 문제로 불거져 나온 이슈들은 특정 단어의 사용으로 인해 채 그 속 깊은 이야기를 저하기도 전에 스팸되어 버린다.
테이블에 마주 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비난도, 힘든 현실에 대한 불만도 아닌 '고통의 실존'을 양자가 함께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나갈 것인가에 관한 것은 그다음 단계의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내가 읽기 괴롭고 껄끄러웠던 만큼, 슬쩍 못 본 채 외면하고 싶었던 만큼 그것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의 현실이 무겁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해답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하나의 시선으로써 바라보고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 책이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사회를 향한 비난이나 공격이 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나는, '고통과 문제'는 한 사회가 성장해나가는 지점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혹은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고통이 되는 지점', 그것을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그 사회가 새롭게 내디딘 발전의 한 걸음이라고 믿는다. 식당에서,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상처들을 희화화해 웃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삶. 그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자신과 주변의 일임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감수성이 생기는 시점. 그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더 넓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는 '나' 자신에게도 더 나은 선택지들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나' 역시 그런 대우를 받을 것이므로.
"재난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문제를 확장 혹은 가시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그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현실이 아쉽고 답답했다. 물론 제기된 주제들은 모두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돌봄에 대해 좀 더 입체적 논의를 하지 않고는, 우리가 직면한 돌봄 문제를 제대로 풀기 어렵다. 돌봄의 다층적 현실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돌봄 위기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가속되자 급한 대로 "여성의 돌봄 걱정을 덜어주자"라며 급격히 시행한 것이 지금의 사회적 돌봄 제도이다. 더 좋은 돌봄을 위해 가족, 직장, 지역 등 사회 전반의 정책을 함께 바꿔나가려는 고민과 시도는 없이 그저 여성이 떠맡던 돌봄의 일부를 다른 여성에게 외주화하고 국가가 그 비용을 충당하는 가장 손쉬운 카드를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서비스 제공과 고용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김으로써 사회적 돌봄을 시장화하기도 했다. 이때, 민간사업자들은 인건비와 급식비를 아껴 수익을 남긴다. 부족한 지원과 부당한 대우로 요약되는 가족 돌봄의 문제와 소규모 사업장에 흔히 나타나는 나쁜 노동조건이 사회적 돌봄 일자리로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오랫동안 집 안에 갇혀 여성에게 짊어지워졌던 돌봄이 갑자기 임금노동이 되면서 그 노동자는 엄마, 아내, 딸의 역할을 일정 시간 대행하는 사람, 그래서 ‘가족처럼‘ 일하도록 얼마든지 요구받고 감시당하고 통제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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