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주실록 - 화려한 이름 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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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주실록
- 화려한 이름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

저마다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주어진 환경에 지배되어 유년기를 보내고, 나름의 고민을 이고, 청년기를 일구며, 나름의 철학을 세우며,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모든 사람의 생이 이런 패턴이다 주장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어디쯤일까 고민해봅니다. 나름의 고민을 짊어지고 청년기를 보내고 있을까? 아니 잘 일구고 있을까 한참을 생각합니다. 쉬 입에서 명쾌한 긍정의 단어가 튀어 나오지는 않습니다.

신명호씨의 '조선공주실록'을 읽었습니다.

위즈덤 하우스 역사의 아침 서평단에게 주어지는 책입니다. 역사에 관해서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만, 책에 관심을 가진 후로, 인문학, 철학, 역사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좋은 기회가 되어 서평단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한 글입니다만,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입니다. 내 삶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타인의 삶에 대한 관음증 비슷한 것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전차로 전기들을 꽤 즐겨 읽게 되었고, 힘들다 생각되어 질때 책을 통해 나름의 열정을 되살리곤 했습니다.

이 책 역시 관음증 해소의 연장선상입니다. 특별한 위치에 처해져, 특히나 주어진 환경이 한 사람의 삶을 윽박지르는 과정 속에서 그 들의 삶이 운명이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입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란 이입의 단계까지 이르러 책을 덮었습니다.

책의 내용보다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네 인생을 과연 자유롭게 그려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만 가득 담고 왔습니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그 시대의 시대적 억압에 짓눌린 그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네 모습이 많이 다를까, 과연 지금이 더 낫다 단언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쉽사리 모두가 공감하는 답을 낼 수 없겠습니다만, 크게 낫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일전의 독후감에서 뿌린 생각들처럼 기성복처럼 짜여진 인생에 나름의 맞춤옷은 비아냥의 대상이 됩니다. 더욱이 잘못된 선택이라 단정지어지기 일 수 입니다.
2009/07/08 - [독서 흔적] -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화려한 이름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처럼 자유로운 기치아래 가려진 짜맞춰진 우리네 인생입니다. 죽도록 공부해 대학가고 결혼해 힘들게 돈벌고, 살만하면 암걸려 뒈진다는 누구의 말처럼 틀에 박힌 지금이 쓰디 씁니다. 좀 더 자유롭게 보다 능동적으로 삶을 일구어 나가고 싶은 소망이 여전히 맘 속에 머리속에 맴돌기만 합니다. 이 책 쉽게 읽고 쉽게 그네들의 인생을 훔쳐 보았습니다만, 그 속에 내 삶이 그려짐에 책을 덮고도 한동안 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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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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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네모난 상자 속에서 짜맞춰진 하루를 보내는 우리네 일상 속에서 서울이란 도시는 거대한 공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그 시스템 속에 적응하길 만 9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던히도 애쓰던 그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익숙해진 공간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이 곳은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권진, 이화정씨의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읽었습니다.

이방인, 그리고 예술가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서울 이야기 입니다. 책의 소개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서울이란 공간입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서울이란 공간은 단지 그들 삶의 열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인식 될 뿐입니다. 서울이란 매개체를 통해 예술혼을 달래는 그들의 일상이 책 안에 맴돌고 있습니다.

영혼의 샘물을 분출 시키는 서울, 솔직히 저에게 서울이란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는 멀어도 한참 멉니다. 고향이랑 향수도 없을 뿐더러, 역사적인 의미 또한 저에게 와닿지 않으며, 서울 변두리, 강북의 이미지 조차 제겐 그저 그런 타인들의 삶터 일 뿐입니다.

시각이 달라서 일까요? 아니면 생각이 달라서 일까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에게 서울은 영매한 도시입니다.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서울의 모습이 도시화란 그늘 속에 묻히는 걸 안타깝게 여기며, 개탄까지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단지 제 눈에 삶터 이상이 아니더라도 서울이 가지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무분별한 도시화는 견제해야합니다.

일상의 부끄러움을 잠깐 동안 느꼈습니다. 생뚱맞은 소리에 잠시 놀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글알들을 읽으며, 가진 죄책감입니다. 서울 이야기 이전에 이방인들의 시선과 그들의 삶의 기록에 제 일상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물질적 초라함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풍성한 사유과 고민들, 그리고 삶의 무게에 제 삶은 공장에서 재단되어 나오는 기성복과 같음에 잠깐 멈춰섰습니다. 그들의 삶에 서울이란 정거장이 가지는 의미 이전에 인생 기록에서 무엇이 중한지, 어떤 행동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결코 물질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는 삶의 의지와 환경의 억압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시인들에 그들은 청량제 같은 사람들입니다. 단지 이방인이란 존재로 폄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타문명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라 가벼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과거와 이별을 종용하는 시간들이 넘쳐 근본을 퇴색하게 하는 현세계에 대한 자각과 통찰이 필요합니다. 거창하게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삶의 의미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곱씹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여행자들의 방랑수첩 정도로만 알고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만, 인생에 대한 담론이 서울에 대한 담론으로 포장되어 있을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나를 보는, 우리네 생을 보는 또 다른 눈을 통해 당연시 여기는 우리네 일상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디자인 하는 우리가 또다른 예술가가 아닐까요? 내 인생의 설계자로서 또다른 도면을 접했습니다. 그들의 시간들이 내 인생의 강물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다만 물결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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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
하코자키 유키에 지음, 고향옥 옮김, 세키 아야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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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답답한 일을 혼자 속으로 삭히곤 합니다. 남자라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란 틀을 규정하고 그 잣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정을 왕왕 삭입니다. 또한 책을 읽을 수록 내가 바라는 사람과 지금 제 모습의 격차에 혼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바라는 모습으로 한발짝 내디디기 위해 감정이란 사치는 잠시 뒤로 접어 놓습니다.

세키 아야코 씨의 '마음은 언제나 네편이야'을 읽었습니다.

한겨레 아이들에서 나온 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어릴 때 동화를 위시해서 책들을 거의 읽지 않아서 그런지 제겐 어린이를 위한 책과 어른을 위한 책 간의 경계가 없습니다. 울림이 강한 동화책에서도 한참을 서성이곤합니다. 유치함이란 선입견이 책을 보기전에는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나마 장점이 아닌가합니다.

'내가 나인 것이 좋아'

생철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저의 심금을 울린 문장입니다. 책을 통해 한 문장에 집중하고, 의미를 곱씹고, 나를 되돌아 봅니다. 내가 가지는 감정도 나의 일부분임은 분명합니다. 화남도, 우울함도, 짜증도 내 일부이기에 피하려고만 해선 안됩니다. 상처를 덮어두면 곰기마련인 것 처럼요. 물론 모든 감정을 남들에게 폭력적으로 표현하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솔직히 지금껏 이런 감정을 삭이려는 노력을 많이 해온 저이기에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인정은 해야겠습니다. 이런 감정도 나이기에 나를 부정하지 말자는 겁니다.

조금은 자유로워 지고 싶습니다. 스스로 힘으로 세상을 마주했을 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에 나에게 조금은 힘을 주고 싶습니다. 나에게 말합니다.

'외부의 짐지워진 외투 속에 있는 나에게서 떠나 조금은 자유로워지자. 나의 감정, 생각이 제 모습을 찾아 본연의 나로 돌아 갈 수 있게 닫혀진 철창을 열어보자.'

마음은 언제나 내편입니다. 제목처럼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사귀는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노력해봅니다.

맑은 수채화 한켠에 감정의 꽃들이 소복히 들어찬 느낌의 책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책읽기지만 가슴에 전해지는 따스함은 몇 백 페이지 못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에 한정지어질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위한 책으로도 손색 없습니다. 찰나의 시간동안 몇마디 단어를 가슴에 새길 수 있는 독자라면, 아이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알겁니다. 감정의 꽃과의 조우가 가슴 연못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나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겁니다. 내 감정 또한 나임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이시간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틀 속에 나를 던져 넣었던 시간의 고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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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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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과 칼부림이 오가지 않을 뿐 전쟁터나 매한가지입니다. 씁슬한 이야기지만 우리네 인간관계의 단면이 그렇습니다. 하나의 단면으로 모든 관계를 제단하고 싶은 맘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단면을 간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습니다.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을 읽은 후 연달아 읽은 책입니다. 고전을 이제서야 읽는다는 부끄러움은 제쳐 두고 책을 펼쳤습니다. 솔직히 내용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저 역시나 세세한 내용보다는 큰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나름대로 재 해석하며 봤습니다.
2009/05/28 - [독서 흔적] - 권력의 법칙

권력의 법칙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습니다. 권력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피튀기는 전장에 들어서고픈 맘은 더더욱 없습니다. 따라서 권력이란 말 보다는 관계란 말에 좀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그 관계 속에 하나의 구심점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리더란 결국 많은 관계들의 클러스터 속 각각의 구심점이 아닐까요?

폭력이나 아집을 바탕으로 한 리더가 아니라, 열정과 의지 그리고 연민의 정을 바탕으로 클러스트를 응집하는 리더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군주론에서 군주가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폭력적 교과서의 이미지 이면의 냉철한 이성을 읽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의 바탕에 백성과의 합의가 있어야 함을 되새겼습니다. 군주론을 단지 폭력적이라 매도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폭력적인 면을 거르고 군주의 의미를 좁혀 제 마음 와닿는데로 재 해석해 봤습니다.

군주론을 읽으며, 현 시대를 교차 해봅니다. 하물며 군주 조차도 군주의 권력이 백성으로 부터 위임되었을 때만, 진정한 군주로서의 권위가 선다는 것을 압니다. 민주주의란 시스템 속에서 배출된 현 정권이 군주국조차 기본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져버리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군주론을 읽으며, 씁쓸하단 말을 자주 내 뱉게 됩니다. 몇 년전 이 책을 읽었어도 이 단어로 도배를 했을까요? 다시금 씁쓸함이 입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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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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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예비군 훈련을 받았습니다. 원래부터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지라 조금이라도 움직여야하는 훈련이 웃음이 나오겠지만 힘듭니다. 반은 쉰다지만 나머지 반에 지칩니다. 특히나 훈련장 이동은 다시금 생각해도 숨이 헐떡입니다.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었습니다.

훈련 중 쉬는 틈을 타 가벼운 책을 읽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가볍기 보단 책이 작아 휴대하기 간편해 집어 들었습니다. 크지 않은 사이즈와 많지 않은 활자 덕에 훈련 첫 날에 다 읽었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랜디 포시라는 말기 췌장암 환자의 CMU 마지막 강의를 바탕으로 구성한 책입니다. 죽음을 앞둔 교수의 삶에 대한 논의 입니다. 메말라 그렇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죽음을 앞둔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가슴에 와닿거나 큰울림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 저런 삶을 살아라는 이야기 보다는 그의 가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대화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죽은자는 가고 산자는 어떻게든 살겠지만 제 몸 추스리기 조차 힘든 저자의 산자를 위해 행하는 일련의 행위는 거룩하기 까지 합니다.

감정이입이 되서 그런지 자식에 대한 대목에서는 저 역시나 콧잔등이 시렸습니다. 아버지 없는 아이의 삶은 맞닥드리지 않고 솔직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런 아이가 딱한 것은 당연지사 일거구요. 남아있는 아이를 위해 추억을 새기는 아비의 모습에 진정성이 흐릅니다. 일전에 쉐아르님아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란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글과 함께 이 책의 낱알들이 가슴이 때립니다.

책을 덮고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지금 이 순간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계신지요? 흔쾌히 '네'란 대답이 울대를 때리지 못합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실을 가족과 함께 새겨나가는게 훗날 후회를 미리 없애는 길이 아닐까합니다. 글보다 글에서 발현된 생각이 흘러 스스로의 시간을 매만졌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충분한 시간을 위해 잠깐이라도 책을 덮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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