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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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네모난 상자 속에서 짜맞춰진 하루를 보내는 우리네 일상 속에서 서울이란 도시는 거대한 공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그 시스템 속에 적응하길 만 9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던히도 애쓰던 그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익숙해진 공간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이 곳은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권진, 이화정씨의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읽었습니다.

이방인, 그리고 예술가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서울 이야기 입니다. 책의 소개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서울이란 공간입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서울이란 공간은 단지 그들 삶의 열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인식 될 뿐입니다. 서울이란 매개체를 통해 예술혼을 달래는 그들의 일상이 책 안에 맴돌고 있습니다.

영혼의 샘물을 분출 시키는 서울, 솔직히 저에게 서울이란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는 멀어도 한참 멉니다. 고향이랑 향수도 없을 뿐더러, 역사적인 의미 또한 저에게 와닿지 않으며, 서울 변두리, 강북의 이미지 조차 제겐 그저 그런 타인들의 삶터 일 뿐입니다.

시각이 달라서 일까요? 아니면 생각이 달라서 일까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에게 서울은 영매한 도시입니다.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서울의 모습이 도시화란 그늘 속에 묻히는 걸 안타깝게 여기며, 개탄까지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단지 제 눈에 삶터 이상이 아니더라도 서울이 가지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무분별한 도시화는 견제해야합니다.

일상의 부끄러움을 잠깐 동안 느꼈습니다. 생뚱맞은 소리에 잠시 놀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글알들을 읽으며, 가진 죄책감입니다. 서울 이야기 이전에 이방인들의 시선과 그들의 삶의 기록에 제 일상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물질적 초라함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풍성한 사유과 고민들, 그리고 삶의 무게에 제 삶은 공장에서 재단되어 나오는 기성복과 같음에 잠깐 멈춰섰습니다. 그들의 삶에 서울이란 정거장이 가지는 의미 이전에 인생 기록에서 무엇이 중한지, 어떤 행동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결코 물질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는 삶의 의지와 환경의 억압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시인들에 그들은 청량제 같은 사람들입니다. 단지 이방인이란 존재로 폄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타문명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라 가벼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과거와 이별을 종용하는 시간들이 넘쳐 근본을 퇴색하게 하는 현세계에 대한 자각과 통찰이 필요합니다. 거창하게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삶의 의미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곱씹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여행자들의 방랑수첩 정도로만 알고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만, 인생에 대한 담론이 서울에 대한 담론으로 포장되어 있을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나를 보는, 우리네 생을 보는 또 다른 눈을 통해 당연시 여기는 우리네 일상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디자인 하는 우리가 또다른 예술가가 아닐까요? 내 인생의 설계자로서 또다른 도면을 접했습니다. 그들의 시간들이 내 인생의 강물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다만 물결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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