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 영재 교육법
기무라 큐이치 지음, 임주리 옮김 / 푸른육아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관련 책을 몇권 읽었습니다만, 아직 말 못하는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서툽니다. 저보다는 엄마와의 소통이 더 원할함을 느낍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같이하는 절대적인 시간과 열달간의 임신기간은 아빠인 제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관조 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육아, 그리고 엄마와 발 맞추어 행할 수 있는 육아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무라큐이치의 '칼비테 영재 교육법'을 읽었습니다.

푸름이 아빠 최희수씨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푸름이 닷컴 운영자로 푸름이라는 아이를 키운 과정을 책으로 펴내 세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일전에 최희수씨의 책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레퍼런스 중에 이 책 칼비테 영재 교육법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의 발동으로 구매해 두었습니다.

임신 중 태교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다지 태교에 큰 신경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와의 대화며, 전반적인 교육에 대해 힘쓰자란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교부터 교육은 시작됩니다. 이 주장을 이 책과 최희수씨의 책을 통해 접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지금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시작해야 되며, 교육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얼핀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성맞은 부모의 전형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기 보다는 자식이 좀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운신의 폭을 넓히고 싶은게 지금의 심정입니다.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아이의 시선이 왜곡되지 않고 또한 다수의 무지에 묻히지 않길 바라는 심정 또한 같이 합니다. 부끄럽지만 어쩌면 제가 펴지 못한 부분의 위로 또한 조금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아래 책의 주장에 발맞추어 갑니다. 그저 옹알이 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라 생각하는게 일반적입니다만, 아이는 천재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자라면서 가능성이 잘리고 호기심이 차단되는 과정을 통해 보통의 평범한 아이로 자라는 것을 경계합니다. 내 아이는 천재란 부모의 모자란 식견의 발로가 아니라 모든 아이는 천재란 가정 자체가 우리 아이에게도 해당된다는 겁니다.

여러가지 주장들이 나옵니다만, 개인적으로 1장과 2장 5장의 내용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단순한 영재가 아닌 전인 교육의 한 방편으로서 조기교육과 인성교육, 그리고 심신의 조화를 다룹니다. 아이가 영재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서 언어 능력, 풍부한 어휘력을 일 순위로 꼽습니다. 더불어 지적능력에 대한 자만심의 경계와, 선행, 도덕성에 힘을 쏟습니다.

이제 갓 9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이제 시작입니다. 저 역시나 이 책을 읽고 아이와의 대화에 동참했으며, 어휘력 강화를 위해 명사부터 조금씩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은 조금 있는 듯해서 아는지 확인 할 길은 없습니다만, 꾸준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와이프와 함께 아이와의 대화에 적극 동참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받아주며,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 또한 꾸준히 주려합니다. 음성을 통한 단어의 인지와 더불어 각각의 수신호를 통한 시각적 인지도 함께 고려합니다. 또한 색을 통한 자극도 같이합니다. 맞는지 혹은 올바르게 하는지 확신할 길은 없습니다만,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불굴의 인내와 의지로 아이가 말을 하고 글을 읽을 때까지 하려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제가 읽은 책, 혹은 아이가 읽은 책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나날들을 그려봅니다. 생각만 해도 미소짓게 되며, 뿌듯합니다. 언제 일지 기약할 수 없지만, 그 날이 우리의 노력 여하에 조금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하고픈 심정 부모라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잘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오늘도 한두시간의 노력을 더해봅니다.

ps) 이 책을 읽으며, 스토리에 관한 아이의 몰입에 육아도 도마뱀의 뇌, 구뇌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보다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피트 런 지음, 전소영 옮김 / 흐름출판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굳이 이 명제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명제 아래 오늘도 두 눈 부릅뜨고, 최대한의 이익을 위해 주식매매를 하고, 적금을 들며, 부동산을 매입합니다. 다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생활 전반에 걸쳐 논리라는 무기로 이성을 앞세워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피트 런의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을 읽었습니다.

경제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았습니다만, 학창시절 경제학 관련 수업은 아마 대부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복잡한 수치와 그래프를 앞세워 꽤나 힘들었던 수업입니다. 그런 일련의 배움 과정은 하나의 견고한 전제로 부터 출발합니다.

경쟁 균형 모델입니다.

이기적이고, 독립적이며 합리적인 개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과 임금이 조정되는 시장,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 구성된다는 전제입니다. 저 또한 이 전제에 회의를 품지 않았습니다. 이성이란 굴레 안에서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약간의 시간을 되돌려 지난 카메라 구매 과정을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최대한 같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한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의 소비 행태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겁니다. 주로 온라인으로 거래를 하기에 가격비교사이트를 들러 가격을 확인합니다. 가장 저렴한 사이트 부터 순차적으로 선택해 꼼꼼히 따져봅니다. 가격과 신뢰란 두 팩터를 가지고 저울질해서 믿을만한 사이트중에서 가장 저렴한 사이트를 선택합니다.

가장 저렴하게 샀다고 안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명백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경쟁균형 모델에서 개인은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경제학 이론들에 끼워 맞추다보면, 전제에서 부터 삐걱거립니다. 직관적으로 봐도 개인은 완벽한 정보를 가지지 못할 뿐더러, 신뢰과 가격사이의 줄타기의 최고점은 개인 수준에서의 합리이지 절대다수가 최고점이라 인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넘어, 경쟁 균형 모델이라는 전제 자체가 인간의 심리를 포함시켜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미묘한 관계,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에 따라 합리적 소비는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실패한 과학의 특징은 핵심이론을 부가 이론으로 계속 땜질하면서 예측력도 볼품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경제학 모델은 부가 이론으로 덕지덕지 붙어 현실과 점점 동떨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책의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현 경제 모델은 학자들의 편의를 위한 전제로 시작되었기에 인간의 마음, 즉 심리를 읽지 못하고, 실 경제 생활을 포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 생활의 경제학 이론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예측력이 형편없어집니다.

경제학의 잘못된 전제 6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2.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3. 인간은 이기적이다.
  4.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
  5. 조직은 합리적이다.
  6.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다.

편의를 위한 전제 이전에 경제 전반에 걸친 경제 행위 자체를 철저히 조사해 보자는 겁니다. 그 과정인 행동경제학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행동경제학을 깊게 조명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지면을 전제의 허술함을 파헤칩니다. 이성을 넘어 감성의 영역, 구뇌로 대표되는 인간의 감정적 영역과 인간대 인간, 인간 대 사회의 관계에 따른 경제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단지 붕뜬 주장이 아닌 심리학적 실험을 근거로 뒷받침합니다. 읽는 동안 행동경제학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습니다. 관련 책을 사뒀지만 미쳐 읽지 못해 조만간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맺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외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 자란 이 땅을 벗어나 본게 딱 한번입니다. 그것도 신혼여행입니다. 그러나 가끔 가슴을 짓이기는 현실의 도피처로 이민을 꿈꿔보기도 합니다. 이민이 아니더라도 훌쩍 떠나 외국에서 몇 년간 살다 오고 싶습니다. 단지 국적이란 굴레 안에서 삶을 제단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글로벌 네트웍은 둘째 치더라도 국내, 국외란 경계는 조금씩 희미해져 갑니다. 그런 생각의 끝에서 다시금 정신을 추스리는 연유는 과연 그 곳에서 이방인이란 옷을 벗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일기 때문입니다.

스콧 버거슨과 친구들이 지은 '더 발칙한 한국학'을 읽었습니다.

이 땅의 이방인
이 책은 대한민국이란 영토에 착륙한 이방인들의 생활과 생각을 고루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날선 비판과 더불어 애정어린 시선이 교차합니다. 한국에 대한 끌림에 의해 정착한 후 애정을 더하다, 이방인이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스토리가 축입니다. 솔직해 져야겠습니다. 맞습니다. 원어민 영어교사들이 대부분이며, 그외엔 미군 그리고 이태원, 홍대 등지를 돌며 한국 여자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특히나 효선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그 감정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와중에 무고한 이 땅의 이방인들도 동급으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들 마저 한꾸러미로 매도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성이라 치부하기 이전에 반미감정과 어울려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바탕으로 타인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은 굳건합니다.

소외된 타인, 외국인 노동자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전 이 글을 뱉고 올리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인이라면 거의 백인입니다. 주위를 조금 둘러 봅시다. 주위에 있는 유색인종의 외국인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와 결혼 상대자는 이미 한민족이라는 근간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는 시선은 어떨까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의 오점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입니다만, 그들을 한가족처럼 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넘어야할 현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봐야겠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걸쳐진 삐딱한 시선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의 고리를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좀 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현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가 이방인이란 옷을 입고 마주칠 현실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아니 되려 이 곳의 현실이 좀 더 열악할 수 있습니다. 국제화란 허울좋은 이름 대신에 나와 다른 타인을 보는 시선에 사랑이 조금만 묻어 난다면, 넘어 설 수 있는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아쉬운 비평
우리의 문제점은 인식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넘어야할 산이며, 시간이 더해진다면 우리의 시선 또한 따뜻해 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습니다만, 마지막 챕터에 나온 스콧 버거슨의 글들은 조금 버거웠습니다. 객관화란 창과 이성이란 칼날로 현실을 이야기 합니다만, 그 역시나 현실의 특이점만을 본건 아닐까 고민해봤습니다. 객관화도 좋습니다만, 이방인이 아닌 현실에 묻혀 하루를 이겨내는 사람들이 감내하는 고통은 소외시 한게 아닐까요? 좋든 싫든 이 땅에 뼈를 묻어야 하는 사람과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떠나야지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은 차이가 납니다. 그의 시선이 그리고 그의 생각이 되려 이방인이란 생각에 규정지어진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들에 낯 뜨거웠습니다. 그들의 허물도 있고 우리의 허물도 있습니다. 단지 서로의 허물을 캐내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그의 전작 발칙한 한국학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 내인생의책 그림책 6
낸시 틸먼 지음, 이상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9년, 올해 삼월은 두근대는 설레임과 함께 초조한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아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기다리던 와중, 전문의의 유도분만 권유로 3월 말 아들과의 조우는 시작되었습니다. 서른 시간 넘는 진통 끝에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날 밤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만남의 환희 보다는 솔직히 와이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와이프가 정신을 차리고 제 정신도 조금 수습될 쯤 잠깐 스쳐간 그 녀석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었구나. 새로운 세상은 정신없는 와중에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낸시 틸먼의 '네가 태어난 날엔 곰도 춤을 추었지'를 읽었습니다.

아이와의 만남에 대한 부모의 벅찬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아이와 만나고 정신을 차리고 하루, 이틀 그 녀석과 만나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세상은 점점 그 녀석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나와 와이프간의 관계에서 아이에 대한 일방적인 관계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저나 와이프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조금씩 우리의 관계를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근래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팠습니다. 목감기, 열감기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감기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터라 아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40도에 육박하는 체온에 당황하다, 해열제 이후 35까지 내려가 저체온까지, 그리고 근 5일에 걸쳐 내려가지 않는 열에 와이프와 전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 이녀석의 응석은 늘어나고, 육아 지식 부족에 대한 자책 또한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결코 숨길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넌 우리의 모든 것이야.

이 책은 제가 한번 주욱 읽고, 다시금 아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물론 8개월 녀석이 무엇을 알겠습니까만, 스스로의 벅찬 감정을 조금이나마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읽는 줄곧 저자의 글에 제 마음이 알알이 박혀 있었습니다. 글 한번 보다 아들녀석 얼굴 한번 보다를 반복했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씩 웃어주기도 하고 무심한척 시크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녀석이 태어나고 세상은 이 녀석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설픈 부모의 착각이겠습니다만, 여기 그런 부모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저자 역시나 저의 생각과 궤를 같이합니다. 생명탄생의 신비로움 이전에 자식에 대한 근원적 환희가 책 속에 가득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란 도킨스의 이야기에 이성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감정적 끌림을 절대 넘어서지 못합니다. 세상 모두가 이 녀석을 위해 축복하는 것 같습니다. 팔불출 아빠라 이야기 합니다만, 전 그 호칭이 싫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이 태어난 날에 온세상이 춤을 추었다 믿습니다. 분명 한 아이의 아빠라면 백번 공감할 이야기 일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길은 산 모퉁이를 돌아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복숭아 꽃 내음이 그 만큼 짙어집니다. 살포시 흩날리는 복숭아 꽃에 실려온 내음은 코를 간지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듭니다. 굽이치는 모퉁이를 돌아 펼쳐진 풍광은 어설픈 말이나 글로 옮기기 턱없이 부족합니다. 꿈에나 그리던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권정현씨의 '몽유도원'를 읽었습니다.

한번쯤은 무릉도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 도원의 풍광을 어설프게나마 살짝 그려봤습니다. 예로부터 도원을 꿈꿔 그 이상을 현실의 화폭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많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역시나 꿈에나 볼 법한 무릉도원의 풍경을 화폭에 힘차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국보로 우리가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자랑스런 우리 유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책은 몽유도원을 모티브로 안평대군, 안견, 목효지란 세 주인공이 그리는 인간의 꿈과 욕망을 이야기 합니다. 무릇 나라를 돌봄에 있어 그 으뜸이 백성이 듯이 이 세 주인공의 뜻 또한 그러합니다. 그 뜻이 길로 순탄히 이어지면 좋겠습니다만, 역시나 소설속 배치된 상반된 인물과의 갈등이 소설의 큰 기둥입니다.

이룰 수 없는 꿈, 도원
태평성대의 시기라 자평하는 시대는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만인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리고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시기란 역사이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순시대인들 과연 태평성대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단지 왕의 입지나 권력의 정당화를 탄탄히 하기 위한 하나의 모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꿈을 키우고 사는 존재이기에, 시대별로 태평성대, 무릉도원에 대한 꿈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 꿈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백성, 노동자, 국민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가진자의 편입니다. 너무 시니컬 하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만, 가진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지금도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소원합니다.

놓을 수 없는 꿈, 욕망
가진자의 꿈, 인간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꿈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입니다. 조금 더 가지기 위해, 그 목표가 돈이 됬든, 권력이 됬든 인간은 지금보다 조금 더, 조금 더 가지길 원합니다. 그 꿈이 욕망이란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 과정 속에 사회적 약자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내 욕심이 그들을 포섭할 관용조차 용납치 않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가진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됩니다. 제왕 통치 체제에서도 그러하고,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 또한 공산당의 부패에 놀아납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란 허울 좋은 명패 뒤에 숨은 자본가의 힘 또한 현실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 그리고 현실
가진자의 꿈과, 가지지 못한 자의 꿈은 늘 상충됩니다. 그 현실의 적나라함이 이 소설에 그득합니다. 수양대군, 한명회를 위시한 가진자의 권력,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세상을 뒤엎으려는 자와, 안평대군, 목효지, 안견 그들의 음모를 막으려는 자의 한바탕 큰 싸움이 소설 속 이야기 입니다. 소설이지만, 소설 속 결말이 현실입니다. 결국 가진자의 승리로 끝맺음 합니다.

꿈틀대는 울분과 함께 탄탄한 줄거리와 재미로 몇 일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를 현실에 빗대어 보고, 현실의 이상향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한 폭 그림에 얼킨 소설 속 이야기라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재미 그 이상의 여운이 있습니다. 제겐 현실인지 소설인지 꿈인지 헛갈린 시간 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