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프랑스의 라깡 선생은 “사랑에 대해 의미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바보가 되는 겁니다. 우리의 만해께서도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랑을 이름 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 있느냐는 거죠. 그런데도 정신분석 시간은 온통 사랑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라깡은 욕망의 대상이면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타대상’이라 불렀습니다. 욕망은 부분욕동이란 대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프로이트의 젖가슴과 대변에다가 라깡은 시선과 목소리를 첨가시켜 둡니다. 시선은 우리를 유혹하여 넋을 잃게 만듭니다. 목소리는 최면을 걸고 유혹하여 무장을 해제시킵니다. 이처럼 시선과 목소리는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관계의 일부가 됩니다. 듀크대학교에서 SIC시리즈로 나온 이처럼 도발적인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에서 사랑을 남녀 두 성 간의 본질적인 적대관계에서 중재하는 실체로 내보여주고 시선과 목소리가 사랑의 매체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게 됩니다.
대부분이 지젝과 함께 하는 슬로베니아의 라깡학자인 필자들은 “성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는 라깡학파의 전제라든가 남녀 두 성들은 결코 상호보완적이지 못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사랑은 시선과 목소리로 형상화되어 그 전제들을 구체화하고 남녀 사이에서 그 어떤 관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구체화하게 됩니다.
이런 논제에 관하여 라깡학파에서 처음으로 다듬어져 나온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는 시선과 목소리와 사랑의 위상을 플라톤으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철학에서도 검토해보고 있습니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찾아보고 있으며, 워튼의 장편소설 순수의 시대와 「뮤즈의 비극」이란 단편소설로부터 카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인 남아있는 나날들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을 들여다보고, 마이클 파웰의 피핑톰으로부터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 이르는 영화에서도 찾아내게 됩니다. 필자들은 남녀 두 성 간의 갈등이 현대성의 운명에 있어 더 큰 전쟁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논제에 대한 접근방법은 우세한 다문화주의자들과 해체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언급을 철저히 무시하고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성차별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의 목표를 들여다보는 것이라서 이 책은 오래된 수수께끼인 사랑의 본성을 놀랍도록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 있는 글들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영화와 영화사, 문학과 문학사, 계몽운동의 글쓰기에서 맹인의 모습, ‘첫눈에 알아보는 사랑’, 지식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을 문학평론가와 영문학자, 영화학자, 사회학자, 종교철학자, 역사학자, 정신과의사가 모여 함께 읽고 번역해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 듀크대학교에서 SIC시리즈로 나온 코기토와 무의식, 성화, 정신분석의 이면이란 책들도 차례차례 <라깡정신분석연구회>에서 읽고 번역될 것입니다. 라깡 정신분석이 인문사회학 분야에 널리 퍼져서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SIC시리즈만큼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도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