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의 눈 힘찬문고 20
론 버니 지음, 지혜연 옮김, 심우진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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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주의 원주민들이 몰살을 당한다. 땅이 주는 것 이외에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았던 원주민들은 이민자들이 보기에 게으름뱅이일 뿐이다. 게으르고 무식하고 멍청한 것들.

소크라테스는 노예와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장기구조조차 다를 것이라고 했다지 않나. 이민자들이 보기에 원주민들은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놀고 있는(!) 땅을 일군다. 거기에 양을 키운다. 양은 돈이다. 양을 먹일 땅을 넓혀갈 수록 부자가 된다. 더 부자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원주민들이 버려두고 있는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반항하면 총 한 방이면 끝난다. 원주민은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구답이랑 유당은 예부터 호주에 살던 이들의 후손이다.(원주민이란 말이다. ^^;) 이 아이들의 가족은 작은 무리를 이뤄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땅이 사람을 보듬어주는 만큼 기대어 살다, 땅의 힘이 다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다. 하루하루 먹을거리만 있으면 족했다. 남겨두거나 내일을 위해 더 쌓아둘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넉넉하게 베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원주민은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민의 땅에 이민자가 들어와 그렇게까지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주인 행세를 할 수가 있었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이민자들에게 몰살을 당했는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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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너에게
벌리 도허티 지음, 장영희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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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헬렌과 크리스는 사랑을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는 나이.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랑은 불안하다. 몸은, 마음은 어른만큼 사랑을 느끼고 바라고 움직이는데, 아직은 어른이 되기까지 거쳐야할 많은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단 하룻밤. 헬렌의 집에 단 둘이 있게 된 저녁. 희미한 달빛이 흐르고,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바람에 실크 스카프가 나부끼고 커튼이 펄럭여 달빛이 새들었을 때 그들은 계획에도 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무엇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의 마음속에 점점 커져가던 무엇이 그들을 덮쳤다고 할밖에는.


그 일이 있은 뒤. 헬렌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청소년 아이의 임신과 그로 인한 갈등과 방황(섬세하게 묘사돼 있고, 절절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고민한다.), 그를 지켜보는 식구들과 남자친구. 또 그 남자친구의 방황. 이렇게 내용을 대강 요약할 수 있을 텐데, 나로서는 그 이상 더 얘기할 만한 거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의 현실 자체가 우리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고, 청소년(혹은 혼전) 임신에 대한 인식이랄까, 둘레 사람들이나 본인들이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정서 또한 사뭇 다르기 때문에 그저 관찰자 정도의 시각을 유지하게 된다고 하나?


그렇지만, 생각해볼 거리는 많은 책이다.

아이들의 사랑과 성, 임신…. 우리 둘레에서도 흔하진 않더라도 없는 일은 아닐 텐데(더군다나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일인가)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깃거리를 던진 문제작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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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아뽀아가 가져다 준 행복 - 이그저어느 숲 이야기 중앙문고 35
오카다 준 글.그림, 이선아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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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에서 나온 오카다 준의 '신기한 시간표'를 읽고, 작가의 다른 책들을 보고 싶던 차에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빌려왔다. '뽀아뽀아가 가져다 준 행복'은 그 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책을 마을버스에서 읽으려다 '이그저어느 숲'이라거나 '정말로 씨, 토마토 씨, 주전자 씨' 하는 말들이 복잡해 덮어 두었는데, 오늘 읽어보니(반납일이 가까워왔기 때문에 ^^) 그때 왜 더 못 읽었을까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곁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에 얼굴을 찡그리고 “됐어요.”라고 나지막이 말하던 스키퍼는 뽀아뽀아라는 열매의 비밀을 풀기 위해 이그저어느 숲에 사는 이웃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게 된다. 혼자서 석 달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 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았던 스키퍼에게 이웃을 찾아다녀야 하는 일은 무척이나 놀라운 변화에, 사건이다.

스키퍼가 이사 온 뒤 10년 동안 말 한번 붙여보지 못했던 이웃들은 스키퍼의 방문을 놀라워하면서도 스키퍼가 가져온 뽀아뽀아의 비밀을 풀기 위해 저마다 애를 쓴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사이 스키퍼에게는 스키퍼도 모르는 변화가 온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스키퍼에게 이웃이나 동무, 추억거리 같은 것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 같지만, 아주 짤 짜여진 따뜻한 이야기에 오카다 준이 직접 그린 그림과 독특하게 잘 빚어낸 캐릭터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 아주 좋은 책인데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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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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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 가운데에서 손에 꼽을 만하다. 기법의 신선함도 반갑다. 인형으로 이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이야기도 재미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데다 아이들 마음을 잘 잡아낸 것 같다. 나무에 걸린 구름으로 만든 빵. 책을 읽는 동안 어른인 나조차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맛일지도 궁금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경이나 디테일이 조금더 아기자기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소품들을 찾아가며 보는 재미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참, 이 책은 백희나 씨가 쓰고 그린(인형을 만든) 책이고 김향수 씨는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알라딘에는 그림 그린 이가 김향수 씨로 되어 있다. (백희나 씨가 보면 서운하지 않을까) -> 알라딘에서 바로 고쳐주셨네요.. 독자 리뷰 하나까지 반영하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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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힘찬문고 33
이경자 지음, 시모다 마사카츠 그림, 고향옥 옮김 / 우리교육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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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물론 이 절절함은 전면에 드러나거나 날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주인공 아이와 그 식구들, 둘레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 삶의 고단함이 냄새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장면이나 사건이 또렷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일상에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들이 겪는 삶의 무게에 재일 한국인의 팍팍한 삶이 한 켜 더해져 있다. 삶의 온갖 문제들은 평범한 개인의 것이면서 재일 한국인의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놓고 재일 한국인의 고단함만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주인공 '가즈'의 성장통과 가즈의 식구들, 친구, 이웃의 생생한 삶을 버려두고 그것을 요약 정리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주제나 사건에 압도되어 인물이나 이야기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 우리 동화에서 배울 점이 많은 작품인 것 같다.

그런데 작품에 대면 번역이 썩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있다.

우선 주인공 여자 아이의 이름을 ‘가즈, 가즈꼬, 가즈짱, 미나미’로 섞어 쓰고 있는 것과 옆집 아저씨의 이름을 ‘테츠히로, 야마시타’로 쓰고 있는 점이다. 일본에서 그이들끼리 사정에 따라 호칭을 어떻게 하든지, 우리 문화에서는 때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도 ‘가즈, 가즈꼬, 가즈짱, 미나미’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어 무척 혼란스럽다. 아이들이 ‘가즈, 가즈꼬, 가즈짱, 미나미’나 ‘테츠히로, 야마시타’가 같은 사람을 두고 부르는 호칭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짱’이나 ‘군’의 호칭을 그대로 살린 것도 그렇다. 우리말에 없는 호칭을 일본 발음대로 살려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호르몬야’ 나 ‘하나카에 마츠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호르몬야’의 ‘야’는 ‘가게’를 뜻하는 일본 말이고 ‘하나카에 마츠리’의 ‘마츠리’도 ‘축제’를 뜻하는 말인데 이 단어들을 더 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밤에 하나카에 마츠리 가자”

이런 문장들은 번역을 하는 수고를 덜 들인 말 같이 느껴진다. 물론 이런 말들을 우리말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그대로 두는 것이(물론 설명을 달아주기는 하지만) 좋은 방법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대결’- “사와짱 말야 대결했잖아.”

‘특진’- “고등학교 특진은 하루하루가 경쟁이란 말야” 같은 낱말들도 어색한 느낌이 든다.

열심히 하신 작업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고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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