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사진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일본의 로맨스나 멜로 장르의 소설, 영화들은 너무 감동만을 주려하고 내용이 밋밋하고 잔잔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랑스러운 내용이 바로 일본소설이나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왠지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다 읽은 후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 때로는 그런 후유증이 너무 오래가기도 하지만, 좋아하고 있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알라딘'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것 저것을 보던 중에 우연히 국내도서 검색창에 나와있던,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작가의 새 장편소설 <연애사진>' 이라는 식의 문구를 보게 되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는 영화로 너무나도 좋게 봤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지만 영화의 원작이 소설이었다는 것은 몰랐기에 '어, 이거 소설이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고 검색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니까 <연애사진> 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 대한 관심으로 클릭하게 되었다. 하지만 검색 결과를 보고 곧 내 관심은 <연애사진> 으로 바뀌었다. 너무나도 깔끔하고 심플한 책의 표지. 표지만 봐도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그리고 깔끔한 그런 소설 같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책 소개, 책속에서, 저작 및 역자 소개, 줄거리 등 '알라딘' 에서 제공하는 책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읽어봤다. 그 후 호감도 상승. 좀 더 자세히 보니 책 미리보기 서비스가 있었다. 처음 이용해보는 서비스다. 책의 20페이지 까지를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20페이지를 모두 읽고 구입하기로 결심했고 구입해버렸다. 

 책을 구입하고 배송을 받았다. '알라딘' 은 원래 배송이 빠르지만 작은 실수로 인해 이번 배송은 조금 늦어졌다. 주말까지 껴있었기 때문에 기다림이 길었다. 이 때문이었을까? 책을 받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재미가 없으면 바로 책을 덮어 버리고 책이 재미있으면 쉬지 않고 한 번에 완독하는 스타일이다. <연애사진> 은 후자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연애사진> 을 읽는 3~4시간 동안 이치카와 다쿠지의 글이라는 물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행복, 이게 바로 내가 책을 구입하고 읽는 이유가 아닐까. 

 <연애사진> 속에는 순수한 짝사랑의 설레임과 슬픔 등이 담겨 있다. 어린아이 같은 외모를 (여기서 외모는 얼굴과, 몸 모두 포함이다.) 가진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는, 만성비염 때문에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여자 시즈루. 원일을 알 수 없는 피부병 때문에 바르는 이스라엘제 연고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자 마코토. 같은 반의 남학생이 20명 정도라면 그 중 6명은 그녀에게 사랑에 빠져버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렇지만 엄한 집안 때문에 아직까지 한 번도 연애 경험이 없는 여자 미유키. 이 3명의 예쁘고 순수한 짝사랑을 그렸다. 시즈루는 마코토를 짝사랑하고 마코토는 미유키를 짝사랑 한다. 시즈루와 마코토는 서로 짝사랑하는 상대를 말했기 때문에 서로의 짝사랑을 알고 있다. 

 마코토와 시즈루는 대학 입학식 날, 캠퍼스 뒤쪽 국도에서 만나게 되었다. 국도의 횡단보도 앞에서 내달리는 차들 때문에 건너지 못하는 작은 몸집의 시즈루.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코토는 그녀에게 건너기 쉬운 다른 횡단보도를 알려준다. 이를 계기로 그 후에 둘이 같이 국도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성공하고 건너편에 있는 자연공원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게 된다. 공원에서 만난 새 '수요일' 은 마코토와 시즈루의 사이를 가까워 지게 해준다. 나중에도 '수요일' 덕에 시즈루와 마코토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 시냇물이 연못으로 흘러들어. 정말 맑은 물이야."
"네 이름 같다."
"내 이름?"
"시즈루, 조용한 흐름 조심스럽고 자기주장이 적어."

('시즈루' 는 한자로 표기하면 '靜流 (정류)' 가 된다. 고요할 정 자에 흐를 류 자, 그러니깐 조용한 흐름 이라는 뜻이 된다.)
 

 연고 때문에 항상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마코토와 만성 비염으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시즈루. 이 둘은 청말 천생연분 같다. 천생연분 같은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마코토의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 동거를 하는 중에도 서로를 이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단지 친한 친구로서 대했다. 이는 시즈루의 성숙하지 않은 몸의 덕도 있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마코토도 인정하는 부분. 동거 첫 날, 시즈루는 동거 기념 파티를 하지고 했고 시즈루가 만든 요리와 함께 둘 만의 파티를 했다. 

와인 다음에 우리는 요리에 들어갔다.
우선 '오로라 풍의 시금치 버터볶음' 을 입에 넣어보았다.
"응, 정말 맛있다!"
시즈루는 내 코끝에 손가락을 내밀어 그곳에 있는 공기를 잡는 듯한 몸짓을 보이더니, 그 손을 자신의 가슴에 살짝 댔다.
"뭐야?"
"네 말이 너무 기뻐서" 라고 그녀는 말했다.
"붙잡아서 내 가슴에 챙겨 넣었어." -P129~130 중 

 그렇게 생활하던 중에 스즈루가 마토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린다. 하지만 마코토는 친구인 미유키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고백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의 짝사랑을 계속하게 된다. 시즈루는 마코토와 동거를 시작한 후 부터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마코토와 만나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녀의 병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랑을 하면 성장하게 되는 그런 병이었다. 그러니깐 마코토를 만나 성장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만 봐도 마코토가 그녀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이란 거, 신비한 감정이야."
그 한마디에 나는 약간 긴장했다.
"그 전까지 세계의 중심은 여기…" 라고 말하며 시즈루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꼭지를 가리켰다.
"였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그 축이 스르르 상대쪽으로 이동해가는 느낌이야."
그 상대라는 건 물론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이따금 그런 식으로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가리키듯이 말하곤 했다.
"너도 그래?"
그것은 순수한 물음일 뿐, 멀리 에둘러 나를 비난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라도 그랬다. 그녀는 나의 미유키에 대한 짝사랑을 분명 존중해주었다. -P104~105 중 

 마코토와 시즈루는 마코토의 취미인 사진 찍기를 통해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둘이서 사진 찍으로 다니고 찍은 후에는 마코토의 집에 있는 암실에서 밤새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즈루가 사진 찍기에 어느 정도 능숙해지자 마코토는 시즈루에게 사진 콘테스트에 참가하자고 제안을 했고 둘은 함께 참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콘테스트 결과 통지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코토는 탈락하게 되고 시즈루가 특별상에 입상하게 되었다. 시즈루는 미안함에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마코토는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며 축하선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느냐며 물어봤다. 

그녀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양쪽 손가락을 끼었다 풀었다 하는 작업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와 닮은 몸짓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슴 속에 있는 언어를 입가로 조금씩 길어 올리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그녀의 손은 멈췄다. 언어가 스르르 그녀의 입술 틈새를 뚫고 흘러나왔다.
"키스해줘."
작은 틈새를 지나온 작디작은 목소리였다.
"키스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변함없이 자신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응."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 - P201~202 중 

 그렇게 마코토는 시즈루가 바라는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아침부터 비가 내리던 날, 마코토와 시즈루는 둘만의 '천국 (국도 건녀편에 있는 자연공원)' 에서 그녀가 바라던 키스를 하게 된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감정을 느끼던 둘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치카와 다쿠지는 둘의 키스 장면을 4페이지에 걸쳐 길게 글로 표현했다. 상상하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조금쯤은……."
돌아보니 그녀가 서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늘의 웃음은 30%, 라고 할 웃음이었다.
"키스할 때……."
그녀는 말했다.
"응."
"조금쯤은 사랑이 있었어?"
있었어, 라고 나는 대답했다.
"걱정 마. 나는 사랑 없는 키스는 안 하니까."
아, 다행이다. 라고 말하며 그녀는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댔다. P217 중  

 둘의 키스가 끝난 후, 마코토는 시즈루에게 동거 기념 파티 때처럼 둘이서 와인을 마시자고 했다. 그날 밤에 먹었던 그녀의 요리와 함께 둘이서 축하하자고 했다. 그리고 시즈루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날 밤 둘은 함께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그녀의 요리도 먹을 수 없었다. 시즈루는 '천국' 에서 헤어진 후로 돌아오지 않았고 얼마 후, 상을 타서 자신감이 생겼으니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겠다는 쪽지를 남긴채 떠나버렸다. 

 그렇게 소식이 없던 그녀가 대학 졸업 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편지를 보냈다. 지금은 뉴욕에 머물고 있고 중국계 미국인인 유명한 사진작가의 밑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다는 등 자신의 근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전을 열었으니 마코토가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코토는 이 글을 읽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행기에 올랐고 그녀를, 시즈루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P.S. 아무래도 이 말 한 마디는 안 할 수가 없내.
너를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네가 좋아!! -P240 시즈루의 편지 내용 중 

 하지만 뉴욕에 있는 시즈루의 집에서 만난건 시즈루가 아닌 미유키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코토는 믿을 수 없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책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옮긴이의 말' 을 읽고나서 <연애사진> 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구입할 때 책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읽었지만 영화가 있다는 정보는 얻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바로 컴퓨터를 부팅하고 검색했다. 정말 있었다. 이 책의 표지 만큼이나 아름다운 포스터가 나왔다. 그리고 그 포스터 속에는 일본의 인기배우이자 동시에 내가 좋아하고 있는 배우 '히로스에 료코' 가 있었다. 영화 포토를 하나하나 봤다. <연애사진> 속 마코토와 시즈루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내가 책을 보며 상상했던 시즈루와 마코토의 모습과는 달랐다. 영화를 먼저 봤다면 책을 읽으며 영화 속 배우들을 떠올렸겠지만 책을 먼저봤기 때문에 마코토와 시즈루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모습이다. 큰 문제는 없겠지만 영화를 볼 때 이런 점이 조금 아쉽게 작용할지도. 

 <연애사진> 의 책 뒷쪽 표지에 써있는 것처럼 사랑은 떠난 뒤에야 깨닫는 것이 아닐까? <연애사진> 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 짝사랑의 추억을 떠울려 보게 해주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대한 설레임과 행복등을 느끼게 해준다. <연애사진> 에는 그렇게 특별하다 싶은 사건은 없다. 단지 주인공들의 잔잔하면서 애달픈,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랑만을 그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버리고 또 그 사랑을 너무 쉽게 잊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아름답고 소소한 <연애사진> 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내 감성을 자극해준 책 <연애사진> 을 집필한 소설가 이치카와 다쿠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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