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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6월
평점 :
영혼 없는 공무원이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까지
노량진의 공무원 시험 전문학원은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는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해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 응시자 수는 20만 4698명으로 치솟아 경쟁률은 74.1대 1에 육박했다. 어느 대학이든 학과에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느라 도서관 불빛을 밝히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심지어 지방의 어느 대학에는 공무원 학과까지 있다.
이렇게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이는 '안정된 직장'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 국가에의 헌신을 입으로 떠든다고 해도 그 속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이율배반적으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가 올라갈수록 공무원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안정된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 공무원들이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영혼 없는 공무원'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과실에 근무했던 장진수 씨가 쓴 <블루 게이트>는 한 '영혼 없는 공무원'이 어떻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당당한 한 인간으로 거듭났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이 귀한 이유는 두 가지다. 저자가 '영혼 없는 공무원' 시절을 전혀 미화하지 않고 드러낸다는 점이 귀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유혹과 타협의 목소리를 거부했는지 가감 없이 펼쳐 보인다는 점이 또 귀하다.
첫 업무부터 불법행위
장진주 전 주무관은 어떤 공무원이었나. 2009년 7월 31일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첫 근무한 날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업무세팅이 되지 않아 어수선한 상태였지만 첫날부터 시킨 일을 버벅거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최대한 신속하게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김경동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관서운영비 통장, 직인(도장), 관련 서류가 어디 있는지와 통장 비밀번호를 파악하고, 그가 하던 대로 결재 서류를 만들어 사인받은 후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찾았다. 그리고 이중봉투 세 개에 각각 200만 원, 50만 원, 30만 원을 넣고, 헷갈리지 않게 봉투 안쪽에 맨 앞자리 숫자들을 연필로 적은 후(이영호 비사관 봉투에는 E라고 적음) 진경락 과장에게 슬며시 갖다 주었다.
이것이 나의 첫 임무였다. 불법이었다. 지원관실에 자리를 옮긴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불법 행위. 나는 그저 업무라고 생각해 빈틈없이 신속하게 처리했고, '이 정도면 상관에게 좋은 부하직원으로 비치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엉뚱한 자부심에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었으니 당시의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32-33쪽)
'관료제의 악몽'을 다룬 카프카 소설의 서두 같지 않은가. 지금 이 시간에도 '안정된 직장'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어느 공무원 지망생이 실제로 공무원이 되어 어느 국가기관에서 위와 같이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업무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주어졌을 때, '이거 불법적인 일 아닙니까, 저는 이런 일 못합니다, 자꾸 시키면 관계기관에 고발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부하직원'이 있기나 할까.
<블루 게이트>는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
<블루 게이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민간인 사찰은 반헌법적인 국가폭력이며 그것에 대한 증거인멸은 뻔뻔한 불법행위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어떻게 국가기관에서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누구에 의해 그런 일들이 꾸며졌는지 매우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책에서 여러 차례 밝히고 있듯이 국가와 국민에 대해 마지막 봉사를 한 셈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진실을 밝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사건의 '공범'이라는 법원의 판결이다. 그뿐인가. 그는 그 판결의 결과로 '안정된 직장'을 잃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난 장진수는 더 이상 국민에 대한 봉사, 국가에의 헌신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시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만 되는 것일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이나 잘 해야 되는 것일까. 입을 다물라고 하면 입을 다물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진실을 말하는 입은 더 크게 벌어져야 한다.
장진수는 자신이 '공범'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개인적 차원에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실 고백을 하고 책까지 쓰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는 장진수라는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우리 사회가 삼성의 비리를 만천하에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나 MB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고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을 '정의의 사람들'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의의 공범'들에 둘러싸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부고발자 장진수를 응원하는 이유
장진수 전 주무관이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면서 경험한 아래의 사례들을 보자.
부모 덕분에 시험도 치르지 않고 공무원이 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고모부가 공무원인 덕분에 고모부가 근무하는 부서로 취업이 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동생이 청와대로 부임한 덕분에 말년을 승승장구 승진하다 어느 공기업의 높은 자리로 가는 공무원을 본 적이 있는가? 사무실에서 100만 원 이상의 큰돈이 없어져도 누가 훔쳤는지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내고도 별문제 없이 계속 공무원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사무실에 화재가 나서 온갖 공문서와 컴퓨터가 모조리 타버려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에 모두 "예"라고 답한다. 모두 내가 국무총리실에서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161쪽)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나 정부의 모습과 정반대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가 없다면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사적 이익을 위한 장이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면 양심적인 내부고발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일상이 망가져버리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떠야 한다. 다행히 '장진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도 출범했고, 이렇게 <블루 게이트>라는 책도 나와 장진수 전 주무관은 쉽게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양심을 지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