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제정신 -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
허태균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허태균 교수(고려대 심리학)가 쓴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2012)의 부제는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이다. 표제와 부제는 정확히 이 책의 주제를 요약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쪽글을 모아놓은 형태의 대중 심리학 서적이지만 모든 글이 주제를 향해서 질서정연하게 수렴되고 있다. 그리고 실생활, 특히 연애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팁도 제공하고 있어서 청춘남녀들에게 독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실용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구나 타인의 착각 때문에 황당하거나 화가 나거나 기가 막히거나 코가 막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다.

 

요즘 대학 도서관에 가보면 다 자동개폐기를 쓴다. 학생증을 대면 파란불이 들어오고 무사통과, 안 대거나 잘못 대면 빨간불이 들어오고 삐-익 소리가 나면서 접혀져 있던 판이 무릎높이에서 펼쳐진다.

 

어느 날 나는 학생증을 제대로 대고 파란불을 확인한 후에 도서관에 들어갔다. 필요한 책을 찾은 후 대출절차를 밟으려고 하는데 아, 글쎄 도서관 ‘알바’가 내게 “왜 학생증을 안 찍고 들어 왔어요?” 하고 묻는다. 학생증 바코드를 찍어봤더니 모니터에 그런 내용이 뜨나보다. 나는 분명히 찍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바’는 한사코 내게 잘못 봤을테니 다시 학생증을 찍고 파란불을 확인하고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도서관 출입구로 내려가서 학생증을 찍고 파란불을 확인하고 와서 그 ‘알바’ 앞으로 갔다.

 

그런데 웬걸! 세 명의 학생이 줄을 서서 항의중이다. 분명히 학생증을 찍고 들어왔는데 안 찍고 들어온 것으로 뜬 것이다. 그 학생들은 ‘똥개훈련’을 시키느냐고 따졌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 그 ‘알바’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바’는 얼굴이 빨개져서 내게 사과한다. 자동개폐기가 고장이 났다고 방금 전화가 왔단다.
 
<<가끔은 제정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많은 이런 착각들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서 알려준다.

 

일단 ‘알바’는 기계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경우의 수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각’을 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렇게 착각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착각을 좀 덜 하려면 ‘나도 틀릴 수 있다’, ‘나도 착각할 수 있다’고 자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자, 당신은 착각해놓고 큰소리친 적은 없는가. 혹시 상대방이 착각하고 있다고 무턱대고 짜증낸 적은 없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반성을 권한다.

 

그렇다고 <<가끔은 제정신>>이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무거운 책은 아니다. 이 책에는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매우 다양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역시 남녀상열지사의 심리학이야말로 곶감 빼먹는 재미가 쏠쏠한 대목이다.

 

누구나 이성을 처음 만날 때는 잘 보이고 싶어서 자기를 꾸민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그러한 꾸밈에 살짝 넘어간다. 만약 의식적으로 상대의 빈틈을 간파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인류는 멸종했을 거라고 저자는 농담을 건넨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재밌다.

 

서로 콩깍지가 쓰인 경우에 그 커플을 제3자가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쟤들 지금 착각하는 거야.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런 착각이야말로 인류를 존속시키는 아름다운 착각 아니겠는가. 물론 콩깍지가 벗겨져서 다투고 끝내 헤어지는 커플도 부지기수다. 여기가 키포인트. 그렇다면 콩깍지 쓰인 커플이 서로의 호감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아도 헤어지지 않으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는 최대한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특히 첫인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일단 호감이 형성된 다음에는 조금씩 작은 단점을 노출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면 ‘에이, 이렇게 작은 단점 때문에 그동안의 관계를 망칠 수는 없지’하는 일종의 ‘본전심리’ 때문에 정이 싹튼다고 한다. 나이든 부부가 말하는 ‘이놈의 정 때문에’ 할 때의 바로 그 정 말이다. 일단 콩깍지가 정으로 바뀌면 그 커플은 오래오래 간다. 물론 ‘정 떨어질’ 만큼의 큰 단점을 노출하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벼운 심리학 서적들은 늘 대중서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는 법인데 <<가끔은 제정신>>은 인기를 누려도 좋을 만한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 말한다.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책임이 따른다. 자유 중에 나만 가지는 자유가 어디 있으며 책임 중에 나에게만 주어지는 책임이 어디 있으랴.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정말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착각 역시 만인의 자유다, 하지만 만인은 자신의 착각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의식의 과정이 아니라 무의식의 과정 중에 생긴 착각을 어떻게 책임지느냐고. 앞서 말했듯이 늘 의식 속에 ‘나도 착각할 수 있다’는 겸손을 장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좀 더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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