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설
여행길에 챙겨온 이 지루하고 어려운 소설,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몇 번이나 소설로 돌아갔고, 매번 진저리가 났으며, 매번 지난번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오랜 친구 같은 것이 되었다. 내 오랜 친구 나쁜 소설. (38쪽)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최근 나는 어느 문학상을 받지 못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게으르다는 것은 내가 축약형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할 수 없어 그리고 하지 않을 거야(cannot and will not)라고 온전히 쓰지 않고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can‘t and won‘t)로 줄여 쓴다는 것이었다. (66쪽)
여자, 서른
여자, 서른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 왜 집을 떠나야 하지? 이분들은 나의 부모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내가 왜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말다툼이나 벌일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지?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창문 앞에서 옷 버는 걸 좋아한다. 어떤 남자가 적어도 그녀를 바라보길 소망한다. (85쪽)
이날만은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이 얼마나 이상한가. 아주 어릴 때는 보통 행복하고, 적어도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더 명료하게 보기 시작하면 행복할 일이 별로 없다. 또 사람들을, 가족을 잃기 시작한다. (182쪽, 물개들 중)
그때 언니 목소리는 멀고도 지쳐 보였는데, 말투를 부드럽게 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 후로 우리는 다시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언니 삶에서 밀려났다고 느꼈다. 하지만 당시 언니의 냉정함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의 소리였다. 언니가 죽은 후 나는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애정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 그 일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언니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동생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191쪽, 물개들 중)
두 사람이 죽고 첫 새해는 또 다른 배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지난해를, 그들이 알았던 한 해를 뒤로하고, 그들이 절대 경험하지 못할 한 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205쪽, 물개들 중)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안다는 것, 어쨌든 뭐라도 안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아니, 어떻게 되든지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그 사실을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기 전까지는 죽은 뒤 어떤 형태로 계속 살아가는지, 혹은 그대로 끝인지 결코 알 수가 없다. (212-213쪽, 물개들 중)
통계학의 한 가지 결과
어린아이처럼 더 양식처럼 사람들은 더 오래 산다. (273쪽)
여자는 초콜릿을 하나 먹어도 괜찮을지, 괜찮다면 초콜릿을 혼자 먹을 분위기나 마음 상태는 어때야 하는지 궁금했다. 화나 울분이나 탐욕 때문에 초콜릿을 먹는 건 옳지 않아 보였고, 그저 쾌락을 향한 욕망이나 행복, 축하의 분위기 속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탐욕 때문에 혼자 초콜릿을 먹었다 해도 그 초콜릿이 아주 작다면 덜 잘못된 걸까? (321쪽, 작은 초콜릿 상자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글쓰기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계속 쓸 수 없다. 한때 인생은 더 쉬웠고, 종종 즐거웠고, 그래서 글쓰기 역시 심각해 보이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지금 인생은 쉽지 않고, 너무 심각해졌으며, 그에 비해 글쓰기가 조금 우습게 보인다. 글쓰기는 종종 현실을 주제로 하지 않는데, 현실을 주제로 글을 쓸 때면 종종 현실에 눌러앉게 된다. 또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니 나는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는 대신 그냥 글쓰기를 중단하고 삶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인생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야 더 똑똑해질 것이다. 대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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