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몇 년에 걸쳐 독립된 단편으로 열네 편의 이야기를 썼지만, 이들은 서로 연결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며, 특히 삶의 모든 것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각각의 단편은 소제목이 있지만, 피셔의 변주곡처럼 인물과 사건, 이미지가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면서 하나로 연결된 장편같다.  

'겨울 여행'은 슈베르트 가곡 '겨울 여행(우리나라는 겨울 나그네)'에서 따온 제목이다.

열네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가 걷고 있는 인생이라는 길을 대변하고 있다.

마지막 편에 나오는 글처럼, '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제나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다. 하필이면 겨울 여행에 당첨되어(285쪽)'


기억에 남는 글은, 

'사후작품'은 예술가가 마지막으로 슈베르트 대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피셔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를 살아나게 한다.

'유언장'은 더 더 사랑해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넘치는 데, 남의 자식들이라니. 많이 쓸쓸하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살아온 나의 삶은? 

'손안의 희망'은 아주 작은, 실낱같은 희망만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순간의 미세하고 작은 기대,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이 되는 거 같다. 

'이 분'은 2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짧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 진다.

'먼지'는 먼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먼지도 이유가 있어 쌓이는 것이고, 그 먼지는 방심한 틈을 타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겨울 여행'은 겨울 들판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누구는 봄 여행 중이고, 누구는 여름 여행으로, 가을 여행 등등 각자의 도정에 있다. 


살아서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죽어서는 기억된다는 것에서, 남은 자의 기억 속에 소환되는 내 모습은 어떨까 싶다.

추석을 앞두고 세 명의 시누들을 만나 서로 다른 그들의 기억에 나의 기억까지 나누었다.

아들 가족과 일박 이일로 친정에 미리 다녀왔다. 아들 가족은 어제 같이 와인 곁들여 외식하고 오늘은 처가로 일찍 갔다. 좋은 시아버지 시어머니로 남고 싶은 마음과 며느리가 이렇게 저렇게 좀 하면 좋을 텐데 바라는 마음이 수시로 오간다.

하지만 손녀에 중독된 우리의 기쁨에 비하면 에구구 됐다, 됐어, 뭘 바라겠냐, 싶다. 매일 손녀 보여 주는 거로 퉁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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