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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호랑이
권정생 지음,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2017년 9월
평점 :
권정생 작가의 유작을 정승각 그림작가가 10년여에 걸쳐 작업하고 이제야 선보이는 책이다.
나는 민화풍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친근하지 않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가 든다. 정승각 작가는 왜 이렇게 그렸을까?

우울하게 시작이 된다. 유복이는 이름 그대로 유복자다.
유복이가 일곱 살쯤 글방에 공부하러 갔더니 "애비없는 자식!"이라며 아이들이 놀려댄다.
이 놀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더니 7살난 우리 아들이 "얘는 도깨비야?" 하고 묻는다.
분홍, 노랑, 파랑 비단옷에 화려한 한자로 수놓인 옷을 입고,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어도 되먹지 못한 인성을 가진 아이들은 유복이에게는 심술궂은 도깨비같은 존재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 훈장님은 어떠한가 눈이 있어도 보지못하는 촛점없는 눈을 가졌다. 귀가 있어도 아이들의 잘못된 행실을 보고들어도 나무라지 못하고 손도 하나 까딱하지 않는 훈장의 모습이다.
어쩜 지금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문제를 그대로 그림한장에 표현해 놓은 듯하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일반적으로 기득권층의 눈밖에 나기 싫어서 귀막고 눈감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훈장님도 노랑, 파랑, 분홍, 연두색으로 영향을 끼치는 양반들의 그늘아래에 지내고 있기 때문에 유복이의 문제를 그냥 두었다. 그 학생이 있든지 없든지 자기와는 상관없다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신경쓰기 싫은 것이다.

유복이의 출발은 우울했다.
하지만 엄마의 격려로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된다.
엄마는 유복이의 분노의 시작은 놀리는 아이들 때문이었지만 그 원인은 호랑이임을 알게 해준다.
철없는 아이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너의 싸울 대상은 호랑이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엄마는 위험을 무릎쓰는 유복이를 말리지 않지만 자신의 현실을 바로 보게해준다.
"너는 아직 어리고 활도 쏠 줄 모르잖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연습을 하겠어요."
죽음의 길인 것을 알지만 엄마는 기도하고 철저히 도와준다.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결국 유복이도 거대한 호랑이에게 한입에 잡아먹히고 만다.
그러나 물고기 밥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요나처럼...
유복이는 한 여인의 작은 도움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여인과 집에 돌아와 혼인한다.
마지막 혼인 장면에서는 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이 떠오른다.
제랄다의 놀라운 음식 솜씨로 사람잡아먹는 거인을 온순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거인과 결혼해서 네 아이를 낳고 잘 사는 엔딩 장면과 오버랩 된다.
토미 웅거러는 안데르센의 뒤를 잇는 동화작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릇 동화라 함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도 있고
동화속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내는 영웅이거나 신비한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다.
그것으로 어린이들은 대리만족을 누린다.
나도 이 주인공처럼 용기내서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기도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인생에는 나도 모르게 신비한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권정생은 한국의 안데르센이라 칭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하니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현실적이다.
상상하지 않는다.
"에이~~ 말도 안돼요!" 하면서 동화를 일축해버리기도 한다.
과연 말도 안될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영웅의 스토리를 좋아한다.
호랑이와 싸우다 살아남지 못할수도 있다.
영화 1987에서 보듯이 박종철과 이한열처럼 죽음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있는 선택이 있었기에 군부독재가 마감되었고
지금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복이가 살아돌아오지 못하리라 생각되지만 말리기보다는 격려하고 기도해주던 그 엄마,
작은 도움을 주었던 한 여인, 그리고 신비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유복이가 있을 수 있었다.
평생을 혼자 아프고 야윈 몸으로 살다가셨던 권정생 작가,
지금은 눈물도 아픔도 없는 곳에서 건강한 몸으로 해처럼 밝게 웃으며 지내실 것이다.
마지막에 유복이가 사모관대를 쓰고 있는 그 모습은 권정생 작가가
평생 원하던 모습이었다.
어쩜 정승각 작가는 권정생 작가가 지금 이런 얼굴일 것이라 상상하며 그리지 않았을까?
유복이 얼굴을 가만 바라보면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어머니는 유복이도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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