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기로 조선 제일이었던 박학한 독서가 이덕무는 나름 책 빌리기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가난했기에 큰 장서가가 되지 못한 그는 늘 책을 빌려 보는 처지였다. 이덕무에게서 책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책이 많아도 애서인(愛書人)으로 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책을 어지간히 빌렸던 모양이다. 그가 쓴 《사소절(士小節)》은 18세기 후반 서울 사족들의 생활상의 에티켓에 대한 저술인데, 당연히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데 대한 에티켓도 있다.
먼저 책을 빌리는 사람 쪽을 보자.
완성되지 않은 남의 책 원고를 건드려 그 차례를 바뀌게 해서는 안 된다. 장정하지 않은 서화를 빌려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남의 완성되지 않은 원고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장정이 되지 않은 상태의 서화를 함부로 빌려달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의 서적・시문(詩文)・서화는 일단 보고 난 뒤에 빌려달라고 청해야 한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빼앗아 소매 속에 넣고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남의 책이나 시문, 서화는 한 번 본 뒤 빌려줄 것을 청해야 한다. 곧 보지도 않고 빌려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빌리고 싶더라도 억지로 빼앗아 가지고 오면 안 될 일이다. 가까운 벗 사이에는 이런 무례가 일어나기 쉽다.
다음은 책을 빌리는 기한이다.
남의 장서를 빌리면 꼼꼼하게 읽고 베낀 뒤에 약속한 날짜 안에 돌려주어야 하고, 오래 지체하여 기한을 넘기거나 돌려달라고 채근하는데도 돌려주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 재차 빌려주어 훼손하거나 잃어버린다면 결국 나의 행실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 될 터이다.
그래, 책을 빌렸으면 약속한 날까지 돌려주어야 한다. 가슴에 찔리는 말이다. 도서관의 책도 빌렸다가 늦게 반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벌금까지 물고 만다. 돌려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땅히 다시 먼지를 떨고 차례대로 정리해서 보자기에 싸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옛날 책은 여러 권이다. 10권이 한 세트라면 1권부터 10권까지 정리해서 먼지를 떨고 보자기에 얌전히 싸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 휴머니스트·현진
빌려온 책은 당연히 더럽혀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의 글씨 병풍이나 그림이 있는 가리개 병풍을 빌리면 마땅히 보물처럼 여기며 완상해야 할 것이다. 창이나 벽을 가려 바람과 추위를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보풀이 일고 주름이 지고, 침과 콧물 자국이 나도록 해를 넘겨 돌려주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빌려온 책에 오류가 있다고 하자. 책을 읽는 사람은 견딜 수가 없다. 고치고 싶다. 그럴 경우 책에다 교정을 해서는 안 된다. 책 주인이 ‘옛것을 사랑하여 내용을 중시하는 사람’, 곧 학문이 있고 책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정을 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종이쪽에 별도로 써서 그 곁에 조심스럽게 붙인다. 함부로 책에다 써서 고쳐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주인이 물건을 아끼기만 하고 학문이 없는 사람이라면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귀중한 책은 그냥 빌려 읽고 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베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아야 한다. 해서(楷書)와 초서를 섞어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다가 끝에 가서는 게을러져서 마음의 거친 것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마땅히 한 부의 책을 완성해야만 할 것이다.
책을 빌리는 중요한 이유는 베끼는 것이다. 베낄 때는 해서로 단정하게 베껴야 하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베껴서 완성해야 할 것이다.
빌려주는 사람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이덕무는 “남에게 책을 빌려주어 뜻하는 사업을 성장케 하는 것은 남에게 재물을 주어 그 곤궁을 구제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책을 많이 빌려 본 사람이라 그런지 책을 빌려주어 한 사람의 지적 성장을 돕는 것은 재물을 주어 곤궁을 구제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빌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빌려주는 것이 책 가진 자의 도리가 된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나 책을 빌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인색하게 굴지 말고 즉시 빌려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릴 때 그 사람이 혹 빌려주지 않으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뒷날 그 사람이 또 빌리려고 올 경우 전에 나에게 빌려주지 않았다며 앙갚음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부형이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처음에는 부형에게 잘 말씀드리고, 그래도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형이 빌려주지 않으려 하신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책을 빌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빌려주라는 말이다. 한편 내가 빌려준 어떤 사람에게서 책을 빌릴 때 그 사람이 빌려주지 않는다 해서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뒷날 나에게 책을 빌리러 왔을 때 복수심에 꽁하여 빌려주지 않아서도 안 된다. 보고 싶구나.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는지.
하지만 책을 빌려주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부형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다. 허락을 얻기 위해 다시 여쭙지만 그래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빌려줄 수 없다. 다만 ‘부형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어른을 욕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덕무의 에티켓은 지금도 통한다. 하지만 책이 흔해진 세상, 어지간한 책은 구할 수 있고 또 도서관에서도 빌려 볼 수 있으니, 이런 에티켓도 소용없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