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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벌써 10여 년 전이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한참 학생운동에 매달리고 있었다. 수업보다도 데모하고 토론하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민중가요를 부르는데 골몰했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입생 때 교양수업으로 문화인류학 개론을 한 학기 들었다. 그때 담당 교수가 추천해 준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었다.
문화인류학 책으로는 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가 쓴 <털없는 원숭이> 정도가 생각난다. 지구상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는데, 그 중 ‘호모 사피엔스’라 자처하는 인간은 유일한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인간의 동물적인 특성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국화와 칼>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볍게 읽을 거리는 분명 아니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미국 국무부의 위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연구를 시작해 ‘일본 문화의 틀’을 탐구했다.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며, 국화는 깨끗하고 조용하고 고귀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은 예의 바르고 착하고 겸손한 일본 사람들 속에는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선 놀라운 것은 저자가 선택한 연구 방법이다. 연구 당시, 미국과 일본이 교전 중이어서 저자는 한차례도 일본을 방문하지 못했다. 일본인 전쟁 포로들을 만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화, 책, 신문, 잡지 등을 자료로 활용했다. 그렇지만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은 일본 사람과 그들의 문화의 정수를 들춰낸다.
일본 문화의 두드러진 특성은 우선 역사적으로 형성돼온 철저한 계층제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국가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근거가 된다. 계층의 정점은 신성불가침의 천황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말과 행동부터 의상까지 모든 생활양식에 대한 규정을 따라야 하며, 그것을 어기게 되면 자책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으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면친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서 가장 최고의 위치를 차지 하고 있다. 그래서 천황이나 국가에 대한 충(忠)과 양친이나 조상에 대한 효(孝)의 의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전부를 갚을 수 없으며,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은혜는 자신이 받은 만큼 갚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하고 신세를 진 것에 대해 꼭 갚아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강박관념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인은 자기 이름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모욕을 당하거나 오명을 덮어쓰면 어떠한 방법(살인을 하더라도)으로든 복수를 해야 자기 이름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것은 만인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자는 연구 당시 일본이 적국이었음에도 일본문화를 폄하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 물론 그것이 다른 민족이나 인종, 문화를 존경할 수 있는 것이 문화인류학의 출발점일 것이다.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에 입각한 서양인이 이처럼 날카롭게 동양문화를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며, 그의 분석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결같이 친절하고, 예절 바르고, 인격적인 일본 사람들만 만나왔다. 또 오늘날의 도쿄 신주쿠 거리를 떠올리거나,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1940년대 일본 문화의 틀에서 많이 변화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사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