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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범인에게 고한다>의 사즈쿠이 슈스케는 괜찮은 작가입니다. 그러고 보니 소개하려는 미치오 슈스케도 그렇군요. ‘슈스케’란 이름이 참 괜찮은 모양입니다;

뭐, 아무튼; 미치오 슈스케.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작가는 아닙니다. <섀도우>에서 그는 상당한 기교파였습니다. 온갖 불합리한 설정으로 기괴함과 수수께끼를 잔뜩 부축이고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죠. <섀도우>는 2007년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받았고 그 이후 미치오 슈스케는 주목받는 신인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그 이후 작품은 십이지 시리즈 중 몇 권이라도 국내에 소개될 거라고 생각되네요.

소개하려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2006년 본격미스터리 대상 부문 후보작입니다. 33주 오리콘 랭킹, 80만 부 판매 뭐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 작품이 <섀도우>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006년은 도대체 어떤 작품이;; 검색해보니 <용의자 X의 헌신>이 대상이군요; 게다가 시마다 소지의 <마천루의 괴인>, 이시모치 아사미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도 포진돼 있습니다. 저런.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미치오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부모님과 여동생 미카와 함께 살고 있죠.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동네에서는 다리가 꺾여 죽은 개나 고양이의 시체가 계속해서 발견돼 흉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미치오는 결석한 반 친구 S에게 숙제와 통지서 등의 유인물을 전하러 친구 집으로 향합니다. 이와무라 선생님이 “누가 갈래?”라고 했을 때 무심코 손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친구 집에서 발견한 건 친구 S의 시체였습니다. 목을 매고 자살한 것 같습니다. 당황한 미치오는 이와무라 선생님에게 달려가 이 일을 얘기하고 경찰과 함께 다시 사건 현장을 찾습니다. 하지만 시체는 사라지고 없었죠.
그로부터 일주일 뒤 S가 거미로 환생해 나타납니다. S는 자신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 라고 열심히 주장한 후 범인은 ‘누구’니까.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얘기하죠. 미치오, 여동생 미카와 거미로 환생한 S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이상한 이야기는 정말 불합리합니다. 읽어가다 보면 기묘한 부분이 도처에서 툭툭 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물론 잘 단련된 독자라면 현혹되지 않고 질서를 찾아 읽으려고 노력하겠죠. 하지만 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하지만 결론은 잘 풀립니다. 별로 이상하지 않게 됩니다. 감동도 있습니다. 굉장한 기교죠.

‘기괴하고 환상적인 요소를 본격 미스터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이미 우리는 멋지게 성공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지점을 이미 넘어서고 있습니다. 작품 말미의 멋진 해설을 그대로 반복할 우려가 있어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또 결론이 드러날 수도 있어서), 미치오 슈스케는 플롯을 정교하게 조작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이다’라는 근본적인 약점을 내포한 말을 멋지게 농락하죠.(마치 사회학자가 사회라는 연구 대상을 연구할 때 사회 밖으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 같은 겁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진화라고 할까요. 미치오 슈스케는 이 어려운 시도를 끊임없이 제법 잘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우린 이미 성공한 작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러닉하게도 미치오 슈스케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게 뭔지는 검색해 보면 바로 나옵니다. 역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PS 1. 나이를 뛰어넘는 침착한 캐릭터는 작가의 습관 같은 것인가 보네요. <섀도우>에서도 그러더니.
PS 2. 마지막 부분은 제법 감동적입니다. 이게 사실 감동적인 얘기는 아닌데……. 그만큼 초반의 불안함과 불쾌함을 잘 형상화 해냈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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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도 다케루 풍, 경쾌 발랄하면서 전문 지식을 다루고 수다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은 분께 추천.

1961년생의 가도이 요시노부는 비전문가인 것 같은데 꼼꼼하고 체계적인 조사로 5편의 단편을 충실하게 채워 놓았다.

일본 전통 예술 지식이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는 것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편. 고향길 내려갈 때 읽으시면 아주 좋겠다.

비교할 만한 작품은 후지히코 호소노의 <갤러리 페이크>.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나도 캐주얼한 표지. 약간 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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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스터리. inverted mystery의 묘미라면 범죄자가 가여워 보일 정도로 탐정을 비롯한 주변 상황이 촘촘하게 좁혀오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사건이 발생했는지 모두 알고 있는 독자는 탐정이 범죄자의 은폐와 함정을 차례차례 돌파할 때마다 쾌감과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 따라서 도서 미스터리는 심리극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고 또 범죄 현장이 서두에 나타나기 때문에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서 많이 차용하게 된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 F. W. 크로포츠의 《크로이든 발 12시 30분》는 이 분야의 3대 걸작이라고 불린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도서 미스터리. 게다가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대학 동호회의 옛 멤버가 모인 자리. 고풍스럽고 멋진 펜션을 배경으로 일곱 명의 남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모임의 리더 격인 후스미 료스케는 어떠한 이유로 후배인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전범죄를 시도한다. 밀실로 만들어버린 범죄현장. 모든 사람은 니이야마가 아직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오직 유코 한 명만이 그 진실을 서서히 파해쳐 간다.

문은 왜 열리지 않는가? 에서 문은 왜 열리면 안 되는가? 로 이어지는 명쾌한 흐름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범죄가 일어나고 범죄가 밝혀지고 범죄의 이유가 밝혀질 때까지 군더더기가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한 호흡에 읽힌다. 유코와 후스미의 치열한 심리 대결을 통해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는 과정은 도서 미스터리의 매력이 한껏 살아나는 부분이다. 유코의 날카로운 지적이 가슴이 철렁철렁하는 후스미의 모습은 매우 재미있다는 말씀.

동기가 조금 아쉽고, 서로 영리하다고 자부하는 유코와 후스미가 그리 명석하게 보이지 않는 것만;;(그들은 서로 충분히 익숙하기에 서로에게만 날카롭지 않을까...) 제외하면 추리소설적인 재미가 느껴지는 훌륭한 작품이다(작가도 자신이 어떤 추리소설을 쓰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도서 미스터리 3부작으로 구성한다고 하니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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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전 담당 편집자입니다만;;

http://decca.egloos.com/1283559 이곳에 가시면 관련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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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4-1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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