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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물론, 영어 텍스트에 한하겠지만, 비 영어권 작가가 CWA를 수상한 경우가 얼마나 잦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를 제외하면 2001년도에 헤닝 만켈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그만큼 미스터리는 영어권이 강세입니다. 그나마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미스터리가 특유의 빛을 발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영어권의 미스터리는 주류의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합니다.
‘이데아의 동굴’ 작가소개에 의하면 쿠바의 아바나 출신인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는 정치적 이유로 스페인으로 망명했다고 합니다. 짧은 정신과 의사 생활을 거쳐 1994년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했는데, 스페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 만큼 그 활동은 눈부셨습니다. ‘변신하는 X맨’으로 불릴 만큼 작품의 소재 또한 다양하다고 하는데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도 하고 물리적 힘을 가진 시를 소재로 삼기도 했다더군요. 번역자가 해설에서 밝혔듯, 작가는 보르헤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하는데요. ‘이데아의 동굴’에는 보르헤스 특유의 즉 문예사조상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남미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여러 기법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들이 발견됩니다.
이 작품 ‘이데아의 동굴’은 작가의 영어권(미국) 데뷔작입니다. 미국에는 ‘The Athenian Murder’라는 제목(다분히 선정적이고 구태의연한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 또한 고도의 안배된 것이니까요.)으로 소개됐고 이 작품으로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는 2002년 CWA를 골드 대거를 수상합니다.
‘이데아의 동굴’은 두 가지 면으로 읽힐 수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실험적인 범죄소설, 그리고 또 하나는 철학 소설입니다.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볼까요. 시대적 배경은 고대 그리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올 수 없다; medeis ageometretos eisito’ 그 유명한 현판이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주요한 배경이니, BC 5세기 후반에서 4세기 중 한 시기겠죠. 아카데미아의 학생인 트라마코스라는 미소년이 온몸이 참혹하게 찢긴채 발견됩니다. 늑대에 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의 스승 디아고라스는 의문을 갖고 ‘수수께끼의 해독자’ 헤라클레스 폰토르에게 수사를 의뢰합니다. 왠지 헤이스팅즈와 포와로(순전 체격적인 비교입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 두 사람은 조사를 해나가는데요. 사건은 트라마코스의 친구들의 연쇄살인으로 확장됩니다. 소설의 주석으로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죠. 이 소설의 각주는 ‘이데아의 동굴’의 일부분으로서, 국내 번역자(김상유 씨)의 주는 미주로 돼 있습니다. 주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화자는 고전 소설을 번역하는 ‘번역자’입니다. 번역자가 판본으로 하는 ‘이데아의 동굴’은 몬탈로라는 이가 번역했던 ‘파피루스’로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몬탈로가 번역한 판본이 유일한 것입니다. ‘번역자’는 에이데시스라는 그리스 시대의 수사법에 집착하는데요. 이 수사법은 글 안에 반복적인 메시지나 단어 등을 언급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물론 에이데시스는 허구입니다).
자, 이 평행한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석 쪽의 ‘번역자’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몬탈로의 판본 즉, 자신이 번역하고 있는 판본에서 ‘번역자’를 암시하는 듯한 문장이 발견된 것이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문장이 발견되는가 하면, 심지어 작중 속 인물이 ‘번역자’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평행한 두 개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섞여들고 ‘번역자’는 가면으로 정체를 가린 한 인물에게 납치되고 맙니다. 해설자가 얘기했듯 이러한 구조는 시와 그 주석으로 이뤄져 있는 나보코브의 ‘창백한 불꽃’을 떠올리게 합니다.
놀라운 구조로 진행되는 이 작품의 의미는 제목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데아의 동굴’이란 제목은 여러 가지를 암시합니다. ‘이데아’란 플라톤의 이데아지요.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지요. 그리고 ‘동굴’이란 역시 플라톤의 ‘국가론’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선을 고정한 채 동굴에 갖힌 죄수들은 비치는 그림자만이 참 현실이라고 인식하지요. 플라톤은 죄수들이야말로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이성의 눈을 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는 다중적이고 열려있는 구조로 이뤄진 ‘이데아의 동굴’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론 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얘기합니다. 그것이 이데아의 증명인지 혹은 반증인지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지요.
‘이데아의 동굴’은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의 소설이면서, 고대 그리스의 작가가 파피루스에 기록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또 몬탈로가 번역한 판본이기도 하며, 몬탈로의 판본으로 번역하는 '번역자'의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 안과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소설 밖으로 나뉘어집니다. 소설 안과 소설 밖이 교묘하게 얽히면서 하나의 소설이 되며 결말에 이르면 또 다시 소설은 안과 밖으로 나뉩니다. 이는 세계를 그리는 언어가 아닌 언어가 만들어 낸 세계를 말하는 언어를 사용했던 문학 사조 상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부합하는 면을 보여줍니다.
추리소설적인 면으로 봐도 ‘이데아의 동굴’은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수께끼의 해독자’ 헤라클레스 폰토르는 스스로 본 사실, 스스로 사유한 생각 그리고 과학적인 실증을 믿는 철저한 과학주의자입니다. 그와 행동을 함께 하는 아카데미아의 스승 디아고라스는 ‘이데아’의 세계에 푹 잠겨있는 절대적인 이성주의자구요. 이 묘한 대조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삶과 철학이 엉기면서 역사 추리소설로서도 가치를 얻게 되지요. 추리소설 적인 요소가 부족한 편입니다만, 그것은 오직 소설 안만 고려한 의견일 뿐입니다. 실험적인 다중 구조가 가미되면서 ‘이데아의 동굴’은 놀라운 지적 만족을 가져다주지요.
이 소설을 평가하는데 제 개인적인 배움이 부친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명쾌한 작품 속 해설에 상당 부분을 기대야했죠. 다만 개인적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주제인 소설 속의 사건이 아닌, 글 자체가 만들어내는 추리소설의 트릭 또 추리소설 특유의 시점 활용 이 어느 정도 다가오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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