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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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던 소녀가 어느 날 눈앞에서 풍선처럼 펑 폭발해버린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여자의 머리가 짜부라지듯 터진다. 산탄총으로 저격한 것도, 폭탄을 설치한 것도 아닌데- 이 불가해한 살인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끔찍한 참극의 뒤에는 시스마라는 특수 약물이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자극해서 극한의 흥분과 쾌락 상태를 견디다 못해 자기 머리를 쪼개어 뇌를 꺼내게 만든다는 악마의 약물! 약물 효과의 연쇄 작용은 시공 붕괴와 세상의 소멸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데...!


<엘리펀트 헤드>는 그나마 조금은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정상을 찍은 전작 <명탐정의 제물>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괴랄한 악취미 때로 돌아간다. 온갖 엽기적인 상상과 변태적 설정이 잔혹 스플래터 무비처럼 펼쳐진다. 스토리를 요약하기도 힘들며, 책 속 미스터리를 단번에 이해하기도 힘들다.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복선과 단서로 활용되고, 양자역학부터 뇌 과학, 타임 패러독스, 평행 우주 등의 장르적 설정이 총망라된다. 어마어마한 판타지적 토양 위에 괴랄한 상상력이 끝없이 덧칠되며, 그렇게 쌓아 올린 특수한 무대 장치로 선보이는 추리 파트는 나름 논리적이긴 하다.


다만 정점을 찍은 <명탐정의 제물>과 비교하면 완성도도, 흥미도 떨어진다. 엄청 기대를 한 신작인데,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웠다. 하나는 작가의 특기인 '특수 설정'이 너무 지나쳤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엄청나지만, 그 상상력이 너무 높게 치솟다 보니 나중에는 저 멀리 구름 위에서 자기들끼리 추리를 주고받는 흐릿한 기분이 들었다. <명탐정의 제물> 때처럼 선명하게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강력한 한방이 부족했다. 또 하나, 작가의 악취미라 할 수 있는 '변태적 막장' 성향이 너무 강해서 이 점은 싫었다.


뇌 속 뉴런의 수는 인간이 약 115억 개고, 그다음으로 많은 코끼리가 약 100억 개라고 한다. 코끼리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인간이 그토록 많은 뉴런을 보유한 것은 기이하다. 그런데도 인간의 뇌 실험은 지금도 과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이뤄진다. 무엇을 더 바라는 걸까? 코끼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몸집을 가진 주제에 코끼리보다 10배 많은 뉴런을 보유하고 싶은 걸까? 코끼리는 알고 있다. 그러다 인간들 머리가 전부 터져 죽을 것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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