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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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 상, 야마모토 슈고로 상 동시 수상작!

고비키초의 극장 앞에서 소년 무사는 아버지의 원수를 기다린다. 이윽고 덩치 큰 사내가 나타나고, 소년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사내와 목숨을 건 승부를 펼친다. 소년의 칼이 사내를 베고, 복수는 끝났다. 소년은 사내의 목을 잘라서 구경꾼 틈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를 고비키초의 복수라 불렀다.

그리고 2년 후, 한 남자가 고비키초 복수의 내막을 알고자 당시 목격자들을 만난다. 소설은 목격자 다섯 명을 각각 화자로 내세워 '그날의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얘기한다. 언뜻 '라쇼몽'이 연상되는 구조다. 독자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고, 오로지 청자가 되어 다섯 목격자들의 얘기로만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춰야 한다. 물론 어려운 퍼즐은 아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드라마다.

챕터마다 증인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얘기하지만, 그들 각자의 삶과 사연도 함께 녹아있다. 이것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관한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참극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끝에 가서 가슴을 뜨겁게 적시는 인간애로 귀결된다.

수백 년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인간 원형의 고뇌를 한 뜸 한 뜸 진지하게 고찰한다. 그래서 에도 시대 고비키초 거리 위로 지금 내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과 내일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이 겹쳐진다. 인간사가 서글픈 이유는 허공 위에 새긴 각인을 좇기 때문이다. 허울과 허영을 버리고, 착실히 하루하루를 꾹꾹 눌러 '살아라'고 작가는 오늘날의 청춘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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