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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6월의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이 강렬한 첫 문장으로 아니 에르노의 소설 '부끄러움'은 이야기의 문을 연다. 12살 소녀가 겪은 그날의 체험이 그녀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버린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이라는 세계와 자신을 둘러싼 사회라는 세계 사이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한 번도 우리 가족,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부끄러운 존재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주관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그녀는 그녀를 둘러싼 가정과 사회, 나아가 세계정세까지- 모든 것을 바깥으로부터 들여다본다. 이러한 글쓰기로 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그러했다. 있는 그대로의 것들, 보고 들은 것들, 사실인 것들만 글로 쓰는 작법이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피해야 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해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될 때는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그렇게 열두 살 소녀가 보고 들은 것들, 그리고 조사한 자료에 관해서만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그때 당시 집안의 구조, 가족의 모습과 하루 일과, 그리고 거리의 풍경- 그즈음 세계 각지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까지! 그렇게 그녀는 하나하나 그때의 사실들을 자신과 가까웠던 것부터 아주 먼 것들까지 끌어모아 나열한다. 그 비교를 통해 그녀는 '다름'을 읽는다. 열두 살 이전까지 소녀는 자기 가족과 다른 가족, 이 마을과 옆 마을, 나아가 전 세계가 막연히 같거나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로소 비교를 통해 다름을 깨닫는다. 다름을 깨닫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사물의 사회적 분배는 그 존재 자체보다 훨씬 의미 있는 것이다. 1952년에 남들은 욕실을 가졌지만 우리는 싱크대도 없었다는 것은 오늘날 누군가는 아녜스 베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우리는 프로기에서 옷을 사 입는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차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작가는 소설 내내 '가난'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사회적 분배'에 있다. 그것은 삶에 임하는 제각각 다른 입장을 의미한다. 일정 이상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채 그 집단에 속해있을 때 그어지는 선. 그 선을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만은 틀림없이 알고 있고, 부끄러움은 바로 거기에서 생겨난다. 한 개인의 삶이, 그리고 사회의 문명이 구축되어 이만큼 흘러오면서 생겨난 거미줄 같은 선들! 개인의 부끄러움은 곧 사회의 불평등과 닿아 있고, 세계 곳곳에 있는 갈등과 모순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문제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하지만 소설은 내내 철저히 한 개인의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다. 작가는 구태여 거대 담론을 주제 삼지 않는다. 그저 한 소녀의 삶을 파고든 부끄러움을 객관적인 비교로만 나열한다. 그래서 글을 읽을수록 더욱 움츠러든다. 나에게도 책 속 소녀가 겪은 '그날'은 존재한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나는 더이상 바느질로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고 나가기 꺼려졌다. 한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부끄러움은 곧 그를 이루고 있는 진실이며 아이덴티티다. 작가는 마치 내 안에 꼭꼭 숨겨둔 진실과 아이덴티티를 가감없이 들여다보며 '너도 결국은 다르지 않잖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글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 부끄러움에 공감하는 모든 독자의 이야기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라고 말한 짤막한 작가 서문이 결국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소멸시켜 글 재료로 삼는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그녀라는 '존재'를 지탱시켜주는 에너지다.
오래전 문창과 수업 때 교수님이 한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자신의 숨기고 싶은 부분, 추하고 악한 부분까지 모두 글로 드러낼 각오가 없다면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아니 에르노가 부끄러움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쓴 소설 '부끄러움'이야 말로 그때 교수가 했던 말의 진의와 닿아 있다. 글쓰기는 그렇게 자신의 부끄러움까지 숨김없이 바라보는 것이고, 그 치열함이 글쓰기를 개척한다. 아니 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치열한 글쓰기에 대한 존경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