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잡학 사전 - 음식에 녹아 있는 뜻밖의 문화사
윤덕노 지음 / 북로드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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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잡학 사전>은 여러 음식들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담아놓은 책이다. 김밥, 햄버거, 크루와상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우리가 흔히 즐겨먹는 여러 음식들을 누가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어떤 경로로 전파되었는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의 미덕은 음식의 유래에 대해 단순히 상식 수준의 '설'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해놓았다는 점이다. 음식 각각의 유래는 짧고 부담없는 분량이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기까지 저자가 꽤나 만만치 않은 공을 들였으리나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잘 몰랐던 음식의 유래가 소개되고, 더불어 음식에 얽힌 역사와 문화가 꿰어 나온다.  

  일례로 햄버거가 독일도시 '함부르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몽골 유목민 타타르 사람들이 말안장에 고기를 넣어가지고 다니며 다져 먹던 것이 패티의 유래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칭기즈칸 덕분에 러시아 혹은 아랍를 거쳐 독일로 전해진 것이 '햄버거'인 것이다. KBS 다큐 <누들로드>를 통해 보듯이, 음식은 당시의 문화, 교류, 역사를 확인시켜줄 수 있는 좋은 소재인 것이다. 

  이밖에도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토마토를 처음 본 중세 유럽사람들이 독이 든 열매로 생각했다는 이야기와 토마토케첩이 중국사투리에서 유래한 액젓이라는 이야기 같이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과 생각으로 다뤄졌던 음식들을 소개하며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고, 세계 각국으로 퍼진 음식의 원조와 어원을 따져보기도 한다. 각각의 음식들이 짧은 글들로 이뤄져있어서 한번에 다 읽기보다는 생각날 때마다 꺼내들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알고 먹는다면 음식이 더 맛있을 것이다. 음식을 통해 쌓아가는 상식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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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굴 가이드
김미월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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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피시방만큼 남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곳도 드물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니터 밖의 세상에는, 칸막이 너머의 인간에게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네트워크 세상에서 그들은 저마다 왕이고 전사며 공주이자 요정이었다. 악의 무리를 응징하고 제국을 건설하고 이웃나라 왕자들의 구혼도 받아주어야 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았으므로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이 피시방 특유의 생리는 나와 잘 맞았다. -<너클>-12쪽

유통기한에는 과거가 없으므로.그것이 경수는 마음에 들었다. 과거는 힘이 없다. 현재가 인간이라면 과거는 귀신이다. -<유통기한>-44쪽

이 동굴은 입구와 출구가 같다. 원형 굴인 것이다. 한정된 공간 내에 직선 굴을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이므로 원형으로 설계했을 테지만, 관람객은 이에 더러 실망하기도 했다. 동굴을 통과하고 나면 들어왔던 곳과는 다른, 새로운 어딘가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것일까. -<서울 동굴 가이드>-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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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나타 - Tokyo Sonat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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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소나타>는 일본 사회가 오늘날 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직설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미국과 일본과의 군사 관계, 이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관점, 명예퇴직 당하는 가장, 외국의 값싼 인력, 산만한 교실과 허물어진 교사와 학생의 관계. 그리고 무너진 가족. 

   류헤이가 가장의 권위로 내세우는 이 집안은 정적이 짓누르고 있다. 가장인 류헤이는 실직 당하고도 계속해서 출근하는 척하고 있고, 부인 메구미는 외로움과 권태를 앓고 있다. 큰아들은 미래가 안 보이는 일본에서 벗어나 미군 부대에 자원입대하려고 하고, 막내 겐지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를 배우려고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은 이미 균열이 생기고 헐겁기만한 모습이다.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아내를 피해 도망가는 류헤이처럼, 또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메구미처럼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부유하는 이들. 단 하룻밤이지만 땅끝까지, 더이상 뛸 수 없을만큼 달아나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건 헐겁지만 동시에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안의 정적이 아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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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 Breathles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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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파리>는 상당히 걸죽한 영화다. 아니, 끈적끈적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송곳같이 내뱉어지는 욕설들은 주먹 못지 않게 상당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이 상대방을 거침없이 욕설과 주먹으로 찌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지켜보는 이는 공포영화를 볼 때보다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툭툭 남에게 던지는 상처들이 언젠가는 더 크게 되돌아올 것만 같아서다. 툭툭 던져지는 분노와 폭력의 무게가 묵직하게 뒤통수를 자극한다. 

  답답하다. 주인공의 말과 행동은 모두 소통을 할 수 없는 자의 몸부림이다. 그는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고, 남들과 소통할 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버지를 원망하고, 때리며, 아버지를 용서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남이라고 해도 좋을 이복누이에게 자꾸만 돈봉투를 건네고,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같이 산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방법을 그는 모른다. 그는 한번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끈끈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뀌고, 바로잡을 수 없어 그는 답답해 하고있다. 관객들은 비록 그가 거칠고남의 등을 쳐먹고 살고 있지만, 속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심 짐작한다. 그만큼 그는 거칠고 동시에 서툴다. 

  이 영화에 '연희'라는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참으로 삭막했을 영화다. 그 자신도 역시 가족에게 폭력으로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장을 봐오고, 밥상을 차릴만큼 연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그런 연희가 있었기에 상훈은 비로소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아간다. 상훈의 누나가 상훈에게는 챙기고 보살펴야할 누나였다. 여기서 상훈은 가장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연희 앞에서 상훈은 표현못하는 아이같다. 어린 시절 여읜 어머니 같은 존재를 연희가 일정부분 맡고 있는 것이다. 연희도, 상훈도 자신의 가족을 외면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또한 연희도 상훈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폭력도, 가족이라는 굴레도 너무나 끈쩍끈적하다. 그래서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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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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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히 유명한 전아리의 단편 수상작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작가를 투수로 빗댄다면 10개의 홀드 기록이 담긴 소설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더 긴 호흡으로 투구한 선발 등판의 기록은 찾아보지 못했지만, 홀드 기록만으로는 상당히 좋은 투수다. 별다른 기복없이 일정하게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 타자들을 잘 상대할 줄 알고, 묵직한 직구를 비롯한 던지는 공에는 무게감이 있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성숙성을 내보인다는 게 이 소설집의 특징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어머니가 무당인 전통찻집 운영자(강신무), 도서방문판매자면서 보험외판원인 싱글맘(메리크리스마스), 트랜스젠더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학부생(내 이름은 말야), 업소에서 공연하는 난쟁이(외발자전거), 박제사(박제), 자해공갈범인 아버지를 둔, 몸을 팔다 미혼모가 되버린 젊은 여성(작고 하얀 맨발), 번뇌하는 예비 승려(깊고 달콤한 졸음을), 노름쟁이 어머니를 둔 돈가스 판매원(파꽃), 사체업자 조직원(범람주의보), 정육점을 운영하는 여인과 딸(팔월)이 소설들 각각의 주인공이다. 결코 즐겁지도 장난스럽지도 않다. 대개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담아내기 마련인데, 10편의 소설 중 자신의 이야기로 추측될만한 것이 없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경험으로는 쉽게 잡아낼 수 없는 인물들이다. 작가가 지닌 제법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가 우선 눈에 띈다. 그리고 보따리에서 꺼내든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의 녹록치 않은 솜씨가 도드라진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까 작업하던 파라니아의 껍질과 발사를 끌어당겼다. 발사 위에 조심스럽게 파라니아 가죽을 씌우고 접착제로 배 부분을 마무리한다. 맞물리는 부분이 뜨지 않도록 가장 섬세하게 힘이 들어가는 중지로 세심하게 눌러주어야 한다.(박제, p.122) 

 
   

 

  다만, 작가 스스로에게 생소한 세계를 설정한 것에 대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인지, 작가는 묘사에 직유를 많이 쓰고 있다. 마지막 작품 <팔월>에서는

   
 

뒷골목의 어둠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진흙층처럼 고요하다.(팔월,p.237)

 
   

을 시작으로  

   
  아이는 장군이 벗어둔 갑옷과 투구를 치우는 졸병처럼 앞치마와 장갑을 개수대로 옮긴다. (팔월, p.238)  
   
   
  얇게 썰려 나오는 고깃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갗 위로 면도날처럼 얄팍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한기가 느껴진다. (팔월, p.239)  
   

 와 같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처럼'과 '~듯한'을 읽어낼 수 있다. 작가가 공들인 이러한 이미지들이 소설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거기로 나오자 끈끈이주걱의 턱에서 떨어지는 진액처럼 무거운 땀줄기가 여자의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골로 이어진다. (팔월, p.250)
성기의 연한 살점을 끈끈이주걱에게 물린 듯한 질긴 통증과 함께 가위에 눌렸다.(팔월, p.251) 
 
   

소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조금 더 살펴봐도 좋을 듯 싶다. 이것이 하나의 문체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그럴법한 인물들이지만, 동시에 의외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사실적인 소설이지만, 참신함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더불어 어느 소설 하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바꾸지도 못하고 끈끈하게 엉겨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여울 선생님의 표현대로 '정직한 직구'를 던지고 있지만, 직구만으로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 직구가 반복되다보면 간파당하기 마련이다. 이 정형성을 어떻게 깨나갈지 <시계탑>이나 <직녀의 일기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변화구를 구사할지도 모를 그녀의 선발 등판 기록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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