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소나타 - Tokyo Son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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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소나타>는 일본 사회가 오늘날 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직설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미국과 일본과의 군사 관계, 이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관점, 명예퇴직 당하는 가장, 외국의 값싼 인력, 산만한 교실과 허물어진 교사와 학생의 관계. 그리고 무너진 가족. 

   류헤이가 가장의 권위로 내세우는 이 집안은 정적이 짓누르고 있다. 가장인 류헤이는 실직 당하고도 계속해서 출근하는 척하고 있고, 부인 메구미는 외로움과 권태를 앓고 있다. 큰아들은 미래가 안 보이는 일본에서 벗어나 미군 부대에 자원입대하려고 하고, 막내 겐지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를 배우려고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은 이미 균열이 생기고 헐겁기만한 모습이다.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아내를 피해 도망가는 류헤이처럼, 또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메구미처럼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부유하는 이들. 단 하룻밤이지만 땅끝까지, 더이상 뛸 수 없을만큼 달아나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건 헐겁지만 동시에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안의 정적이 아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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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 Breathles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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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파리>는 상당히 걸죽한 영화다. 아니, 끈적끈적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송곳같이 내뱉어지는 욕설들은 주먹 못지 않게 상당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이 상대방을 거침없이 욕설과 주먹으로 찌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지켜보는 이는 공포영화를 볼 때보다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툭툭 남에게 던지는 상처들이 언젠가는 더 크게 되돌아올 것만 같아서다. 툭툭 던져지는 분노와 폭력의 무게가 묵직하게 뒤통수를 자극한다. 

  답답하다. 주인공의 말과 행동은 모두 소통을 할 수 없는 자의 몸부림이다. 그는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고, 남들과 소통할 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버지를 원망하고, 때리며, 아버지를 용서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남이라고 해도 좋을 이복누이에게 자꾸만 돈봉투를 건네고,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같이 산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방법을 그는 모른다. 그는 한번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끈끈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뀌고, 바로잡을 수 없어 그는 답답해 하고있다. 관객들은 비록 그가 거칠고남의 등을 쳐먹고 살고 있지만, 속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심 짐작한다. 그만큼 그는 거칠고 동시에 서툴다. 

  이 영화에 '연희'라는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참으로 삭막했을 영화다. 그 자신도 역시 가족에게 폭력으로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장을 봐오고, 밥상을 차릴만큼 연희는 당차고 씩씩하다. 그런 연희가 있었기에 상훈은 비로소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아간다. 상훈의 누나가 상훈에게는 챙기고 보살펴야할 누나였다. 여기서 상훈은 가장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연희 앞에서 상훈은 표현못하는 아이같다. 어린 시절 여읜 어머니 같은 존재를 연희가 일정부분 맡고 있는 것이다. 연희도, 상훈도 자신의 가족을 외면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또한 연희도 상훈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폭력도, 가족이라는 굴레도 너무나 끈쩍끈적하다. 그래서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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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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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히 유명한 전아리의 단편 수상작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작가를 투수로 빗댄다면 10개의 홀드 기록이 담긴 소설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더 긴 호흡으로 투구한 선발 등판의 기록은 찾아보지 못했지만, 홀드 기록만으로는 상당히 좋은 투수다. 별다른 기복없이 일정하게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 타자들을 잘 상대할 줄 알고, 묵직한 직구를 비롯한 던지는 공에는 무게감이 있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성숙성을 내보인다는 게 이 소설집의 특징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어머니가 무당인 전통찻집 운영자(강신무), 도서방문판매자면서 보험외판원인 싱글맘(메리크리스마스), 트랜스젠더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학부생(내 이름은 말야), 업소에서 공연하는 난쟁이(외발자전거), 박제사(박제), 자해공갈범인 아버지를 둔, 몸을 팔다 미혼모가 되버린 젊은 여성(작고 하얀 맨발), 번뇌하는 예비 승려(깊고 달콤한 졸음을), 노름쟁이 어머니를 둔 돈가스 판매원(파꽃), 사체업자 조직원(범람주의보), 정육점을 운영하는 여인과 딸(팔월)이 소설들 각각의 주인공이다. 결코 즐겁지도 장난스럽지도 않다. 대개 처음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담아내기 마련인데, 10편의 소설 중 자신의 이야기로 추측될만한 것이 없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경험으로는 쉽게 잡아낼 수 없는 인물들이다. 작가가 지닌 제법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가 우선 눈에 띈다. 그리고 보따리에서 꺼내든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의 녹록치 않은 솜씨가 도드라진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까 작업하던 파라니아의 껍질과 발사를 끌어당겼다. 발사 위에 조심스럽게 파라니아 가죽을 씌우고 접착제로 배 부분을 마무리한다. 맞물리는 부분이 뜨지 않도록 가장 섬세하게 힘이 들어가는 중지로 세심하게 눌러주어야 한다.(박제, p.122) 

 
   

 

  다만, 작가 스스로에게 생소한 세계를 설정한 것에 대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인지, 작가는 묘사에 직유를 많이 쓰고 있다. 마지막 작품 <팔월>에서는

   
 

뒷골목의 어둠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진흙층처럼 고요하다.(팔월,p.237)

 
   

을 시작으로  

   
  아이는 장군이 벗어둔 갑옷과 투구를 치우는 졸병처럼 앞치마와 장갑을 개수대로 옮긴다. (팔월, p.238)  
   
   
  얇게 썰려 나오는 고깃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갗 위로 면도날처럼 얄팍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한기가 느껴진다. (팔월, p.239)  
   

 와 같이 한 페이지에 하나씩 '~처럼'과 '~듯한'을 읽어낼 수 있다. 작가가 공들인 이러한 이미지들이 소설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거기로 나오자 끈끈이주걱의 턱에서 떨어지는 진액처럼 무거운 땀줄기가 여자의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골로 이어진다. (팔월, p.250)
성기의 연한 살점을 끈끈이주걱에게 물린 듯한 질긴 통증과 함께 가위에 눌렸다.(팔월, p.251) 
 
   

소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조금 더 살펴봐도 좋을 듯 싶다. 이것이 하나의 문체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그럴법한 인물들이지만, 동시에 의외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사실적인 소설이지만, 참신함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더불어 어느 소설 하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바꾸지도 못하고 끈끈하게 엉겨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여울 선생님의 표현대로 '정직한 직구'를 던지고 있지만, 직구만으로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 직구가 반복되다보면 간파당하기 마련이다. 이 정형성을 어떻게 깨나갈지 <시계탑>이나 <직녀의 일기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변화구를 구사할지도 모를 그녀의 선발 등판 기록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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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공무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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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7급 공무원>은 기분전환으로 무난히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국정원 직원인 두 남녀가 서로간에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기본적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실제로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신분을 밝히지 못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억지 웃음을 유발해내지 않고 상황 설정에 의한 자잘한 웃음들이 고르게 포진되어 있는 점이 상당히 장점이다. 큰 웃음은 업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자잘한 웃음들은 쉴새없이 이어진다. 재준을 연기한 강지환 연기 역시 오버연기를 상당히 자제함으로써 억지 코미디라는 인상을 지우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큰 무리없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다만, 영화과 남녀주인공의 관계, 그리고 하나의 사건에만 치중하다보니 단선적으로 이야기가 구성된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그로 인해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상투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은 채. 코미디 영화로서 군더더기 없이 완결된 구조를 가진 것은 사실이나 영화로서의 무게감이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신분을 밝힐 수 없는 국정원 직원의 고충을 좀 더 담아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국내팀과 해외팀으로 나누어 살피기는 했으나, 하나의 사건 만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다보니 국정원 자체가 평면적인 소재에만 그친 점도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김하늘과 강지환의 관계가 좀 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가 더 드러나야할 듯 싶다. 과거 회상 장면이 단순하게 그려져서 수지가 재준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의 폭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어떻게보면 수지는 단순 과격하게만 그려졌달까. 여러가지 소품들과 수지의 행동들로 빈틈을 메워보려고 했지만 그조차 정교하지는 못했다.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와 달리 액션 자체도 많은 공을 들였으나 어설프다. 많은 품을 들여 액션을 하고는 있는데, 세련되고 멋있다는 느낌이 부족하다. 

   그래도 코미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본분을 지키는 영화다. 그것도 꽤나 잘 지킨다. 롯데엔터테이먼트는 지난해 우연찮게 성공을 거둔 <과속스캔들> 이후로 또 한 번 잘 만든 코미디 영화를 선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개봉 전까지는 <7급공무원>이 흥행에 성공할 듯 싶다. 한가지 염려스러운 건 '롯데표 코미디 영화'가 정형화될 가능성이다. 연달은 성공으로 또다시 롯데에서 비슷한 류의 무난한 코미디 영화가 나온다면 그것은 고착일 것이다. 확실히 <7급 공무원>은 <과속스캔들>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갔다. 요령이 생기면 감동은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 땐 어떤 소재가 나와도 신선함은 없을 것 같다. 부디 기우였으면 좋겠다. 

 

 

여담 : 김하늘이 왼손잡이인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묘하게 김하늘이 왼손잡이여서 이 영화 마지막에 재준과 수지가 함께 하는 액션 장면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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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Vicky Cristina Barcelon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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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치 않은 일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다가 문득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영화 제목만 놓고 볼 때 남편과 아내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두 영화 모두 비슷한 설정이기는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두 영화에 모두 바르셀로나가 나온다.<내 남자...>에서는 니키와 크리스티나가 떠나온 여행의 장소로, <아내가...>에서는 잠깐이지만 인아와 덕훈과 재경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해피엔딩의 장소로 바르셀로나가 등장한다. <내 남자...>의 바르셀로나는 뉴욕에서 날아온 비키 약혼자의 고지식한 옷차림을 충분히 촌스럽다고 느끼게 해줄만큼 자유분방한 활력이 넘치는 도시이다. 올곧은 건물을 거부하고 곡선으로 쌓아올린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이런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를 더욱 두드러지게 해준고, 스페인의 정열은 캔버스에서 나타난다. <아내가...>에서는 바르셀로나는 바르샤의 성지로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수용될 수 없던 세 사람을 품은 도시이다. 여기서도 스페인의 정열은 축구장에 모아져 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재미있다. 졸지에 바르셀로나는 느슨한 사랑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영화 속 인물들이 실존 인물들이라면 바르셀로나 어느 거리에서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사이의 후안과 덕훈과 재경 사이의 인아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두 영화 속에 나오는 바르셀로나가 차이가 있다면, <아내가...>에서는 바르셀로나가 그들의 종착지였다면, <내 남자...>에서는 바르셀로나가 결국은 떠나야할 여행지라는 것이다. <내 남자...> 속 각각의 인물들은 처음 맛보는 색다름을 느껴보지만, 결국은 불안함을 느끼고, 또 다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내가...>의 세 사람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영화의 엔딩처럼 서로 끝까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내가...>가 일부일처제에 대한 통념은 깨뜨릴 수는 있었어도 사랑에 대한 낭만성까지는 버리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내 남자...>에서는 그 낭만성까지도 깨버리며 자신 안의 욕망에 충실히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인물들 각각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이라는 덧칠을 벗겨낸 사랑의 단물빠진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결국 인간 안의 깊은 욕망은 아무리 충족되도 또 다른 결핍으로 대체되는 듯 하다. 미완만이 로맨스로 남는 것이 아니라, 미완이기 때문에 로맨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지. 충족은 곧 재앙인 것이다. 맙소사. 우디 앨런의 솔직함이 맘에 든다. 위트있게 해설중계하듯 미묘함을 분명함으로 바꿔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내레이션은 일품이다. 덕분에 심각하지 않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듯 내내 낄낄 대면서 볼 수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후안, 그리고 비키. 네 사람 중에서 비키만 포스터에서도 영화제목에서도 사라져야 했다. 도대체 비키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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