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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Vicky Cristina Barcelon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흔치 않은 일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다가 문득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영화 제목만 놓고 볼 때 남편과 아내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두 영화 모두 비슷한 설정이기는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두 영화에 모두 바르셀로나가 나온다.<내 남자...>에서는 니키와 크리스티나가 떠나온 여행의 장소로, <아내가...>에서는 잠깐이지만 인아와 덕훈과 재경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해피엔딩의 장소로 바르셀로나가 등장한다. <내 남자...>의 바르셀로나는 뉴욕에서 날아온 비키 약혼자의 고지식한 옷차림을 충분히 촌스럽다고 느끼게 해줄만큼 자유분방한 활력이 넘치는 도시이다. 올곧은 건물을 거부하고 곡선으로 쌓아올린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이런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를 더욱 두드러지게 해준고, 스페인의 정열은 캔버스에서 나타난다. <아내가...>에서는 바르셀로나는 바르샤의 성지로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수용될 수 없던 세 사람을 품은 도시이다. 여기서도 스페인의 정열은 축구장에 모아져 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재미있다. 졸지에 바르셀로나는 느슨한 사랑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영화 속 인물들이 실존 인물들이라면 바르셀로나 어느 거리에서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사이의 후안과 덕훈과 재경 사이의 인아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두 영화 속에 나오는 바르셀로나가 차이가 있다면, <아내가...>에서는 바르셀로나가 그들의 종착지였다면, <내 남자...>에서는 바르셀로나가 결국은 떠나야할 여행지라는 것이다. <내 남자...> 속 각각의 인물들은 처음 맛보는 색다름을 느껴보지만, 결국은 불안함을 느끼고, 또 다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내가...>의 세 사람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영화의 엔딩처럼 서로 끝까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내가...>가 일부일처제에 대한 통념은 깨뜨릴 수는 있었어도 사랑에 대한 낭만성까지는 버리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내 남자...>에서는 그 낭만성까지도 깨버리며 자신 안의 욕망에 충실히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인물들 각각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이라는 덧칠을 벗겨낸 사랑의 단물빠진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결국 인간 안의 깊은 욕망은 아무리 충족되도 또 다른 결핍으로 대체되는 듯 하다. 미완만이 로맨스로 남는 것이 아니라, 미완이기 때문에 로맨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지. 충족은 곧 재앙인 것이다. 맙소사. 우디 앨런의 솔직함이 맘에 든다. 위트있게 해설중계하듯 미묘함을 분명함으로 바꿔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내레이션은 일품이다. 덕분에 심각하지 않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듯 내내 낄낄 대면서 볼 수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후안, 그리고 비키. 네 사람 중에서 비키만 포스터에서도 영화제목에서도 사라져야 했다. 도대체 비키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