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문득 집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나뭇잎 몇 개가 흘러들어왔을 뿐인데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심지어는 공포감마저 감돈다. 앞으로 전개될 이 집안의 파란을 예고한 장면일까?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일본의 남성들에게 이젠 제발 개념 좀 갖추고 살아라 라고 말하는 이야기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을 통해 일본인이 배운 것이 있다면 '일본은 없다'가 아니라 '종신고용은 없다'였다. 일본인들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최대 공포는 실직일 것이다. 실직이 무서운 건 당사자만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영화속 가장 류헤이는 자신의 실직을 가족에게 숨기고 가장으로서의 '가오'를 어떻게해서든지 지키려고 애쓴다. 이런 남자. 한국에도 많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아저씨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실직은 이들이 결코 못났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경쟁에서 진거라구? 뭐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지만 이 지경까지 실직과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거나  취업이 안되는 것은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거나 또는 잘못되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봐야한다. 어쨌든, 우리는 참 피곤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다.  

어쨌든 <도쿄 소나타>를 보면서 계속 오버랩되었던 소설이 하나 있다.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이란 작품이다. 지속적으로 일본 사회의 여러가지 현상들에 대한 징후를 통해 일본을 읽어내려는 작가의 통찰력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중년 남성이자 가장(이라고 생각하는) 히데요시 역시도 구조조정의 피해자.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히데요시는 자신의 좋아하는 커피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평생 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살아온 남자가 이제부턴 커피콩도 직접 볶고 사이폰 커피를 판매하는 그런 로스터리 샵에 도전하는 것이다. 앞서의 영화 <도쿄 소나타>에선 피아노를 치는 아들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이 뭔가 치유받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 소설에선 가족 구성들이 각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끝맺는다.

이 소설이 나온 지 벌써 9년. 재밌는 건 이웃나라 한국에서 실제로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들이 커피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업은 하고 싶은데 식당이나 주점은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그렇다고 차별점이 없는 커피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는 건 더 싫다. 이 기회에 커피를 배워 노후를 커피를 볶으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카페를 만들고 싶다. 대충 이런 기분으로 커피를 배우려고 온다. 한마디로 카페는 새로운 도전이자 로망. 이렇게 뭔가 새로운 일을 배워 인생 제2막을 열고 싶을 때 커피란 아이템은 참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창업 자금이 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 돈이 없거나 자금 조달 능력이 없는 대다수 서민들에겐 이 역시 안드로메다.(그래서 난 언젠가 '안드로메다'란 이름의 카페를 열 것이다. ㅋㅋ)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또하나의 책이 있다. <땡큐! 스타벅스>. 제목을 보면 자칫 노골적인 스타벅스 광고성 책자 같지만 내용은 의외로 훌륭하다. 이 책은 실제로 다국적 광고대행사의 잘나가는 임원이 어느날 갑작스레 구조조정을 당하고 사회적, 가정적으로 의기소침해 있을 때 우연한 기회로 스타벅스 매장의 스탭으로 일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무례하고 개념없이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각성하게 되고 커피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되는 이야기다.(탐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다고 함)

물론 이 책의 주인공처럼 스타벅스의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그 세계에서만 통하던 가치에 더이상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커피견문록>의 스튜어트가 말했듯이 태초의 선악과는 커피 열매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다시 그 커피 열매를 따먹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새롭게 각성을 하자. 이렇게 우리는 다시 커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난 커피를 사랑한다. 아멘.(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우째 이상하게 결말이 났다. 쿠쿠..이래서 한번에 책과 영화를 섞어 보면 안된다. 특히 나이들어서는 말이다. 캬캬)

사족 : <땡큐! 스타벅스>이 책은 현재 커피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거나 현재 혹은 이제 막 또는 향후에 커피집을 오픈하거나 일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 어떤 서비스 매뉴얼보다도 가슴에 와닿는 글이 많은 책으로 필독을 권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커피회사의 임원들도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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