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더 1 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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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고급 원두 커피 시장이 확대됨에따라 자연스럽게 커피 관련 출판 시장도 커지고 있다. 커피의 역사를 다룬 서적부터 커피를 주제로 한 여행기나 커피 추출 가이드북까지 다양한 커피 관련 책들이 최근 2-3년 사이에 쏟아졌다. 그러나 대부분 비슷한 형식을 취하거나 대동소이한 느낌이라 개인적으론 크게 눈길이 가지 않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 겉표지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고 있는 <커피 한 잔 더>란 만화를 우연히 발견했다. 몇 장을 넘겨봤다. 기존 일본 만화체에서 벗어나 판화 느낌의 선 굵고 꽉 찬 페이지는 판화가 주는 손맛과 핸드드립 커피란 소재가 어우러져 진짜 커피향이 스멀스멀 느껴질 정도다.

작가 야마카와 나오토는 1962년생이라 한다. 한국 나이로 치면 마흔여덟살이다. 지금 이 나이대 한국의 동년배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엔 암울하게, 대학땐 가열차게, 사회에선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크게 행복한 것도 아니다. 부모를 위해,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오히려 회사에서 내쳐지고 가정에서 버림받는 암울한 현장의 중심에 서있는 세대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선 아마 일본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세대들의 특징은 보통 십대 때 팝음악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인데 아마도 이 만화를 그린 작가도 그랬던 거 같다. 팝음악과 추리소설이 작가에겐 영혼의 도피처요 커피는 영혼을 위로하는 음료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묘한 그리움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지속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책장을 다 넘기고 보면 뭔가 허탈하기도 하고 극중 에피소드에 나오는 한 인물로 동화되어 어느새 먼지 묻은 지난 앨범을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커피 한 잔 더>란 제목은 작가가 밝혔듯이 밥딜런이 1976년 발매한(책에는 67년으로 되있지만 76년이 맞다.)앨범 <desire>에 수록된 <one more cup of coffee>에서 따온 것이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노래다. 멜로디가 아주 끈적이면서 애절한 곡이다. 만화 내용은 여러가지 단편이 수록되어 구성된 것인데 그렇다고 '커피' 그 자체가 주제나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진 않는다. 오히려 소품으로 때로는 배경으로만 깔리면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생길 수 있는 충돌과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작품들은 질리지가 않고 지속적으로 심지어 커피처럼 중독될 정도로 다음 만화를 기다리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바빌론 재방문>편과 <블루 마운틴의 꿈>편이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의 평범한 일상을 함께 경험하는 에피소드인데 아버지 덕분에 커피집에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아마 작가 자신의 경험담일까? 이런식으로 정서적 울림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블루 마운틴의 꿈>과 같은 끔찍한 상상력이 동원된 이야기도 있다. 마치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연상시키는 설정인데 블루마운틴 커피 원두 제조의 까탈스러운 공정을 비꼬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런 나치 시대가 다시 온다는 건 상상하기 싫다.

이밖에도 작가 자신의 커피에 대한 철학이나 애정을 작품 구석 구석에 꼭꼭 숨겨둔 듯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작가는 이 만화집을 통해 커피에 대한 연정을 바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나에겐 과연 커피가 무엇일까? 오늘 한번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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