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를 이제야 읽게 됐다.
그 이유는 분명히 알지 못하겠지만. 내게 이상한 버릇이 한가지 있다.
내가 이미 읽었거나, 혹은 현재 읽고 있거나 등의 이미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많이 유명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 본 뒤 그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작품은 이상스럽게도 잘 선택하지 않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는 거의 대부분 현재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등을 말한다. 세계명작이나 고전은 당연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좀 웃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고전만큼 유명하고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 분명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물론 알고는 싶지만 좀체로 그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도 바로 그런 작품 중의 하나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언급하기에 오히려 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그렇게 대단하기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칭찬에 칭찬.. 물론 이건 내가 여기 저기에서 본 경우이다. 거의 비판보다는 칭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이번에 확실히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 어느 신문기사에서였던 것 같은데. 이미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기사에서 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물론 내가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내가 읽었던, 그리고 현재 또 앞으로 읽게될 작품에 이미 그 영향은 투영됐을 수 있는데. 그저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연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이미 들었듯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더니, 아닌게 아니라 원제가 이미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이란 노래에서 나왔고, (난, 전혀 그 노래를 모른다. 확실히 이 작품을 보면서 여기서 인용된 거의 대부분의 노래를 모르다 보니.. 물론 제목은 모르더라도 들으면 알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을땐 그냥 책만 봤기에 .. 확실히 감이 떨어진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디선가 이 작품에 인용된 노래만 모은 앨범이 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는데.. 찾을 수 있을까?? 찾고 싶다.. 그리고 듣고 싶다..) 또한 다른 인용된 많은 다른 노래들도 잘 모르다 보니, 보다 깊은 이해는 좀 어렵지 않나 싶기도 했다. 결국 알고 싶은 맘이 왕창왕창 생겼다.
배경이 1969년인데. 어째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작가의 역량이라는 부분을 언급할때 "현재성"만큼 그 의미를 배가시키는 것도 없지 않나 싶다.
많은 고전문학에서 지금 우리가 감흥을 느낄 수 있음이 바로 그 과거의 모습이 현재 "내"모습을 그리고 있음에 있지 않을까??
1969년 동경의 와타나베에서 2005년 서울의 내가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채 20이 되지 않은 와타나베와 이제 막 20이 된 나오꼬와 그리고 미도리, 레이꼬 여사..
와타나베는 자신의 치열하지 않은 삶을 그냥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 같지만. 지그의 내겐 아니 아직 채 20이 되지 않았던 과거의 나 그리고 이제는 이를 훌쩍 넘어버린 현재의 나는 그만큼의 치열함이라도 살고 싶다.
비록 과거의 내가 그들만큼 아니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전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생각하고 고민하고 겪어나가야 하는데. 지금 현재의 나는 여전히 그대로 아무런 것도 아닌 단순한 무위의 삶을 살고 있다. 무위도식(방금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찾았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음-- 현재의 바로 나..)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없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게 살고 있을 수 있을까?? 이젠 이런 놀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만 같다.
이렇게 살면 당연히 안되는건데..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이 싫은데도 아무런 생각없이 살고 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 이후 와타나베는 자신을 열지 않는다. 다가가지도 않고, 다가오게도 하지 않는다. 이미 그에게 인간이란 친구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스스로 정의내리고 그대로 행동한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굳이 감춘다거나, 속으로 자기 자신 속으로만 파고드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친한 친구의 상실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의 문을 닫기 시작한 것 같다.
열정과 활동력만이 과연 삶의 진정한 가치이고 그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최상의 것일까?? 마치 모든 인간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행동규범일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즐길 권리가 있듯이 즐기지 않을 권리 또한 있고, 활발한 활동만이 즐거움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와타나베가 냉소적이라던가 굳이 더 회의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삶을 더 확실히 가감없이 보고자 하는것이 아닐까
현재의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그 범위에서 더도 덜도 나가지 않으면서 넘치는 열정이나 넘치는 욕망이 아닌 어느 정도의 방종과 일탈 그리고 또한 성실함을 그냥 자신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무게라면 그걸 굳이 피하려고도 그렇다고 떨쳐내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오꼬는?
그녀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결국엔 견디지 못한 것일까?
자살이란 인생의 패배일까??
자신의 마지막 생을 조절한 그들이 패배자일까? 혹 승자일까??
이렇게 단순한 패배와 승리라는 양극단으로 나눌 수 없음은 당연하겠다. 어느 누가 나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의 선택을 단순히 평가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삶을 다른 사람이 단순히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고들 말한다. 나 역시도 바로 그런 많은 대다수 중 하나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른 내 맘의 한편에서 "그렇게 말해선 안되는거야"라는 또 다른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럼에도 전자의 목소리가 더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비록 어렸지만, 이미 자신의 또 다른 한부분이었던 연인을 잃은 그녀에게 자신의 삶을 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미 그녀에게 단순한 연인관계를 넘어선 그녀의 일부를 그렇게 급작스럽게 더군다나 사고등이 아닌 자살이란 형태의 상실을 이겨낸다는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외부 요인 없이 무위도식하는 나 자신도 하루에도 수십번을 이 말도 안되는 내부에서 이래저래 싸우고 투쟁하고 이렇게도 했다 저래도 했다 말도 안되게 혼란스러운데. 혼자서도 그렇게 알 수 없고, 판단할 수 없고, 결론 내리지 못해서 혼란스러운데. 비록 자신의 다른 일부분이라도 이미 내가 아닌 기즈키의 자살로 인한 혼돈과 혼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살"은 그 자체의 어두움으로 이미 동쪽 나라 서쪽나라 오랜 옛 나라,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단순히 정의할 수도 그 가치를 평가하기에도 두려운 그 힘을 갈수록 오히려 더 강화시키고 있다.
오히려 나오꼬는 그녀에게 일생에 단 한 번뿐이었던 "환희의 절정"에서 그 혼란의 정점을 맞게 된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찾으려 했고 온전히 밝혔는지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했다.
스스로의 사랑을 찾고 그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자신의 사랑을 바라는 미도리는 가장 밝은 인물이면서도 측은함을 역시 감출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한 것 같다.
어쩌면 자신만을 사랑해달라고, 나만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해달라고 조르는 그녀의 외침이 더 가여워보이는 것은 다행히 그러한 가엽음에만 그치지 않고, 그 밝음으로 전이됨이 좋아보이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와타나베에게 말하는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이 말은 그래도 상실의 시대에서 다시금 잡게 되는 희망의 끈이 아닐까??
많은 상실끝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희망의 끈.
그 끈을 우리는 그래도 잡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겠는가.
'그래 그렇고 그런 인생. 이렇게 끝인거야'라고 자조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끈"의 끄트머리라도 잡고 싶은게 우리 아닐까??
그 "끈"을 내게 내밀어 주길 바라지 않겠는가.
누구나 상처받기 쉬고, 넘어지기 쉽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그 상처를 치료하는게 바로 우리아닐까??
레이꼬 여사는 나오꼬의 자살에서 자신의 인생의 문을 다시 열기 시작한다.
두렵고 외롭고 힘들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잔잔하지 않은 일들을 아주 잔잔하게 느끼도록 만든 작품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생각할수록 큰 물결을 부담없이 받아들이도록 주욱~~ 밀어주는 느낌이랄까?!
그 큰 물결을 그렇게 잘 헤쳐나온 인물들에게는 비견할 수도 없는 생각없는 나 스스로에게 어찔해질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그 유명한 말인.. 삶은 그래도 지속되는 것을 ...
바로, 현재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