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제목.. 참 잘 지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 제목을 봤을땐. 음.. 애플파일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 담에 혹시 파이는 3.14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극한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데까지 끌고가서 시작된 이야기.
오히려 로빈슨 크루소를 부러워하게 만든 이야기
맨 앞의 작가노트에서 아직도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일까라는 생각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크게 광고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런 광고를 보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인지..
글쎄..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일까??
결국 내가 이 부분에 이렇게 계속 집착한다면. '파이'가 얘기했던 대로 '어떤 이야기가 더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 되겠지.
파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 이게 더 나을까? 저게 더 나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사실. 그렇다면 그 사실이 진실이 될까?
사실과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뭘까?
파이는 그들에게 자신의 사실을 진실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을 사실대로 말해주길 원한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읽지 않고, 처음부분은 계속 띄엄 띄엄 읽어서 아무래도 좀 감흥이 떨어진 것 같다.
특히 후반부를 몰아서 끝까지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현재와 과거가 계속 섞여있는 초반부에 어쩌면 많은 단서가 숨어있었는데도 그 부분을 대강 흘려보내고 보니. 만약 그러지 않았으면 좀 더 강한 느낌을 받았을 텐데 그런 인상을 놓쳐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파이 이야기는 아주 처음 들어본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예전에 고등학교에 다닐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단 상황은 좀 달랐지만. 이렇게 표류하는 구명보트와 뗏목에서가 아닌 무인도에서였지만.
그게 뭐 그리 큰 차이겠냐고??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굉장히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발로 딛고 다닐 수 있는 땅과 이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다는 것. 그 공포의 차이를 어떻게 감히 내가 말할 수 있을까??기껏 수영장에서 물장구 치는게 전부인데. 육지에서 한겨울 밤바다를 쳐다보면서도 공포를 느꼈는데. 말그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것도 이제 갓 16살 소년이. 맹수 중의 맹수라는 호랑이와 같이..
이 작품의 매력은 추호도 의심케 하지 않는 감정이입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몰입하거나 열중해서 특별히 감흥하면서 읽기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계속된 전개에서 나도 모르게 그저 파이의 이야기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비록 내가 완전히 파이가 될 수는 없었지만. 파이의 상황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끝까지 살기위해 노력하고, 투쟁하고.
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이상한 식인섬을 보면서도 당연히 내 지식범위를 벗어나는 생태계는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인들과 파이와의 대화에서 드디어 내가 그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와 이들의 대화에서 유사함을 발견하게 됐다.
물론 내가 예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중에 한 가지는 아마 내가 받았던 나름의 충격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알고보니 심리테스트의 한 종류였는데. 파이와 비슷하게 (단,, 바다표류는 아니다.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바다표류라고 생각한다. 이외 대부분의 이야기는 항해중 난파.. 그리고 그로 인한 무인도..최소한 발딛고 있을 수 있음은 허용해주었다. 하지만. 파이는 말그대로 발딛고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물을 좋아하거나, 바다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바다에서 자유롭게 다시 뭍으로 나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할 것이다. ) 무인도에 여러 동물과 같이 조난을 당했을 때.. 결국.. 한 마리씩 세상과 하직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떤 동물부터 이 세상과 작별케 할거냐??는 질문이었다.
그 동물들 중에 기억나는 동물이 대강.. 호랑이(아님 사자) ,아마 또 원숭이, 말??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앞의 호랑이(사자) 와 소는 정확하다.. 그리고 그 뒤는 좀... 기억이 가물가물...
내가 이렇게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두 마리.. 호랑이가 아마 자기 자신이고, 소는 부모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외 동물들이 아마 형제 자매.. 친구.. 등이였지 싶은데...
난,, 호랑이가 자기 자신일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전혀.. 오히려 '호랑이
=맹수'라는 공식에 완전 사로잡혀서 가장 먼저 내 주위에서 없애야 오히려 내가 더 안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 다소 당황스럽고, 또 충격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가장 먼저 버려버리는 상황이 돼 버렸으니.. 어이 없기도 하고,, 아무리 그냥 단순한 심리테스트라고 했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대강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맘에 들었다면 완전히 기억하고 있고, 또 내가 여러번 써보았으니 기억에 강하게 남겠지만. 지 찝집한 기분이 강했기에 이렇게 완전하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이 작품을 읽었는데... 내 둔감함에 발전이란 없는것 같다. 어떻게 그 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또 똑같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버리는 걸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난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파이가 동물원에서 자라났다란 장치가 있었고, 그가 인도인이라는 아주 작은 옷걸이가 있었지만.. 거기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버리기만 할까??
파이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그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파이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 이야기는 어떠세요? 이게 더 나을까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려고만 하는걸까?
내가 원하는 사실만이 진실일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진실규명이라는 문제에 또 그렇게 매달리는걸까?
결국엔 그들이 원하는 사실을 원하면서.
생존의 절대적 문제에서 그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비난할 수 있을까?
파이는 자신의 사실을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의 진실을 이겨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