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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만납니다. 영혼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글쓴이. 이번엔 영혼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 줄까요?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합니다. 노쇠, 질병,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남은 삶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며, 점점 나빠지는 세상에서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수면제 4통을 먹고 죽음을 기다리는 무료함.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로 시작하는 기사에 관한 편지를 쓰고 의식을 잃습니다.
깨어난 곳은 빌레트, 정신병자 수용소. 돌이킬 수 없는 심장 손상으로 남은 생은 닷새, 길어야 일주일이랍니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병원생활을 하며 그 전엔 꿈조차 꾸지 못했던 공간을 경험합니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 자신이 미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곳. 남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하던 재미있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곳(55쪽)'.
다시 죽음을 기다리는 그녀가 느껴야 하는 건 이제 무료함이 아닙니다.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남자를 그리며 우울증을 앓는 제드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써버린 시간을 후회하며 패닉신드롬을 앓는 마리아. 천국의 환영을 그리고 싶지만 꺾여버린 꿈을 버리지 못해 정신분열증을 앓는 에뒤아르. 하루하루가 지겹도록 똑같아 의미없는 삶이기에 죽음을 결심한 베로니카는 그들을 통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해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쳐버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죽지 못해 그냥 살거나,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견디어 낼 뿐일까요? 글쓴이는 정답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스쳐가듯, 아닌듯이, 남의 일인양 중간중간 넌지시 건넬 뿐입니다.
○ 이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10쪽)
○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수천 년 문명은 자살을 금기로, 혹은 모든 종교적 규범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인간은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인류는 자손을 번식시켜야만 한다. 사회는 인력을 필요로 한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사랑이 식어도 함께 지내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 국가는 병사와 정치인 그리고 예술가들을 필요로 한다.(17쪽)
○ 베로니카는 숙모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여자에게 연민을 느겼다. 모두가 무슨 짓을 해서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죽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각자가 자기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뿐이다.(25쪽)
○ 난 또다시 태양, 산들, 그리고 삶의 골치 아픈 문제들까지 사랑하기 시작했어.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그건 나 자신 이외의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했지. 난 아직도 류블랴나 광장을 보고 싶고, 증오와 사랑, 실망과 근심, 진부한 일상에 속하지만 삶에 독특한 맛을 부여하는 단순하고 덧없는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싶어. 만의 하나라도 언젠가 내가 이 곳을 나갈 수 있다면, 난 감히 미친 여자가 될거야. 모든 사람이 미쳤으니까. 가장 못한 것은 자신이 미쳤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들이 그들에게 명령하는 걸 마냥 반복하며 살아가니까.(121쪽)
○ 죽음이 다가오는 데도 넌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거야? 네가 폐를 끼친다든지 이웃에 방해가 된다든지 하는 생각 따윈 집어 치워! 만약 네 행동이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 되는 거야. 그들한테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건 그들 문제지.(125쪽)
○ 너에게 살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127쪽)
○ 그녀는 관료주의와 각종 소송에 지쳐 있었고, 이제 자신에게는 그들 자신의 잘못도 아닌 문제를 해결하느라 긴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을 도와줄 능력이 없다고 느꼈다. 반면, 적십자 일을 통해서라면 뭔가 당장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144쪽)
○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 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160쪽)
○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지만 정작 그걸 실현하는 사람은 단지 몇 사람에 불과해. 문제는 그럴 때, 꿈을 실현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끼는데 있어.""그 몇 사람이 옳더라도요?""옳은 자, 그건 가장 강한 자야. 이 경우엔 역설적이게도, 비겁한 자들이 더 용감하지.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기들 생각이 옳다고 주입하니까."(177쪽)
○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현자가 되기 위해 미치광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을거야.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거야! (189쪽)
○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 하지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 모든 세계들이 서로 어울려 태양계, 성좌, 은하계를 형성하는 걸 알수 있지.(201쪽)
○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샘처럼 되라." 난 항상 그가 틀렸다고,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휩쓸어 우리의 사람과 열의로 그들을 익사시킬 위험이 있으니 넘쳐흐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난 일생동안 연못처럼 행동하려고, 내 내부의 벽 너머로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죠.(242쪽)
저역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기에 길어져 버렸습니다. 글쓴이는 남과 다르므로, 남과 다름을 알기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달라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살고,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누군가는 사람이 살수 있게 하기 위해 살고, 또 누군가는 죽음이 다가옴을 알기에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 그녀의 결심은 올바른 것일까요? 그녀는 다시 살기로 결심할 수 있을까요? 엉뚱할지 모르지만, 글쓴이가 마지막으로 적어놓은 글로 삶과 죽음을 되새겨 봅니다.
"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