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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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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으로 아내가 묻습니다.   

" 당신 내 눈 좀 똑바로 봐봐요. 내 눈에 빛이 보여요? "

늦은 밤 책을 읽던 아내가 뜬금없습니다.  

" 으응? 갑자기 무슨 빛? "

" 아이참, 한 번 잘 보라니까요! "  

" ? "

" 당신, 나중에 이 책 좀 잘 읽어봐야 해요. 흥! "  

"..."

 어젯밤 아내의 느닷없는 야단에, 오늘밤 저는 몰래 졸은 맘으로 책을 읽습니다. 

<브리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2010년 새 책이에요. 여러분, 혹시 '소울메이트(Soul-Mate)'라고 들어보셨나요? 

때는 1983년 8월부터  1984년 3월까지, 장소는 아일랜드 더블린 근처, 주인공은 마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21살의 예쁜 브리다, 등장인물은 태양 전승 마스터(일명 마법사), 달 전승 마스터(일명 마녀) 위카, 물리학과 조교로 일하는 브리다의 연인 로렌스, 그리고 브리다의 엄마, 기타 잠시 잠깐 등장하는 등장인물 ①, ②, ③ 등등. 

제가 '소울메이트'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이 책의 줄거리가 소울메이트를 찾아가는 브리다의 이야기기 때문이에요. 

“ 우리는 연금술사들이 '아니마 문디', 즉 '세상의 영혼'이라 부르는 것의 일부를 이루고 있지. (...) 사실, 아니마 문디가 분화만 계속한다면 그 수는 늘어나겠지만, 또 그만큼 점점 약화되기도 해.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나뉘는 것처럼, 다시 또 서로 만나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재회를 ‘사랑’이라 부르지. 영혼이 분화할 때 언제나 남자와 여자로 나뉘기 때문이야. (...) 매번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는 신비로운 사명을 지니지. 적어도 나뉜 조각들 중 하나는 꼭 만나야 해.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위대한 사랑’은 그것들을 다시 하나로 결합하는 ‘사랑’에 기쁨을 느끼지.

: 브리다, 59쪽,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0.10.27. (1판2쇄)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에서는 항상 영혼과 사랑을 읽을 수 있었어요. <연금술사>에서는 꿈을 좇아 여행하는 주인공 ‘산티아고’의 영혼과 사막 아가씨의 사랑이 있었고, <오 자히르>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주인공의 타락한 영혼과 에스테르의 사랑이 있었잖아요. 또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마찬가지죠. 마침내 죽기로 결심한 방황하는 영혼, 베로니카와 순수한 청년 에뒤아르와의 사랑이 있었죠. 

이번 책 <브리다>에서는 사랑과 영혼의 본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서려는 파울로 코엘료의 노력을 느낄 수 있어요. 물론 작정하고 등장하는 태양 전승이니 달 전승이니 하는 마법 수련의 방식들, 엘레우시스(Eleusis) 비의(秘儀)를 떠올리게 만드는 마녀들의 안식일 집회 등은 어떤 분들에게 ‘이거 소설 맞아? 신비주의 아니면 마법 입문서 아냐?’ 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영혼에 깊이 접근해보려는 서양의 한 방법이라 편히 읽어 넘기신다면, 사랑과 영혼, 종교와 신비주의를 넘어 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말을 건네는 파울로 코엘료, 그만의 독특한 언어를 다시 만나실 수 있답니다. 

하여튼 아내의 야단과 코엘료의 속삭임에 단번에 책장 덮은 깊은 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워 꽉 안아주고 싶지만, 살며시 잠든 얼굴에 뽀뽀 한 번 해줍니다. 여러분, 주인공 브리다는 자신의 사랑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소울메이트를 과연 만날 수 있을까요? 행여 소울메이트를 만난다면 어떻게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아참! 눈빛! 아내는 아마 모를 거에요. 

지금 자기 왼쪽 어깨 위에 얼마나 크고 환한 별 하나가 빛나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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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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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즘 병원 유리문 너머로 그분들을 보면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아침마다 창밖으로 그분들을 눈여겨보고, 또 최근에 진료실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나보다 훨씬 많이 웃고 계시다는 것이다.

창을 통해 보면, 아홉 시경까지 남은 사람들은 대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늘 웃고 있다. 병원에 와서도 두세 분이 같이 오시면 예외 없이 대기실에서 서로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고, 진료실에서도 늘 웃으면서 들어온다.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표정이 심각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병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찬 가을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근사한 카페에서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표정들이 대개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골목에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돼지 막창을 굽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 

이것도 분명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엔트로피의 문제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법칙에 따르면, 폐쇄계에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면 결국 그만큼 쓰레기가 쌓이므로 외부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자체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언젠가는 쓰레기만 쌓여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은 어떨까. 소위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들의 포로가 되어 ‘고상한 척’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 에너지의 고갈로 뇌 속에 찌꺼기만 쌓여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솔직하게 노동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성적’이라는 이름의 ‘어색한 노동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으로써 뇌 속 기쁨의 센서가 낮게 세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행복의 총량은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일까.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82~283쪽, 박경철, 리더스북, 2007. 3.




 ♣ 나는 진우 씨를 보면서 인생을 배웠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당당하게 맞선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륜이 무너진 시대에 정말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당당하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을 향해 이렇게 소리친 것이다.

“그래 나는 문둥이 아들이다! 이 진짜 문둥이들아!”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54쪽, 박경철, 리더스 북, 2007. 3.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인간은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산다... 

♣ 인간은 사람답게 살아야 사는 것이다...  

♣ 인간은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사람다움... 살기 위함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한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글쓴이는 평범하고 순박한 시골사람들에게서 그 답을 찾았다. 자신의 생존을 주장하고, 자신을 위한 정의를 고민하며, 자신의 부를 통해 남의 가치를 가늠하는,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은 아니란다. 

비록 많이 배우지 못했고 설령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어가며, 자신의 좋은 일에 남을 떠올리고, 자신의 아픔을 통해 남의 고통도 헤아려 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란다.

시골의사 박경철. 그런 사람다운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는 그의 삶은 진정 아름다울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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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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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渴望’이었다.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나는 혼잣말로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 부른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情恨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라고 있다. 
: 은교, 작가의 말(406쪽), 박범신, 문학동네, 2010. 4.  

글쓴이는 '밤에만' 읽기를 바랐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어제 밤 끄트머리에서 ‘은교’와 헤어졌다. 그녀는 ‘열대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고 있는 상반신은 하얬다. 쇠별꽃처럼(22쪽)’.

갈망渴望... 욕망慾望... 실토實吐...

그렇다. 예순 다섯의 박범신. 그는 열일곱의 소녀, 은교를 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으로 이성보단 감성이 지배하는 밤을 택했던 것이다.

갈망渴望... 아니, 욕망慾望... 어쩌면, 욕정欲情...

그걸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이기에, 어떤 이는 이를 억누르고, 어떤 이는 이를 터뜨리며, 어떤 이는 이를 덧씌운다. 우리는 그 있고 없음이 아닌, 그 보여지는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성품, 사람됨을 짚어보곤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는 자신의 존재 속에 숨겨진 욕망을 찾겠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상이 처음부터 돌 속에 있었다고 했다. 단지 그는 깨뜨려 나갈 뿐이었다고.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욕망은 돌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돌을 깨뜨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박범신, 그는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라고 썼다. 나는 또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욕망은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기록해내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 속에 묻어나는 욕망의 파편들.. 그는 이제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문학상(1987), 원광문학상(1998), 김동리문학상(2001), 만해문학상(2003)에 빛나는 소설가 박범신. 그는 이제 솔직하게 적고 싶었는지 모른다. 고결한 시인과 멍청한 소설가, 가녀린 여고생은 그래서 필요했을는지 모른다. 겉으론 존재 속 숨겨진 욕망을 찾겠다 했으나, 어쩌면  자신의 지난 세월을 되짚어 억눌렀던 욕정을 숨김없이 소설 속에 낱낱이 그대로 기록해 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국 변명이 필요했다. 정신적 사랑만으로 만족하며 스스로를 죽이는 칠순의 시인과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다 스스로를 죽이는 사십에 가까운 소설가는 변명이 아니고 그 무엇이었던가? 
 
박범신. 그는 사실 솔직했다.
그러나 변명이 뒤따라야 하는 솔직함이었다...
그가 진정 욕정欲情을 실토實吐하고 싶어 포르노그래피를 택했어도... 

나는 당당히 '낮에' 눈물 흘렸을 것이다...


 


저보다 훨씬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계신 들꽃 님, 개츠비 님, 키스 님의 「은교」에 대한 서평을 권해드립니다.

가면을 벗는 방법을 보여준 소설, 은교 - 들꽃 님 블로그

익숙한 욕망에 면죄부를 주는 소설, 은교 - 개츠비 님 블로그

인간의 누추함을 솔직히 펼쳐놓은 소설, 은교 - 키스 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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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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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1964년생, 그전까지 시나리오 집필하다가 2003년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고래,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책표지와 책날개에서 읽을 수 있는 간략한 정보들이다. 그러니까 그는 만의 나이로 39세에 첫 단편소설을 쓰고 등단해서, 일 년 뒤 40세에 첫 장편이자 두 번째 소설로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쓰기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기에? 얼마나 깊은 글이기에? 기존 소설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 그 강렬한 흡인력은 무엇보다 능란하고 능청맞기 그지없는 스토리텔링의 힘, 그리고 가히 거창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서사구조를 빈틈없이 촘촘하고 정교하게 다듬어내는 구성력의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만약 기발한 발상과 능란한 화법에만 의지할 뿐 각각의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탄탄하게 엮어내는 구성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더라면, 아마 이 소설은 기이하고 기발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그저 한판 허황한 ‘이야기놀음’으로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 고래, 천명관, 423쪽, 심사평(임철우, 소설가), 문학동네, 2004. 12.

♣ 누구든 이 작가의 입심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성찬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 역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이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말이 아닌 글의 영역이다. 의도적으로 글을 배제하는 실험소설이라거나 혹 ‘글이여, 껍데기는 가라’ 식의 주장을 하기 위해 말을 전위로 내세운다면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면서 소설 장르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적, 예술적 긴장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 고래, 천명관, 427쪽, 심사평(은희경, 소설가), 문학동네, 2004. 12.

♣ 『고래』는 가히 소설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응모작에 따르면 소설이란 무엇보다도 내레이션이다.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라는 것이다. 천명관 씨는 이를 위해 이제는 하나의 관습화된 장치로 사라진 옛날이야기의 화자를 끌어왔다. 전지전능하고 고압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힘입어 소설은 엄격한 형식의 규제를 뚫고 민담과 전설, 기담들, 무협지와 장르 영화의 부스러기들, 동화와 환상적 요소 등이 뒤섞이는 환상의 도가니로 돌변한다.
: 고래, 천명관, 428쪽, 심사평(신수정,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2004. 12.

강렬한 흡인력, 스토리텔링의 힘, 작가의 입심, 이야기꾼의 입담... 도저히 주제를 생각해볼만한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쉼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들.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에선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미묘한 연관성을 내비치며 끊임없이 진행된다.

그런데 알맹이는 없다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고? 단지 어떻게 말하느냐라고? 그러니까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이 소설은 쓰여 졌을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 속 ‘구라장이’인 ‘약장수’를 통해 언뜻 자신의 음험한 속마음을 내비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한편, 약장수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카페를 자주 찾아가 그 지역의 예술가들과 직접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기실 언변이 뛰어나긴 했으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배타적이고 콧대 높은 예술가들과 어울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험악한 장바닥을 떠돌며 눈치껏 살아온 덕분에 약장수는 그들과 어울리는 요령을 한 가지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는 거였다. 그것은 무지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식과 예민한 예술적 안목 그리고 높은 인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연출과 적당히 예의 바른 미소,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짧고 인상적인 멘트 하나면,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익히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약장수는 특유의 언어감각과 뛰어난 모방능력으로 곧 그들과 무리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 
 

   그런 식의 짧은 말 한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혹 누군가가 그의 언급에 대해 좀더 깊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는 신중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물러서곤 했다. (...)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지식인이란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으며 약장수는 그 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래, 342~343쪽, 천명관, 문학동네, 2004. 12.


그렇다. 제대로 된 소설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지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말은 가능한 적게 한 채, 어딘가에서 듣거나 읽거나 본 이야기들을 한 아름 툭 던져 놓음으로써, 기존 문학계를, 영화계를 그래서 기존 소설들과 문학상마저도 마음껏 비아냥거렸을지 모를 천명관, 그는 마지막 페이지 수상소감에서 또 다른 암상을 준비하고 있다. 

“ 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게 감사한다. 그분들은 나의 생각을 너그럽게 용인해주었다. (...)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계속된다. ” 

도저히 주제를 생각해볼만한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쉼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들...
그러나 이러면 어떨까라는 의미가 내포된 기존의 소설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이야기꾼, 천명관의 다시 계속될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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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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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 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 새 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 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 연금술사, 211쪽,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4. 11. 



 

당신은 당신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 적 있으신가요?
파울로 코엘료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를 통해 이렇게 얘기해요.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각자의 보물이 있다고. 그런데 우리 마음은 사실 그 보물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고. 우리가 단지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리 자신을 던져버리는 대신 우리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고...

" 그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 테니. "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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