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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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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미국의 전 대통령 후보인 엘 고어와 UN의 IPCC에게 돌아갔다.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엘 고어(막상 미국 대통령은 반대로 행동했지만)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2006)’을 통해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역설했다. 말 그대로 불편하고 당장은 눈에 거슬리지만, 인정하고 바꾸어 나가야 할 진실이 있는 셈이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Bad Samaritans)’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자유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게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공기업 문제가 과연 민영화로 해결 가능한지, 지적재산권이 실제 기술혁신을 촉진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경제 발전에 문화나 민족성이 있는지 등 현실로서의 경제학에 대해 널리 알려진 책이나 영화 등을 소재로 신랄하면서도 명료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예측되다시피, 저자는 기존의 관습을 뒤엎는다. 오늘날 자유무역을 칭송하는 선진 국가인 영국과 미국은 자국의 경제 보호를 위해 강력하게 보호 무역 정책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대부분 사람들은 선진 국가들이 자유 무역을 통해서 발전한 것으로 믿고 있다. 애초부터 불평등한 게임에 노출될 개발도상국들이 자유무역을 통해 얻을 이익도 미미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브라질 대표 축구팀과 저자의 여섯 살 난 딸아이 친구들 간 축구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선진 국가들은 (저자의 또 다른 책 제목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개도국들이 선진국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용납지 않는다.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신자유주의에 대해 저자는 많은 역사와 치밀한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책을 읽던 도중 특히 ‘97년 금융위기를 통해 IMF가 우리에게 강제했던 경제정책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주위 누군가는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백 만원씩 나누어주고 바로 쓰라고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적절한 소비가 맞물려야 경제에 온기가 차는 걸 말하는 것이었는데, IMF는 반대로 지나친 긴축 재정을 강요해 경기 진작을 가로 막았다. 너무 써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쓰지 못해 문제가 곪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즉 세금!)이 들어간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헐값에 팔려나갔다. (이들은 나중에 ’먹튀‘까지 했다.) 이후 신용카드 발급 남발을 통해 인위적인 내수 부양으로 겨우 IMF 금융위기를 극복했으나, 이후에 ’신용카드‘는 ‘지갑 속의 폭탄’으로 불리며 온갖 사회적 부작용을 낳았다. IMF의 경제 개혁정책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도국 어디에도 효과적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게 한 사례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만 하다. 

 8장에서 저자도 잠시 언급하듯 이는 경제 관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인 ‘관료’는 IMF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아 위임되지 않은 권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설사 그들의 정책이 잘못 되었다고 판명되어도 복잡한 관료제의 그늘 속에서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았다. 얼마 전 참여연대에서, 퇴임 후 고위직 경제 관료들이 일반 기업체에 취업한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공복인지, 사익을 위해 애쓰는 공공의 적인지 의심케 할 만한 예가 많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쁜 사마리안’의 이미지는 코가 큰 금발의 백인의 이미지로 떠올랐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나쁜 사마리안 체제’가 아닐까? 특정 국가의 특정한 사람이 못 되먹은 게 아니라, 자유ㆍ공정 등을 내세우며 뒤에서는 힘의 우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자본주의 체제 말이다. 불공정한 경쟁은 세계 경제뿐만 일국 내에서도 벌어진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특허를 침해하거나, 문어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까지 침해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저자가 비록 이기적인 선진국을 비판하는 듯 하지만, 결국 문제는 이기적인 선진국이 만들어 논 게임의 룰, 즉 체제로 봐도 무관할 듯 싶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의 배려 속에서 성장하게 되면 서로 윈윈하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희망’인 것 같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충분히 성장해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가져갈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기회가 허락된다면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만들 수 있는 체제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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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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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만큼은 재미있다. 그런데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것도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생물학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발견이지만,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데는 큰 공감을 표시하기 어렵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국적이다. 저자는 독일대학의 교수인 ‘구크룬 슈리’다.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부터 19세기의 X선이라 불리는 뢴트겐 광선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가진 국가주의적 한계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3장의 괴테와 관련된 진화론의 증거는 무척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을지 모르지만, 굳이 세계사를 흔들었다고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려운 사건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왜 괴테를 이렇듯 역사의 한 중심에 놓으려 했는지 미약하나마 짐작이 가능하다.)

  라오콘 군상과 관련된 논란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 군상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 중 독일의 ‘요아힘 빙켈만’이란 사람의 주장만을 몇 페이지에 걸쳐 할애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이 든다. 미술사 속에서 훨씬 질 높은 다른 논란들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10장의 ‘부활절 성극의 퍼즐을 맞추다’편도 당시의 독일 문학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무척이나 박식해보여도, 적어도 자신이 가진 한계, 즉 자국 역사에 함몰되어 세계사를 바라보고 있다면 지나친 비판일까?

  다음은 사례의 문제다. 그런 비판이 두려웠는지, 저자의 또 다른 한계인지, 세계사를 다룬다고 하면서도 동양의 사례는 진시황이 전부다. 하다못해 다른 사례들은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꼭 등장하는데 진시황릉을 처음 발견한 노인의 이름은 아예 나와 있지 않다(최초 발견 노인의 이름은 양취안이(楊全義)이며, 2003년도 시안에 갔을 때 황릉 옆에서 관광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다).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실러캔스를 넣을 수 있을까? 이름은 서양에서 정했을지 몰라도 발견은 분명 동양인(인도)들이 먼저 했을 테니깐. 동양의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은, 저자가 세계사를 유럽사로 인식하거나, 동양의 사례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아니면 동양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단 말인가?

  16가지 사례라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크게 없고, 그 외에 자국 시각과 서양중심적 시각이 크게 아우러져 그렇게 좋은 책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켰다.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도대체 어떤 용기로 ‘세계사를 흔들었다’고 책 제목을 정했을까? 외국서를 번역한 책들은 책 정보 페이지에 원서 제목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원서의 제목이 뭘까? 구글링을 해보고 아마존에 가보아도, 저자(GUDRUN SCHURY)의 다른 책들은 많았지만 이 책의 원제 비슷한 것은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만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만 특별히 ‘지어진 제목’이란 말이다.

자, 원서는 없다 치자. 도대체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이며, 책 내용의 소재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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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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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기타의 ‘생각의 오류’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만들어진 책 같다. 저자는 크게 여섯 줄기로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를 지적한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신뢰하는 속성, 2. 자신의 믿음을 확신시켜주는 증거들에만 집중하는 것(심리학에서 ‘선택적 지각’으로 설명되는 것), 3. 삶에는 운과 우연도 있는 것인데 지나치게 원인을 찾으려는 속성, 4. 지나친 오감을 확신한 나머지 부정확한 인식으로 생기는 오류, 5.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오류, 6.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기억이 변질되는 것 등이다. 

 동어반복적인 말이 많고, 미국 사례들이 많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기하는 여러 주장들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자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의외로 간결하다. 책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매번 객관적인 조건으로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써 소위 ‘기회비용’이 많이 든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불량률 통계를 인용하고, 간단한 판단을 내릴 때에도 여러 사례를 비교ㆍ분석 하면서 회의하고 의심만 한다면, 그것만큼 세상 피곤하게 사는 법이 없다. 정보의 홍수(overloading)에 빠져 재빨리 판단해야 할 일도 제쳐두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이런 것은 더욱 힘에 부치는 일이다. 과학자들만큼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곳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기껏 얻는 양질(?)의 정보라고는 인터넷, 뉴스와 같은 매스 미디어가 전부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지적했듯 이런 미디어가 갖는 위험성은 굳이 크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특히 통계는 양날의 칼이다. 이야기보다 통계 수치에 의존하는 것이 좀 더 ‘과학적’으로 보일 뿐, 마크 트웨인의 멘트를 인용했듯 통계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대선 여론 조사의 경우 천 명 대상 중 응답률은 20%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기관에서 시행한 설문 조사 결과도 문항 조작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충분한 표본을 확보했는지, 적절한 문항으로 설문했는지, 표본의 보편성은 확보되었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기에는, 이미 세상일은 충분히 복잡하고 다른 일에 힘을 쏟기에도 바쁘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힘든 말이다. 저자가 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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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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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지정학(地政學)은 위험하다. 이건 운명과 같은 거다. 부잣집에 태어났으니 부자가 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니 가난한 사람이 될 거라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자원이 많은 나라는 강대국이 되고,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는 외세의 침입이 잦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리적 이유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화산과 지진으로 불안한 지형에 별 다른 자원도 없는 나라가 세계의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건 어떤 이유일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풍부한 북부 아프리카는 왜 미국처럼 선진국이 되지 못했는가? 정치학에서는 근대화, 즉 국민 소득의 향상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고 언급되지만, 사우디처럼 석유 자원이 풍부하고 국민 소득이 월등히 높은 나라가 아직까지 왕정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큰 판형에 컬러풀한 지도가 세상의 많은 이치를 설명해준다.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숫자와 과학에 의존한 지리학도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건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사실 유럽을 중심에 놓은 것이며, 동아시아의 역사는 근세 이후에나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유럽 열강에 의해 수탈당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국의 자원, 인종, 종교에 따라 세계지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입장에서 편치 않다. (그나마 객관적인) 프랑스인이 볼 때도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분쟁 지역처럼 묘사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이 현실이 언제 지도를 새로 그릴지 모른다. 책 후반부에 나온 것처럼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식량 및 환경 등이 새로 지도를 그리게 할 것이다.

  세계 곳곳을 잘 짜인 지도로 재미있게 여행한 느낌은 들지만, 그 이후에 텁텁하게 남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대륙과 해양 세력 간 요충지에 자원도 없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불안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단했던 우리 역사처럼, 앞으로도 이런 불안을 끊임없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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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 - 우리가 몰랐던 특별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 개정판
천샤오추에 지음, 양성희 옮김 / 북돋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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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공부를 하든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은 역사와 철학이다. 복잡한 공식으로 이뤄진 과학도 과학사를 알아야 현대 과학을 이해할 수 있고, 수요와 공급이 유일한 독립변수 같은 경제학도 성장과 분배를 놓고 치열한 철학적 논쟁이 있었다. 그 외의 학문들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한 나라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데도 당연히 역사와 철학이 필요하다.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는 역사와 문화로 쿠바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 안에 쿠바인의 철학이 만들어졌다. 쿠바인이 아니라 대만인이 썼다. 이 책은 쿠바 여행 소개기가 아니다. 쿠바의 역사를 소개하고 춤, 노래, 미술, 종교 등의 문화를 정리했다. 쿠바로 여행 갈 사람들이 볼 실용서는 아니지만, 이 책을 여행에 참고한다면 쿠바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은 단순견문기가 아니라 문화체험기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한 단어로 쿠바를 정리하라면, ‘아픔 속의 여유’라고나 할까.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가 지정학적 이유로 이렇듯 많은 열강들의 침탈과 식민 지배 속에 노예제도와 수탈로 신음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늘날 쿠바가 가진 여유를 보면 더 그렇다. 딱히 지나치게 낙천적이라는 말밖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이들은 잔혹한 역사 뒤에 매혹의 문화를 뽐내고 있었다. 독특한 혼합종교인 ‘산테리아’, 흥겨운 라틴음악 ‘손(Son)'을 바탕으로, 쿠바는 고난한 삶에서도 낙천적인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국도 지정학적 이유로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역사를 갖고 있다. 다만 우리는 강자의 그늘 아래 근대라는 회색의 터널을 힘겹게 건넜다면, 쿠바는 홀로 웃고 노래 부르며 쾌활하게 아바나의 아름다운 해변 길을 걸어간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으로 이 책은 지금 쿠바의 모습을 전하고 있진 않다. 쿠바는 반세기 가까운 미국의 봉쇄 정책에도 불구, 독특한 사회주의 체제로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남미 좌파 3인방인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와 함께 민중무역협정(People’s Trade Treaty)을 체결해 새로운 대안 체제를 모색 중이다. 무역협정에 따라 볼리비아는 풍부한 광물자원을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싼 값에 공급하고, 두 나라는 미국 거대 곡물업체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출이 급감한 볼리비아의 콩을 수입하고 있다. 또 의료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인 쿠바는 볼리비아 장학생 5천명에게 의료교육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사망 40주기를 맞았던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목소리가 새롭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키우자!” 그가 불가능한 것들로 상상한 많은 것들이 쿠바를 비롯한 남미에서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쿠바는 아팠지만 웃는 중이다. 아니, 아팠기에 더 활짝 웃을 수 있다.

* 관련 영상 자료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 - 카리브해의 판도라 쿠바 편’,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여행기를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추천합니다. 특히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흥겨운 ‘손(Son)’음악을 직접 듣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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