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션 - [할인행사]
알렉산더 페인 감독, 매튜 브로데릭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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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코미디다.

더도 덜도 말고 이 사람만 같아라, 할 만큼 모범적인 교사 짐(매튜 브로데릭. 참 오랫동안 봐 왔다. 은근히 좋은 영화들에 리스트를 올리고 있는 배우)과 승부욕으로 가득찬 학생 트레이시(리즈 위드스푼), 그리고 지나치게 착하고 모범적이고 근육질인 기독교 청년 폴, 그리고 동성애적 기질에 자유주의자인 청년의 동생 태미(입양된), 이 넷이 학교에서 벌이는 정치 이야기.
당연히 전교회장이 될 줄 알았던 단독 출마자 트레이시, 트레이시가 못마땅한 짐의 부추김에 넘어가 출마하게 된 폴, 그리고 자신의 애인을 뺏어갔다고 앙심을 품고 나온 태미, 그리고 한순간의 바람에 빠진 짐...

이들이 보여 주는 선거 이야기는 기존 정치판의 속성을 너무나 잘 그리고 있으며(그렇다고 어설픈 빗대기로 일관하지 않고, 적절하고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생의 어느 한 순간, 혹은 언제나 있을지도 모르는 선택의 순간, 결정적 순간을 그리고 있는 걸로도 보여진다.

각각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내레이션들은 신선하고, 특히 초반부에 상대방을 설명하기 위해 정지된 화면이 나오는 순간은, 요즘 흔한 말로 '안습'의 모습처럼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이드 웨이> <어바웃 슈미트> 등을 통해 과장되지 않은, 그리고 삶의 순간과 성찰, 그리고 또 이어지는 시간, 이라는 테마들을 적절한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냈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초기작이다.

후일담 역시 그땐 좋았지, 혹은 지금도 좋아, 꼭 이런 식이라기보다는, 아, 산다는 건 결국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혹은 그저 그런 거라는 걸 잘 보여 주는 마무리였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태미!
후보자 유세에 나와, '학생회장 선거라는 건 사실 대다수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 회장, 부회장들의 대입 때 경력에 불과한 것! 우리는 거기에 들러리일 뿐! 그러니 투표하지 맙시다!'라고 일갈하는 대목에서는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립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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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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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소설은 뭐라 정의하기 참 힘들다.
다양한 장르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언제나 자기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 안에 그럴 듯하게 인물을 배치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허구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야기는 언제나 몇 겹으로 돼 있고, 결국에는 만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장을 덮고 나면 '사는 게 결국은 그렇지, 뭐!' 하는 탄식을 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스퀴즈 플레이>는 조금 다르다.
의식적으로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정석을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정석을 따라가고 있지만, 인물들의 전형성은 극대화 돼 있어서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고, 극의 결말을 대략 알 것 같지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이야기 구조에서 무릎을 탁 치는 부분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러한 뻔한 이야기 구조 자체가 세상이 '스퀴즈 플레이'(타자는 희생 번트를 치고 3루 주자는 순식간에 홈을 밟는 전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으며, 그게 가장 확실한 득점 방법인 상황이다.),  혹은 원제인 'hand to mouth'(근근히 살아가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고, 물고, 또 물려 있는 연관 관계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비열한 뉴욕 거리'를 잘 보여 주며, 마치 <말타의 매>에서 그대로 걸어나온 듯한 주인공의 과장된 유머와 객기는 제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씁쓸하지만 안타까운 대처법으로 보인다.

아직도 폴 오스터 소설 중에 안 읽은 게 많다. 그래서 즐겁다. 천천히 천천히 나른한 삶에 원동력이 돼 줄 수 있을 거 같다. 고마운 친구, 오스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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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박 - 드래곤북스 명작 컬렉션 2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좌백 지음 / 시공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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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청소년기 김용, 와룡생, 고룡 이후 제대로 무협지를 본 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한다. 무협 만화는 드문드문 봤지만.
그러다 어느날인가 대일이형 소개로 좌백님을 뵙게 됐다.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실제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지라 좀 민망했다. 그리고 요즘 왜 이리 장르문학을 제대로 못 봤는지... 자책감도 들었다.
그리고 교보에 달려갔지만 구할 수 없었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우선은 단권짜리를 보고 싶어서 <생사박>을 일순위로 잡았다.

역시나, 쉬지 않고 금세 읽어 내려갔다.
아...
뭐라 할 말이 없다.
전형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 주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캐릭터, 과하지 않고 적절한 상황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중국 무협물에서 보기 어려웠던 싸움 장면의 묘사. 그 묘사는 한두 번만 읽으면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정확하고 아름다웠다.

그닥 많은 말을 덧붙이기 힘들다.
재밌으니까.

앞으로 좀 더 새로운 무협 작품들을 봐야겠는데...
형한테 얼릉 리스트 좀 짜달래야겠네...
그리고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작품들은 좀 빌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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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 - [할인행사]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팀 로스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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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생뚱맞게도 <Legend of 1900>이다.
하지만 1900년의 전설로 오해하면 곤란이다. 아니, 그래도 되나?
주인공(팀 로스)의 이름이 '대니 부드맨 T.D. 레몬 1900'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00년 1월 1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1900년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버려진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피아노의 천재다.
자신이 책과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 그가 본 사람들의 모습, 자신이 상상한 그들의 역사, 그걸 기반으로 그는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한다.
처음에는 호적도 없고, 배에서만 자랐기에 무서움 때문에 배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겠지만, 그는 점차 배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어느 한 여인을 쫓아 나가겠다는 마음을 굳히지만, 육지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서 바라본 뉴욕의 풍경은 그를 다시 돌아서게 만든다.
그와 함께 배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트럼펫 주자의 후일담으로 구성되는 이야기는, 1차 대전이 끝나고 이미 예전 호화로웠던 위용이 사라지고 폐기처분돼 폭파되기 직전까지 치닫는다.
트럼펫 주자는 아마도 나인틴 헌드레드가 배에 남아 있을 거라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가까스로 그 안에 남아 있던 그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이야기한다.
세상은 너무 넓다. 피아노는 처음과 끝이 있는 82개의 건반으로 구성돼 있고,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은 끝없이 펼쳐진 수천 개의 길이 있다. 어떻게 거기서 길 하나를 선택하며, 어떤 사람을 만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 질문한다. 뉴욕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그가 느꼈던 막막함이란 그것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기에 그는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는 버지니아 호가 전부라고 한다. 그리고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20세기초, 제국 열강의 각축장이 된 시대이자,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에는 더 심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벗기고 또 벗겨도 더 알 수 없는 세상이기도 했으리라.
물론 세상이 넓다고, 육지에서 평생을 살던 사람에게는 '바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가 가능할지도, 그러기에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 불가해한 세상을 너무 쉽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우연을, 그 무서운 선택함/선택됨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세상을 살았던 어느 한 천재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겁없이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고, 그 우연의 축복과 오묘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슴 짠하게 아련함이 남는 영화다.

아련함, 하면 떠오르는 영화, 그렇다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가 다시 뭉친 영화다. 빛나는 장면들이 꽤 있다. 초반,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에 정신없는 트럼펫 주자에게 나타난 나인틴 헌드레드, 그는 피아노 다리에 묶이 잠금쇠를 풀라고 한다. 연회장을 흘러다니는 피아노,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인틴 헌드레드, 정신없어 하다가 슬슬 그가 들려주는 연주에 정신을 차리는 트럼펫 주자... 그 유려한 움직임은 지금껏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낭만적인 씬을 보여 준다.
또한 운명의 여인을 만나는 순간, 창 너머로 보이는 그 여자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음반을 녹음하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모습...
재즈의 창시자라고 나오는 제리 롤과의 대결 장면...
무척이나 낭만적인 대부분의 장면들은, 나인틴 헌드레드의 정해진 운명과 대비되면서 더욱더 아련하게 가슴 속에 남게 마련이다.

항상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팀 로스가 분한, 지극히 정극적인 캐릭터의 나인틴 헌드레드는 묘한 슬픔을 안고 있다. 그닥 잘생기지도, 혹은 콰지모도나 야수처럼 극단의 캐릭터도 아니지만, 자연과 하나과 된 듯한 더없이 따뜻한 나인틴 헌드레드 캐릭터는 팀 로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정점에 있는 인물로 보여진다.

시대를 아우르고, 인간을 바라보고, 가슴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무척 매력적이다.
당연히 영화음악 역시 더없이 따뜻하고 귓가에 오래 남는 선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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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보이 (3disc)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 대원DVD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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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가스히로 감독이 오래간만에 내보인 신작.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집착하고 있는 유럽, 메카닉 등의 코드가 고스란히 집중돼 있다.
당연히 그러한 코드가 총 망라된 소년모험만화의 로망으로 가득한 이야기에, 어찌 보면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등에서 보여졌던 속도감을 극대화시킨 화면이 아닐까 예상했다.
물론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초반부에 보여지는 '기계작동'에 대한 탐구심은 <백 투 더 퓨처> 등에서 느꼈던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키라>의 감독임을 말하기 위해서인지, 마지막으로 갈수록 '폭주'가 가득하다.
장대한 스팀성의 이륙, 스팀볼과 비행, 장난감 같지만 무시무시한 무기들의 향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주의 기운, 어느 CG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화면은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결국, 과학은 인류의 진보에 어떻게 간섭하는가, 혹은 과학은 순수한가, 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결코 가볍지 않게 묵직하게 던지고 있다. 그저 겉멋으로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증기기관의 시대, 세계박람회의 시대를 고른 것은, 현대 테크놀로지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은 과학의 딜레마를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또, 한편으로는, 민중의 평등을 위해 과학을 써야 한다는 초기의 믿음과 그걸 위해서는 사소한 위험이나 희생도 감수해야 된다는, 역시 아주 고전적인 딜레마(그 반대편에 서 있는, 과학이란 순수한 것, 그러기에 밀실과학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까지 포함해)를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질문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아날로그한 모험 영화의 쾌감을 기대했던 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아키라> 때도 느꼈지만, 오토모 가스히로 감독, 그리고 일본의 많은 감독들이 갖고 있는 과도한 중압감이 어떤 때는 영화, 라는 고유한 매체의 매력을 자꾸 까먹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아키라>나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 등은 처음 보여지는 신선함과 더불어 그러한 질문 자체도 영화라는 것에 한꺼번에 묶일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러한 질문들이 좀 더 강해지고, 영상과 사운드 역시 더 강해지면서, 하나로 녹아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드는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사랑스럽다.

이제 <사무라이 참프루>를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이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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