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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자세 ㅣ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어내려 간 소설 <이완의 자세>
물론 아담한 사이즈에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문체로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서술을 하지않고
쉽게 일기 쓰듯 써내려간 주인공의 이야기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이완의 자세>는 세신사 엄마와 여탕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딸을 중심으로
여탕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그 속에 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을 담은 이야기다.
주위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도 목욕탕은 수많은 이야기와 인물들이 드나드는 공간이었고
은밀하면서도 적나라하기에 그만큼 자극적이면서도 진솔했다.
목욕탕에 가면 늘 탕에 앉아 모른척 옆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솔직히 안 듣고 싶어도 저절로 들려올때가 더 많았지만....ㅋㅋ)
멍하고 나른하게 탕 모서리에 머리를 기대고는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나만의 목욕을 즐기곤 했다.
그래서일까.
여탕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의 성장서사라는 책 소개에 궁금증과 기대감이 컸고
익숙한 배경 속, 있을 법한 삶의 이야기들에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오혜자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딸을 혼자 키워내야 했다.
인연을 끊은 시댁에서 받은 돈은 단칸방 보증금이 아닌 변두리 목욕탕 세신사 자리였다.
딸을 선택한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청춘과 삶을 내던지고 세신사가 되었다.
그 속절없는 원망은 방향을 잃고 조그마한 어린 딸에게 내던져졌다.
기술도 요령도 없이 시작했기에 프로 때밀이가 되기 위해 그녀는 밤마다 어린 딸을 목욕침대에 눕혔다.
목욕이 끝난 어린 딸의 곳곳은 때수건으로 민 자국과 때린 손자국으로 울긋불긋했다.
'무엇이 그토록 엄마를 화나게 하는지, 엄마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p29)' 알지 못한채
그저 아프고 서러웠던 딸은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걸 견딜 수 없게 된다.
세신사 엄마는 현실의 탈출구로써 딸이 무용가가 되길 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딸 유라는 어릴적 트라우마가 걸림돌이 되어 무용을 포기한다.
주인공 딸 역시도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팠던 여탕에서
비로소 자신의 온전한 몸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이완의 자세를 취하며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사실 이야기의 끝은 너무도 급작스러웠기에 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야 말로 이 소설의 끝에, 아직 쓰여지지 않은 뒷이야기 속에 있는 듯하다.
주인공 유라가 온전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진정한 자신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며칠 전 읽었던 소설 <데미안>의 이야기가 묘하게 닮은 듯 느껴진다.
유라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덧붙이기
소설 <이완의 자세> 속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중 마음에 쿵하고 울림을 주었던 건 단연 오회장의 이야기였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가슴을 도려내고도 당당히 여탕을 출입하며
사람들의 숨겨진 상처와 아픔을 서로 드러내고 공감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오회장의 이야기는
지친 일상의 피로를 여탕속에서 풀어내는 우리네 모습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