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면서 친구들의 소중함을 잊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요즘이다. 우정의 소중함을 간과하여 큰 실수를 하는 날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두 가지 방침을 세웠다. 주변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두려 하거나 깊은 관계를 만들려고 애쓰지 말 것, 그러나 아무리 강한 나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 두 가지 방침만 염두에 두면 어리석은 짓은 피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은근히 친구들의 순위를 매겼었다. 마치 생태계의 피라미드처럼, 가장 깊은 관계의 친구, 그보다 덜 깊은 관계의 친구, 그냥 아는 친구,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그보다 덜 좋아하는 친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개념이 달라졌다. 지금 내게 친구라는 개념은 나 자신이 아닌 '내 주변인, 혹은 같은 시기에 출발해 같이 성장하는 동시대인'이라는 의미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소설 <마이너리그>에 나오는 네 명의 친구들은 분명 '서로를 사랑하는 친구들'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서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정을 나눈다. 그들이 끌고 가는 삶의 시간이 불현듯 뼛센 가시처럼 목구멍을 깊숙이 찔러온 까닭이다.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삶, 그 지난함의 공유랄까. 친구란 그래서 가장 좋은 친구든 좀 덜 좋은 친구든 간에 세월이 지나고 보면 다들 어딘지 안쓰럽고 등을 두들겨주고 싶은 모양이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아빠 친구의 신년 인사 카드를 보고 가슴 한 켠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여보게' 로 시작해 '같이 힘을 내세'로 끝나는 그 카드에는 친구를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우려는 한편 자기 자신의 삶도 위로하려는 의지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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