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을 차려 입고 날씬한 몸을 흔들며 춤추는 동생을 보고 엄마는 쟤 데려가는 남자는 참 복 받은 거라고 했다. 생활력 강하지, 얼굴 예쁘지, 날씬하지, 싹싹하지.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겉모습에 신경 쓰지도 않고, 붙임성이 좋은 것도 아니며, 생활력이 강하기는 커녕 혼자서는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주위의 평판 속에 있다. 이게 나에 대한 평판의 전부라면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단점들을 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중이다. 일종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내 삶의 전부를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생활이 고달퍼도, 나를 둘러싼 상황이 쉽게 허락하지 않아도, 결코 그 일을 포기하거나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때문에 나는 나를 데려가는 남자는 참 너그럽고 내가 하는 일을 나와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아직 어리고 순진한 건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한가지 일에만 매달려 그 밖의 다른 것들엔 무신경한 삶이라니. 그것을 열정이라고 불러야 할지 무모함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고흐가 예술은 질투가 심해 2순위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해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그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사랑이 틀림 없다고 확신한다. 소설 덕분에 웃기도 울기도 하고 그 전까진 무관심하던 다른 영역의 것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려 노력하니 말이다. 그것은 깨달은 순간 얼마나 놀라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 사랑이, 열정이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선자들의 말을 마음 한 켠에 간직은 할 것이다.

'결과가 출발점과 중간 과정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결과가 왜 아니 중하겠는가. 그러나 내 모든 삶을 바쳐서 얻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선택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절대로 의미 없는 짓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들린다. 

진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은지 9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그도 많이 잊혀졌다. 그가, 아직 스물 둘인 나에겐 진심의 고향이자 촉매였을까. 그를 잊어감과 동시에 진심의 효용성과 그것을 구사하려는 의지까지 잃어갔던 모양이다. 그래,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을 절대 잊지 말자.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고 영원히 그렇겠지만,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짓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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