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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서평

  솔직히 말하면 나는 추리소설엔 별 관심이 없었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내겐 그닥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추리소설의 이야기 구조란 항상 정해져 있지 않은가. 탐정이 범인을 잡는 것과 동시에 끝나는 소설. 너무나 뻔하다고 생각해선지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추리 쪽엔 눈길을 주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아니면 뭔가를 분석하고 발견해내는 일엔 별로 재능이 없어서일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연애소설 역시 추리소설처럼 남녀가 헤어지거나 이루어지는 뻔하고 단순한 구조인데도 정말 좋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인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을 읽은 건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 느낌이 물씬 풍겨났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는 좋아한다! 혹시 나는 너무 분명한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연애, 미스터리물은 그닥 분명치 않은 이야기에 속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레이코와 왜 섹스를 했는가 하는 수수께끼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100% 다 알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완전히 이해는 안 가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어지는 수준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인물행동의 동기를 여러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는 이런 소설들과는 달리, 추리소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답이 딱 하나다. 범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도덕성 따윈 져버릴 수 있을 만큼 악독하거나 혹은 미쳤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추리소설은 100% 다 이해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보다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 재미를 느껴야만 추리소설을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범인을 찾는 과정엔 별 흥미를 못 느꼈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연애도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자의 연애였다면 시시했겠지만 주인공 아델리아는 죽은 자들을 검시해 범인을 찾아내는 유능한 의사이자 탐정이다. 게다가 성질도 보통이 아니다. 유능한 사람들은 다 그럴까? 주교직위에 오른 로울리경이 청혼을 해도 자기는 환자들에게 일생을 바쳐야 한다며 거절한다. 로울리에겐 다행한 일이다. 아마 그녀와 결혼했으면 그는 밥도 못 얻어먹고 빨래도 자기 손으로 해야 했을 것이다. 하녀가 해줬을까? 부부동반 모임에도 그녀는 환자를 보러 가고 그 혼자 쓸쓸히 모임에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둘은 만날 싸우지 않았을까?


  그 밖에도 이 소설엔 밝고 재미있는 조연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궁전의 연회장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행복해졌다. 내내 시체, 살인, 음모, 이런 어두운 이야기만 나오다가 밝은 부분이 나오니 반가웠다. 책을 읽으며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난 그런 순간을 사랑한다.


  아델리아는 며칠 전 본 <트랜스포머>의 주인공과 닮았다. 자기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정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아니, 정의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였나? 난 절대 그렇게 못할 텐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그런 얘기를 하자 친구는 ‘그건 영화잖아, 우린 다 소심해’라며 나를 위로해줬다. 친구와 나 사이엔 잠시 우울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우린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 그러면 어때? 사실 정의 따위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평범한 인간인 게 감사하다. 지구는 오토봇들이 잘 지켜주겠지. 고맙다, 오토봇!


  이 소설은 영아살인사건과 관련된 어두운 이야기임이 틀림없지만 정의를 위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의 지향점은 평화와 안식이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과 함께 이야기가 끝나면 내내 어두운 동굴 속을 헤매다가 비로소 밝은 빛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다가 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이 소설엔 그런 마력이 있다. 소설이 너무 두껍기 때문은 아니겠지? 의심하시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라. 의심이 많은데다 속독의 기술까지 겸비하셨다면 이 두꺼운 추리소설이 입맛에 맞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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