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문명 -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이야 시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특별한 기술의 상징도 되지 못한다. 시계 아니더라도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는 많다. 티브이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틀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한 위성 시간을 알려준다. 알람까지도 스마트폰이 담당하니 시계가 설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나마 사무실이나 대합실의 벽시계 정도가 실용성을 유지하고 있고, 손목시계는 일종의 액세서리처럼 되어버린 상황이다. 시간만 확인하려는 용도라면 돌핀 전자시계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전엔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니 시계는 분명 정밀 기계 기술의 극치였다. "시계 제작은 물리학과 역학의 이론적 발견이 실용화된 최초의 산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응용역학의 전반적 발달에서 첨단을 달리며 과학 기구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90p)"


책의 부제는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 시대엔 유럽보단 이슬람 문명과 중국이 경제와 기술 모두 유럽에 앞섰다. 심지어 무역에서도 유럽은 동양에 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책은 말한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과학에서 서양의 우위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동양은 내놓을 원자재와 상품이 많았던 반면 서양은 아시아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거의 내놓지 못했던 상황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119p)"


그럼 서양 코쟁이들이 뭘 팔 수 있었느냐, 바로 기계식 시계라 이거다. 1090년 송나라 과학자 소송이 꽤 정확한 물시계를 만든 적 있었는데,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그 시계를 폐기했고 무려 5세기 동안이나 시계의 존재가 잊혔다고 한다. 그러므로 훗날 예수쟁이 선교사들이 시계를 건넸을 때 중국 사람들이 환장한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생긴다. 첫째, 왜 유럽은 시계 같은 정밀 기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동양은 그러지 못했나. 둘째, 왜 중국은 시계를 접한 이후로도 그 정밀 기계 기술을 자신들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나.


저자는 유럽 수공업자 집단의 지위/경제력 상승을 중요한 요인으로 말한다. 수공업자들이 길드를 형성했고, 그 길드가 기존의 제국이나 왕국, 봉건영주로부터 사법적 지위를 요구해 인정을 받았다. "주변의 봉건 세계에 대한 자유민들의 연합체의 승리(27p)" 부터 서유럽 역사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수공업자 집단은 중세 도시 환경에서 우세했던 실용성과 실리주의 정서와 더불어 성장한다.


게다가 동시대 비잔티움이나 이슬람 중동은 수공업자의 솜씨를 오락거리나 극적 장관 정도로 소비했던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갈수록 수가 늘어나던 수공업자들이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응용역학에 관심을 갖고 이를 추구했다고 하니 기술 격차가 점점 벌어졌음은 당연하다.


중국의 경우엔 시계는 차치하고 먼저 발명한 인쇄술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이렇다. "17세기 초가 되자 중국 인구 대다수는 여전히 문맹인 반면 유럽의 문자 해득률은 괄목한 만한 진전을 보였다. (50p)" 혁신이 사회문화적 성격에 제한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명대 중국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체계는 수공업자를 억압하고 응용과학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방해했다. (148p)"


마지막 질문. 서양은 실용성과 실리주의를 추구했는데, 왜 중국은 그러지 못했나.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나. 조선의 실패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지라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바랐는데, 책엔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 나라 사회 분위기가 그랬고, 국민성이 그래서 그랬다는 식이다. 가령 "에스파냐 사람들이 본래 기술과 기예에 관심이 없어서 (41p)" 빈곤이 만연하게 됐다는 평가에 동의한다는 저자의 말이 그렇다. 이런, 사농공상 공맹퇴율 읊다가 일제에 나라까지 빼앗겨버린 한국인 입장에서는 "너희 사회와 국민성이 원래 그러니까 그리 된 거야"라는 식의 설명은 조금 억울하다. 차라리 제래드 다이아몬드처럼 이것저것 이유를 분석해서 "얘네는 지리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었어"라는 식으로 설명해주면 위안이 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종반부 저자 의견은 역사 해석의 정당성을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왜 중국이 성공하지 못했는가"라고 질문할 때 우리는 암암리에 비중국적인 조건에서 중국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승자 입장에서 패배자의 패배 원인을 조목조목 써 내려가기란 참 쉽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패배자의 조건을 고려한 분석은 아니라는 것이다. 속 시원한 분석은 없었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겸허한 역사 해석의 자세가 바람직해 보인다.


혁신도 중요하지만 혁신 이후를 결정짓는 건 사회 문화적 분위기에 달려있다는 결론을 개인 차원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시대에 어떤 직업이든 얼리 어답터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긴 할 테다. 민초들이 말 많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준비할 게 무엇일까. 언뜻 생각해선 답 안 나오긴 한다. 인공지능에 밀리지 않는 전문기술? 자본금? 돈 없으면 그냥 시류에 휩쓸리기만 할 것 같다는 우울한 결론만 떠오른다.

도시에서는 낙관주의가 우세했고, 이는 개혁을 향한 일반적인 열망과 상호 협동을 위한 진정한 욕구를 키웠다. 개혁에 대한 열망은 당시 팽배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종교적 색채를 띤 반면, 상호 협동 욕구는 대체로 사회정치적 수준에서 작동했다. 길드가 성장했고 길드 위로는 더 큰 형태의 연합체ㅡ자치도시가 발전했다. 이러한 연합체들은 기존의 제국이나 왕국, 봉건영주로부터 사법적 지위를 요구해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으며 평화적으로 혹은 폭력적 수단을 통해 독립적인 사법적 권한을 획득했다. 주변의 봉건 세계에 대한 자유민들의 연합체의 승리는 서유럽 역사에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그 후로 일어난 일은 모두 이 중대한 변화의 논리적 귀결이었을 뿐이다. 2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