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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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시화 시인은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에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말했다. 이 시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정도로 읽어도 되겠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만약 곁에 있는 그대와 그리운 그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삶엔 그런 위험한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책엔 많은 불륜 커플이 나온다. 왜 그들은 한 관계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걸까. <오대산 하늘 구경>의 여자는 "자신만 알고 있는 내면의 어떤 결핍"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후에 남자는 "결핍을 공유"하기 때문에 너와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결혼으로 결핍을 충족하려 하지 않을까. 그보다도, 왜 자신의 결핍을 버리지 못할까. 정신적 결핍은 채워질 수 없고, 이미 그 자체가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한 자아는 행복해지길 두려워한다. <보리>의 여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침이 오면 당신과 헤어져야겠지만, 내 어찌 너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떠나지만 미워하지 못할 사람들. 가끔 통속적인 삶에서 헤매는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2.
읽으며 사랑의 윤리 같은 건 따지지 말고 잠시 내려놓자. 윤대녕 소설 읽을 땐 이건 소설이니까,라고 퉁치면 된다. 인물들의 대사도 오글오글 간질간질 문어체인데 그것도 그냥 이건 소설이니까,라고 퉁치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대사들.

"훗날 바위를 치며 서로 후회하게 될 거요."

"그럼 나와 성을 쌓은 일은 어떻게 하고?"

"부장님 저 정말, 좋아하세요?"
"거듭 말하면 숲에 숨어 있는 새들이 모두 날아갈 텐데."

"내세에서 다시 만나 전생처럼 눈비가 내리는 날이면 보다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사랑을 나누도록 하자. 커다란 하얀 냉장고에 붉은 사과가 가득 들어차 있는 집에서 말이야."

"호텔 안에 다람쥐 두 마리가 들어왔으니 그만 일어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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