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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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사과한 적이 언제였던가. 사소한 사과는 생각나지만 큰 사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큰 죄를 지은 적은 없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속죄는 선행하는 죄가 있어야 성립된다. 그러나 간혹 이유 없이 일단 사과하고 본 적은 없었는가?


소설의 두 주인공 시봉과 진만(나)은 사회 복지 시설에서 성장한다. 말이 복지 시설이지 모자라고 없는 사람들을 가둬놓고 강제 노역 시키는 못된 시설이다. 이곳의 두 복지사는 시시때때로 시봉과 진만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복지사는 폭력을 행사하며 '네 죄가 뭔지 아냐고' 묻고 죄를 고백하길 강요한다. 시봉과 진만은 없는 죄이지만 그것을 고백하면 고백하지 않을 때보다 덜 맞는다는 걸 알고 죄를 고백한다. 


이후 시봉과 진만은 복지사들의 명령에 따라 원생들의 죄를 찾아내 대신 사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복지사들의 명령을 넘어선다. 복지사들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그것으로 사과가 완성된다고 말한다. 흠씬 맞는 그들은 마음이 편하고, 또 한편 우쭐하기까지 한 기분을 느낀다. 원생들은 죄를 대속하고 대신 맞는 그들을 향해 죄의식을 느끼고 울며 무릎 꿇기까지 한다. 그런 원생들에게 그들은 "또, 뭐 다른 죄는 없나요?"라고 묻는다. 그들은 기묘하지만 흡사 예수와도 같다.  


시설의 정체가 드러나 원장과 복지사들이 구속되고 시봉과 진만은 사회로 나와 대신 사과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죄지은 게 없느냐며, 잘 생각해보라며 사과를 강요한다. 그들에게 사과를 강요받는 사람들은 처음엔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만 점점 마음속에서 자신의 사소한 죄를 키우기 시작한다. 사과를 강요받던 사람들은 정말로 큰 오류를 저지르고 망가진다. 


시봉과 진만은 없는 죄를 고백한 다음엔 그 죄목을 반드시 실천한다. 개새끼야라고 욕했다는 거짓 고백 후 맞은 그들은 진짜 개새끼야라고 뒤에서 욕을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설 속 세계에서 일반적인 죄와 속죄의 과정(죄 → 속죄 → 용서)이 역전되어 있다. 속죄로서 죄가 증명되고, 그 죄는 반드시 폭력으로 응보 된다. 복지사들이 이유 없는 폭력이 불합리한 세계를 창조했다면 시봉과 진만의 폭력으로 속죄하는 방식은 불합리한 세계를 완성시킨다. '죄는 모른척해야 잊혀지는 법 (215)' 인데 '죄는 많고도 많으니까 (92)' 사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어떤 실패가 목격되면 반드시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다. 사회의 잘못이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되고, 개인은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이 소설은 희생양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다. 없는 죄를 고백해야 하고, 어쩔 땐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소설 밖의 이야기를 잠깐만 하자. 최근 한 간호사가 췌장 수술을 마친 환자의 생징후를 의사 지시대로 1시간마다 체크하지 못했다가 환자를 사망하게 만들었고, 다른 간호사는 항구토제 대신 근이완제를 주사하여 환자가 사망케 하였다. 저수가 의료체계에서 한 명의 간호사가 감당해야 하는 능력 밖의 업무를 반복하다 생긴 일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 완벽은 없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의 유죄는 맞지만 그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있었다. 이 세상에선 세상이 만든 많고도 많은 죄 중 하나를 개인이 속죄해야 한다. 다시 소설 안으로 들어올까. 마지막 장면에선 진만이 시연을 업고 병원 밖으로 나선다.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병원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인간은 원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과를 하며 살아갈 것 (179)'이다. 

처음, 복지사들은 우리가 원생들 대신 사과할 때마다, 우리를 칭찬해주었다.
"그렇지,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그런 걸 우리한테 먼저 말해줘야지."
"잘하네, 반장. 우리가 반장 하난 잘 뽑았어!"
복지사들은 그렇게 말한 후, 우리에게 이제 그만 가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하라며 우리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봉과 나는 계속 복지사들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뭐야, 더 할 말이 있는 거야?"
"왜 그러는데?"
우리는 말했다.
"그냥 보내시면 어떡해요?"
"그러면 대신 사과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봉과 나는 계속 복지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를 그냥 보내면 그건 고자질이 되고 말잖아요."
"사과를 받으셔야죠."
"우리를 우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시봉과 내가 그렇게 번갈아서 말하자, 키 큰 복지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우리의 뺨을 세게 한 대씩 때렸다.
"에이, 씨발. 말 좆나 많네. 그럼 우리 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시봉과 나는 맞은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우리를 더 때려주세요! 그래야 대신 사과가 되지요!"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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