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사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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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사십사는 숫자 44이다. 이 숫자는 등장인물의 나이를 의미하기도 하고 단편 『四十四』에서 여주인공 제민이 입는 옷 사이즈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년(中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중년의 의미를 여러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우선 소설집 내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은 중년이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44세의 주인공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정확한 나이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40대 중반이거나 50쯤 되는 중년이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중년은 대개 무기력하고, 졸렬하며, 비겁하다고 말한다. 


『흉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입술이 잘려나간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문예사의 편집자로, 유능했으나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이였다. 입술이 잘려나간 후 그의 삶은 온통 엉망이 된다. 자살도 실패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을 찾지 못한 분노를 투사할 대상이다. 이렇게 삶은 예고 없이 일그러질 수 있고, 그때 우리가 행한 무례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사라진 이웃』에서는 실직 후 술만 마시다 이혼 한 무기력한 가장이 나온다. 용역 일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고 창피만 당한 뒤 용역 일을 잃는다. 이 가장은 무력하게 껍질 안으로만 들어가는 달팽이 같다. 무력하게 침잠한 중년은 딸의 삶도 알지 못한다. 


『더 송 The song』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중년의 교수가 나온다. 그는 요즘 흔히 말하는 '개저씨'에 가까운 인물이다. 졸렬하고, 무례한 그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끝내 남 탓만 한다. 


『흰 개와 함께하는 아침』에서도 중년의 교수가 나온다. 지금 살고 있는 젊은 애인과 동거를 시작할 때 이전의 애인을 졸렬하게 내친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애인에게 짜증과 분노가 치밀지만, 그는 "사랑이 어딨나.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차 밖으로 그녀의 애완견을 던져 버릴 뿐이다. 


만약 곱게 늙는 법을 곱게 전달했으면 참 재미없는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이 망가지고, 피와 살점이 튀는 이야기로 뻔한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편 무기력한 인생은 뜻하지 않게 변곡점을 찍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내의 시는 차차차』에선 은행을 다니다 조기 퇴직하고 치킨집을 말아먹은 후 백수로 지내는 중년 남성이 나온다. 그는 교사 아내에게 용돈을 받고 지내던 중 우연히 백화점 문화센터의 교양 시 강좌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기발한 방법으로 '술집 시 선생'으로 거듭나고 6년 전 만났던 여성을 다시 품게 된다. 그의 아내에겐 새로운 남자가 생긴 듯하지만, 상관없다. 그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생의 희비를 함수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면 어떻게 그려질까. 이 소설집에 의하면 그래프 전체 모양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중년은 변곡점에 해당할 것이다. 오르기만 했던 삶이 갑자기 내려가고, 반대로 내려가기만 했던 삶은 사소한 일을 발판 삼아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되살아난 기억이 행하는 폭력에 대한 서술이다. 


『한 박자 쉬고』에선 주인공이 과거 자신을 심하게 괴롭히고 끔찍한 기억을 안기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본능적으로 분노가 치밀고, 거부감을 느끼지만 끝까지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이전의 관계를 다시 강요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해 보이지만 공포를 기억하는 몸은 생각과 다르게 반응한다. 그는 잊고 싶었던 기억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년은 그렇게 무기력하다.


『四十四』에선 마흔네 살의 미혼여교수가 나온다. 그녀는 우연히 오래전의 연인이었던 윤 교수를 만난다. 윤 교수는 젊었을 적 그녀가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있고, 세련된 외모를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중년의 그녀보다 더 늙어버린 윤 교수는 머리도 벗어지고 이전의 용모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녀는 교수에게 품었던 연정이 모두 사라지는 걸 느끼지만, 윤 교수는 그녀에게 추근 댄다. 지금은 원하지 않는 이전의 관계를 강요당할 때 기억은 폭력으로 작용한다.


『네 친구』는 『四十四』의 여주인공 제민의 친구 혜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녀는 대학교 친구 세 명과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만난다. 그곳에는 이전에 처음으로 원 나이트 한 남자가 셰프로 일하고 있다. 이 짓궂은 우연과 친구들의 몽니는 혜진에게 수치심을 준다. 한편 병치되는 혜진의 회상에서 교회에서 만난 한 여자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지만 혜진에게 오래전 자신이 고통받았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네 친구에서 나머지 한 명은 원 나이트 한 셰프일까, 교회에서 만난 여자일까. 어쨌든 셰프와의 기억은 수치를 주는 폭력으로 작용한다. 교회 여자는 정말 자신이 기억 못 하는 것일지도, 아니면 교회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인지하지 못하던 망각을 인지할 때 그것이 폭력으로 작용함을 말한다.


참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선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이걸 다 읽고 나면 중년의 삶이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탄식을 내뱉게 된다. 이 적나라한 중년의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소아가 작은 성인이 아니듯, 중년도 나이만 먹은 청년이 아니다. 작가는 아마도 염치없는 중년들의 이야기로 하여금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이지만,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은 모조리 이 이야기 속에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중년이 채 십 년도 남지 않았구나. 어쨌든 나는 다시 탄식한다.

누가 내게 이런 짓을 한 것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왜?`가 중요했으나 `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툭하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선생님 말이 되질 않잖아요.` 왜라는 물음은 필연성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소설에서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필자들은 머쓱해하며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여 원고를 다시 보내왔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소설도 완벽한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작품은 없었다. 169p

시간은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에 탑을 쌓는다. 기억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끝은 뾰족한 바늘처럼 생겨서 복원해내면 따끔하게 마음의 가장자리를 찌르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카로운 시간의 기억을 다시 찾지 않을 만큼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다. 그러곤 어디에 그 시간을 두었는지 잊어버리고선 우왕좌왕한다. 서로 사랑할수록, 함께한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그 끝은 벼려진 바늘과 같아진다. 그 끝을 기억하지 못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상처받고 상처 주는지 모른 채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만 간다. 깊은 시간을 나눈 우정도 비슷하다. 우정은 시기와 질투 같은 다른 감정으로 얽히기 쉽다. 가족끼리 대화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서인데, 친구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245p

"봤어? 나이는 곱절이나 처먹어서, 애만큼도 삶의 철학이라는 게 없어. 바로 그거야, 차이. 저들이 버티는 이유, 인간으로써 권리 어쩌고 하는 거 말이야. 그런데 아니거든, 세상은. 시바, 이런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거잖아. 시바, 이 세상은 원래 졸라, 불평등하거든. 그걸, 아니까 민주주의 하자고 난리인 거 아니야. 민주주의 그건 언제나, 미래의 일이란 얘기야. 자본주의에서 무슨 평등이야, 시바. 자본주의에서는 자본만 평등한 거야. 알겠어?" 278p

"여자애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아저씨가 그 애에게 그런 동정을 보내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라고요. 사람은 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잖아요.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동일한 계급에서 동정과 연민은 웃긴 일이라구요. 상위계급에서만 그런 것들을 보낼 수가 있는 거죠." 284p

김 목사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군데군데 켜진 홍등이 밤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이른 저녁부터 사창가를 서성이는 청년들이 보였다. 아테네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종종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사창가도 3천 년의 세월을 견딘 것이라 했다. 이 거리를 지나쳐간 남자와 여자와 시간들이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고대의 시간으로부터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신의 형상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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