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매싱>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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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매싱 - 아이디어가 막힐 때 돌파하는 힘
정상수 글.그림 / 해냄 / 2010년 1월
평점 :
"<스매싱>에 '스매싱'이 없다"고 하면 좀 심한 표현이려나? 저자 또한 "한 가지만 강조하라"고 했는데, 한 상에 너무 여러가지 다채로운 메뉴들을 펼쳐놓은 느낌이다. 다양한 요리가 차려져 있는데, 다 먹고 나오니 메인 요리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 뷔페 같다고나 할까... 코스 요리처럼 어떤 스토리나 줄거리를 가지고 이 요리들이 적절히 배열되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
책 자체는 재미있다. 저자 스스로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 배운 아이디어와 설득에 대한 지혜' 라고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데, 대부분 광고 업계와 관련된 내용이다. 치열한 광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어졌던 국내외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아이디어 발상 기법들을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와 오렌지색의 강조 배색을 곁들여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다.
지은이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바로 "남 먼저, 과감하게, 다르게 하라!"는 것.
책을 읽다보니 원래도 인상적이었던 만화같은 표지 그림에 다시 눈길이 갔는데, "아이디어 발상"을 상징하는 고만고만한 전구들 가운데 악마 같이 "튀는" 커다란 전구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주제를 한 눈에 반영해 놓은 듯 하다. 남 달리 빨갛게 뻗친 뿔 2개와 뻔뻔해 보이는 빤질빤질한 광택 마크, 어디론가 톡톡 튀는 화살표 꼬리. 알고보니 표지 그림 자체도 저자의 핵심주장을 반영하는 하나의 "광고" 였던 셈이다. ^ ^
미친 아이디어를 내라, 차별화하지 못하면 죽는다, 남의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등등 각 장의 내용들은 아이디어와 시간에 쫓겨 피말리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광고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저기서 가려뽑은 좋은 인용문도 많고, 치열한 실전을 통해 터득한 저자만의 노하우와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다양하게 펼쳐진다. 굳이 광고업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리라.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아이디어, "남과 다른" 아이디어, "독창적"인 아이디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 밥벌이가 된 사람들의 괴로움이 갈수록 더욱 깊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남과는 달라야 하고, 남보다 앞서야 하는 강박적인 몸부림, 기호/언어/상징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의 치열한 경쟁들... 대부분 습관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생각(아이디어)'일진데, 어떤 목적을 위해 일부러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바로 고통이 되어 버리는 현실. 특히나 그 아이디어가 이전의 것이나 남과는 "달라야 한다"는 전제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더욱 더...
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아이디어 발상의 세계와 이를 시장경졔의 비정한 현실 하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몸부림이 책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듯해서, 다 읽는데 몇 시간 걸리지 않았음에도 쉽사리 가벼운 서평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게다가, 많은 이야기와 Tip들이 책 한 권에 담기다 보니 덕지덕지 포스트잇을 붙이고 형광펜을 줄쳐놓은 업무 수첩을 보는 느낌.. 이 내용들을 나만의 것으로 내면화시키려면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산만한 알맹이들을 하나로 꿰어 연결시켜줄 나름의 키워드가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유모어 전집>이나 <세계의 명언 모음> 같은 책들처럼 '다 좋은 말인데 딱히 기억에 남는건 별로 없는' 책으로 책꽂이에 전시되었다 사라질 가능성이 살짝 엿보였기에.
일주일간 다시 틈날 때 마다 천천히 앞뒤로 책을 뒤적이다 발견한 나름의 연결선은.. (당연하지만) 바로 "사람의 마음" 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요즘 유행하는 괴짜 경제학이나 소비 심리학, 심리분석, 뇌과학 분야의 "기발한 연구"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 배운 아이디어와 설득에 대한 지혜'를 통해 거꾸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이 책 자체에 대해 "스매싱"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만들어져 움직이고 있는 구조를 통해 거꾸로 그 원리를 알아내는 기분이랄까.
만약, 첫 인상과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산만하고 여러 내용을 짜깁기 한 것처럼 어수선하다 느껴져서 한 번 읽고 그만두려 했던 분이 있다면,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길 권하고 싶다. 분명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P.S.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과 "독창적이고 차별성 있는 아이디어"는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하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광고업계에서는 후자가 더 우선시 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삶의 현장에서의 "문제 해결"이란 반드시 독창적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예전에 있던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한때 이 분야를 주름잡았던 '브레인스토밍에 의한 수 백 개의 아이디어' 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새로운 통찰 내지 직관 같은 것이 요즘 비즈니스 창의력의 주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