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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전사 소은하 창비아동문고 312
전수경 지음, 센개 그림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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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하는 눈치 없고 특이하고 지구인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별명이 외계인이다. 하지만 은하는 게임 속 세상에서만큼은 보유행성이 278개나 되는 상위 랭킹 유저이다. 어느 날 손목에 별 무늬가 나타나게 되고, 엄마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책에서의 외계인은 지구를 빼앗고 침략하려는 공격적인 존재이기보다는 지구와 우주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무래도 내가 이미 커버린 어른이어서 예상 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아 나 늙어버렸구나 싶어서 좀 슬프긴 했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것들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게 좀 아쉽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머나 먼 땅에 정착해 임무를 수행하는 외계인의 모습이 신선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눈치 없고 특이한 지구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들을 외계인이라 낙인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초등학교, 혹은 이미 유아학교부터 ‘다름’이 놀림과 차별의 이유가 되고 상처 받는 아이들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다름’을 경계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사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온 우주인은 아닐런지. 살다가 눈치 없고 특이해 지구말을 잘 못 알아듣는 외계인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친절하게 대하도록 하자. 그 외계인 친구를 통해 우주 저편 어딘가를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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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못보다 하늘이 좋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하늘 저편이. 가끔 이 세상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P13

별똥별 같은 우주적 사건 앞에서 ‘게임 레벨 승급시켜 주세요.’나 ‘인기 있는 아이가 되게 해게 해 주세요.’ 따위 소소한 소원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난 오래전부터 우주 평화를 빌어 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P14

은하야, 애들 말에 신경 쓰지 마.
난 네가 지구인이든 외계인이든 상관없어.
너는 너니까.
나한테는 똑같은 소은하야.- P114

누구에게나 아무 방해 없이 숨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
조용히 숨어서 기운을 충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PC방이야.- P125

우주 평화는 저절로 지켜진 것이 아니었다.
이름없는 이들의 헌신으로 유지되어 온 것이었다.- P152

지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외계인을 놀리는 건 우스운 짓이야. 물론 헥시나가 지구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말이야. 우주는 다양한 우주인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 모든 우주인은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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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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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가 되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을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내는 것이다.


서문 살아남의 자의 미안함, p.8


 두어 달 전부터 구독했던 신문이 어느 순간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시간이 넘도록 신문을 붙잡고 있던 날들은 이미 오래된 과거가 된 것 같다. 매일 세상을 챙겨 보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과 각종 사고들을 가득 메운 신문을 읽다보면 어느새 피로가 몰려오곤 했다. 시간은 꾸준히 흐르고, 세상사는 나의 관심 없이도 훌쩍 진행되기 마련이다. 날짜가 지나버린 신문에는 이미 결론이 났고, 그 결론을 알고 있는 기사들이 실려 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날짜가 지난 신문을 읽을 때는, 무감한 마음에 피로감 역시 덜어지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발에 채이는 따끈따끈한 신문을 볼 때면, 그렇게 그 신문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한가득 쌓여 있는 신문들을 볼 때면,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밀려 착잡한 심경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구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1년 정기 구독과 비누 다섯 개와 커피 두 잔을 맞바꾸어서이기도 하지만, 비비안 포레스테가 말한 것처럼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악몽 같은 세상에서 잔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첫 번째, 혐오스러운 세상을 개탄하며 그저 포기하는 ‘민주 건달’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두 번째일 것 같다.

 나는 평소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뭐 하나 조금 못 해준 게 그렇게 미안하고, 이래도 미안하고, 저래도 미안하고. 조그만한 호의에는 그저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답을 해야겠다는 부담감과 함께 괜한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것을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온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는 말이, 무척 아프게 와 닿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서로의 온정과 시혜가 너무나 필요한 상태이고, 이는 곧 우리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할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수면 밖으로 폭발해 터져나왔고, 또 일순간 수면 아래로 사라진 사건이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다. 세상은 꾸준히, 정말 잔혹할만큼 성실하게도 흘러가기 때문에 금세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세월호는 2017년 인양되어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여러 의문을 지닌 채 심해 속에 잠겨 있다.



매일 평균 다섯 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하고 38명이 자살하는 사회. (p.118)

우리의 몸이 거하는 모든 곳, 그러니까 집과 배움터 그리고 일터에서 자유로운 주체이기가 어려운 사회. (p.13)

수학여행을 가다가 한꺼번에 수장되고

일하다가 직업병으로 죽어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회. 청춘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지 않는 사회. (p.25)

남을 설득하기를 포기한 사회. 설득되기를 포기당한 사회. (p.71)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택한 사회. (p.74)

사유 없이 자신의 처지나 정체성과 동떨어진 의식 세계만 갖고 그것을 고집하는 사회. (p.98)

타인의 온정과 시혜가 너무나도 필요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사회. (p.116)

일제의 앞잡이였던 자를 법이 아닌 암살로써만 그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있는 사회. (p.135)

20세기 초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선원 같은 선장과 선원을 찾을 수 없는 사회. (p.157)


 
 헬조선. 작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나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힐 만큼 머릿속이 복잡했고 암담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왔다니, 살고 있다니, 살아가야 한다니. 이 나라를,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경이 된 찰나 마주친 책의 마지막 구절이 있었다.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p.239

 ‘민주 건달’이 되기를 경계하고, 잔인할 만큼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마음에 포기해 버리려던 것이 또 미안해져서. 그 자포자기의 마음을 다시 접어 깊숙이 넣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현실에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전혀 들지 않을 때까지, 그런 감정을 들게 하는 일들이 사라질 때까지는, 그 마음을 꺼낼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에, 다름아닌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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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되물림된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는데, 가난이 죄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을 때, 부러움이든 시기든 부의 대물림만을 바라보는 대신 대물림되는 가난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보내는 것이다. - P8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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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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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이 싫었던 이유라면 백 가지도 댈 수 있지만, 가장 싫었던 이유는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었다. 병원은 죽음을 배우고 죽음에 무뎌져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내가 매달 받았던 월급은 사람의 죽음에 점점 무뎌지는 데에 대한 대가였고, 그래서 그 총합은 항상 모자랐다. 한 사람의 죽음이 유가족에게 슬픔만을 남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나긴 투병을 거쳐 이르게 된 죽음이 남은 자들에게 형벌같은 짐을 지운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고작 그만큼의 월급과 간호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슬퍼할 권리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첫 환자의 죽음에 대해 환자의 보호자보다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p.29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타인의 인력과, 인내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삶도 죽음도 아닌 경계에서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진이 병원에서 가장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죽음, 그러나 가장 배우기 어렵고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 역시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에 무뎌지기를 포기한 나는 병원을 떠나기를 선택했다.
 현대의학이 너무 발달해서, 혹은 애매하게 발달해서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시들어가도록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은, 죽음 앞에서 생각보다 지켜지기 어렵다. 타인의 손을 빌려 모든 기본위생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것이 지켜질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병원에서 존엄을 잃은 채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죽음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최악이자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한다.

p7.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죽음과 함께 일상을 지내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갑작스레 죽음과 대면하게 된 보통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무의미한 치료로 하루를 채우며, 고통 속에 삶을 끝내고 있음을 직시한다. 
 내과 병동에 근무했을 적, 췌장암을 진단받은 할머니가 계셨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췌장 말기, 복수가 찬 배 때문에 며칠 째 몸을 바로 뉘이지도 못하던 할머니가 힘겹게 내뱉은 말이었다. 수시로 주사바늘을 쥐어뜯어 애를 먹이고, 복수를 빼내던 중 혈압이 뚝 떨어져 한바탕 온 병동에 소란이 일었던 후에 할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그 말에 진땀 내며 바삐 움직이던 몸에 맥이 탁 풀렸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였을지도 모를 금식 중이었다. 그 혼돈한 말에 내 머릿속도 혼돈에 빠졌다.

 가망 없는 숨을 억지로 연명하며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대지도 못한 채 희미해지는 삶의 말로. 이게 과연 치료인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치료가 맞는가. 억지로 혈압을 올리고, 억지로 억지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이건 치료도 무엇도 아니지 않나. 여기 할머니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럴 바에는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한 입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병원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이

의학적인 시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현대의료에서는 이런 원칙이 너무나 빈번히 깨져버린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은 환자가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가고 있다.

p.71




 그럼에도, 할머니의 말은 온전치 못한 의식에서 한 말로 치부되어 아무도 귀담아 듣는 이가 없었다. 보호자조차. 그런데 그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힘겹게 뱉은 말은, 그건 사실 정말 할머니가 간절히 원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먼 친척들까지 몰려와 둘러 모인 보호자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냉담했기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구해서 몰래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은 내 몫이었다. 아니, 이런 걸...... 이런 걸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일이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일상을 견딜 수 없었던 건 내가 무르고 유약한 탓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내가 한 행위는 치료도 간호도 아니었다. 어찌됐던 할머니의 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중환자실로 이실된지 일주일만에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 이르면

누군가 "이제 그만"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도 든다.

p. 37


여전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면 퉁퉁 부은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할머니는 그래서, 떠나기 전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

병원은 치료를 위한 곳이다. 삶의 말로에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코 치료가 아니다. 현대의학으로 못 고칠 병은 없다는 인간의 교만일 뿐이다.






국가는 그 구성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만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p. 88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삶의 마지막의 질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당장 하루하루 살기 바쁘기 때문에, 당면한 문제가 많기에, 국가 역시 개개인의 죽음의 질을 고려할 여력도 이유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죽음의 질만큼 한 사람의 여생이 어땠는가를 대변할 수 있는 지표도 없다. 그럼에도 국가가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망자는 말이 없기 때문일까. 그 노력을 알아줄 사람 역시 없는 탓일까.
 문득 길을 건너다, 버스 안에서, 나를 스쳐가는 차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장 끔찍한 상상을 떠올리곤 한다. 졸린 눈을 부릅뜨자 부옇게 흰 천장이 보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흰 천장과 가끔 눈 앞에 어른거리는 의료진 혹은 울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전신이 마비되어 의식도 없이, 혹은 의식만 남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온 몸에는 여러 선들이 얽혀 연결되어 있고, 어느 한 곳이 설령 간지럽거나 불편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목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간호사가 수시로 다가와 들끓는 가래를 억지로 뽑아낼 때면 고통스럽다. 차라리 의식이 없다면 감사할 일이고, 의식이 있다면 감옥에 갇힌 기분으로 여생을 누워 지내게 될 것이다. 이게 무슨 해괴한 상상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충분한 삶을 살아가지만, 아무도 이러한 상황을 상상하지 않는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 위험성까지 염두에 두는 사람은 없다. 그러고 싶지 않아 한다. 상상하기도 싫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정한 일로 여긴다.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내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치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리 자신의 죽음의 질에 대해 염려해야 한다. 나의 의지가 남아 있을 때, 내 죽음의 삶을 최대한 향상시킬 방법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의료 전달 체계가 엉망이라는 것은

'빅 4' 병원의 외래 진료실이 경증 환자로 미어터지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p.59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가 온 발바닥을 아프게 하는 것처럼,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약하고 섬세하다. 그런 인간에게 죽음이란 한없이 무섭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 수도권만 벗어나도 소위 말하는 '제대로 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확률이 뚝뚝 떨어진다. 위급한 환자가 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을 거듭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길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 사건이 이러한 현실을 대변한다. 반면 수도권의 대형병원, 대학병원이라는 곳에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온몸을 아프게 한다며 건강에 대한 염려로 병원 쇼핑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느 응급실에서나 심폐소생술 중인 환자의 옆에서 자신의 순서가 먼저라며 의료진을 보채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먼저 온 순서대로 진료를 보는 것은 곧, 위급한 환자를 포기하고 시작하는 의료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하는 거예요.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노화조차도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치부되고 있지요.

p.81


온통 흰색과 기계와 알 수 없는 선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병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웃으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러한 행운이 내게도 올지는, 아마도 그 시점이 오기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행운이 내게 올 확률을 높이는 일 뿐이다. 죽음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지만, 대체로 노화의 과정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더 크기에. 우리에게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어느정도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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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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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조금은 멀리 떨어진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지극히 일상적인 삶으로 그려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엄마를, 아빠를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버릇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나름의 의미가, 이유가 있다. 부모님이 그저 누구의 엄마, 아빠로만 존재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 세상에서 퇴색되거나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내 분실’은 책임의 이름으로 덧씌워져 스러져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어떠한 단편 하나도 빼놓을 수 없지만, 특히 복받쳐오는 슬픔을 참을 길이 없어 슬픈 영화를 틀어놓고 엉엉 울어본 사람이라면 ‘감정의 물성’을, 전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스펙트럼’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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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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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이 땅을 떠나 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 계나가 호주에 이민을 가게 된 이유 역시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였다. 스스로를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으로 여기던 계나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호주로 떠난다. 타국에서의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 획득 후 한국에 잠시 돌아온 계나는 전 남자친구에게서 청혼을 받게 되고, 두 달 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시 호주로 떠난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성 행복’을 찾아 떠난 계나의 당찬 이야기는 매일 아침 시들해진 몸을 이른바 지옥철에 욱여넣는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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